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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본사는 투칸 Apr 05. 2022

드디어 너를 만나던 날의 기록

설마 내가 난산 당첨일 줄은 몰랐지

예정일을 3일 넘긴 40주 3일 차 새벽.

39주 들어서부터 밤마다 가진통은 있었지만 뭔가 다른 느낌의 통증이 밀려왔다. 진통 어플을 켜고 기록을 시작했다. 다소 애매모호하긴 하지만 규칙적인 진통. 새벽 4시쯤에 진통 간격이 점점 좁혀져서 스웨덴 남자를 깨울까 말까 고민하던 중 마침 그가 먼저 눈을 떴다.


느낌이 이상해. 진통인 것 같아.


그 말에 그는 바쁘게 출산 가방을 챙기고 카쉐어를 수배하기 시작했다. 나는 분만실로 전화해서 주수와 진통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조산사는 지금 짐을 챙겨서 오라고 하며 덧붙였다.


“오늘 출산 중인 산모님이 많아서요. LDR실(진통, 분만, 회복을 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분만실. 한국에선 가족분만실이라고 하는 듯)이 꽉 차서 일반 분만실로 가셔야 할 수도 있어요.”


조산사는 보름이라 그런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일본에선 보름날에 분만이 많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저 날도 보름에서 3일 지난, 아직 보름에 가까운 날이었다.


아무튼 복잡 미묘한, 그리고 긴장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짐을 챙겨 여명을 뚫고 병원으로 향했다.


분만실 초인종을 누르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다른 산모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시간 뒤의  모습이겠거니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했다. 그러던 와중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출산한 것 마냥 왠지 모르게 눈물이 글썽해졌다.(그러나 정작 내가 출산했을 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조산사 내진 후에 태동 검사실에서 태동검사를 하고, 입원이 결정되었다. 자궁문은 3cm 열린 상태. 그런데 입원실에서 대기하던 중 양수가 터졌다. 이젠 정말 24시간 안에 출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LDR실이 비자마자 바로 이동하게 되었다.

나름 쾌적한 공간

그러나 여기서 하루 종일을 기다려도 분만이 더 진행되지 않았다. 오후 5시 마지막 내진에서 의사는 일단 입원실로 돌아가서 하루 자고, 아침에 유도분만을 하자고 했다.


일본 병원밥은 정말 너무나 맛있었다


입원실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데, 먹던 와중에도 조금씩 진통이 와서 심호흡을 하면서도 맛있게 싹 비웠다. 스웨덴 남자와 친정 엄마에겐 내일 아침에 유도분만을 한다고, 약 맞기 시작할 때 연락하겠노라 말하고 9시쯤 침대에 누웠는데, 밤이 오니 언제나처럼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왠지 평소보다 더 아픈 것 같긴 했지만 참을만해서 진통이 밀려올 땐 벽을 짚고 서서 심호흡을 하며 버텼다. 사실 이 대목에서 더 버텨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쓸데없이 고통에 강한 자는 아무 의심 없이 이 조차도 가진통일 것이라 생각하고 미련하게 참은 것이다.


그렇게 끙끙대며 고통을 참다 새벽 4시, 큰 대변이 아래를 누르며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건 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멍청이(…)는 간호사 콜을 눌러서 상황을 설명했다. 입원실로 달려온 조산사가 내진을 하더니 깜짝 놀라 말했다.


“8cm 열렸잖아요! 왜 이제 연락하셨나요! 어떻게 참으신 거예요?!”


조산사는 지금 바로 분만실로 가야 한다며 휠체어에 나를 싣고 달렸다. 그제야 입 밖으로 비명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맙소사, 이렇게 갑작스럽게 분만이라니.


분만실에서 분만 담당 조산사가 다시 내진을 했는데 다 열렸으니 바로 분만 개시해야 한다며 침대를 트랜스포머처럼 분만 모드로 척척 바꿨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4시간 동안 힘주기를 하게 된다. 그렇다. 난산이었다.




구글에서 난산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난산의 정의에 해당하는 상황에서 나는 무려 3가지에 당첨되었다.


속골반이 좁아 아기가 산도를 통과하기 힘들었고(좁은 골반)

분만 촉진제를 투여해도 자궁이 수축하지 않았으며(분만 정지)

4시간이나 힘주기를 하니 내 체력이 바닥났다(산모 탈진)


한국도 비슷하겠지만 일본은 자연분만의 경우 기본적으로 분만 전반을 조산사가 맡아서 진행하고, 분만이 순조로울 경우 마지막에 의사가 와서 아이를 받고 확인과 후처치를 한다. 그러나 나는 난산이었기 때문에 도중에 당직 의사가 와서 분만에 참가했다.


어마어마한 4시간이었다.

의료진은 촉진제를 투여하고, 내 배를 누르고, 힘을 주는 타이밍에 질에 손을 넣어 마구 휘저으며(!) 산도를 넓혀 아기가 나오기 쉽게 만들었다. 나는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수술해달라고 울부짖었으나, 의사는 완고했다. 아마 한국 같았다면 진작에 제왕절개를 했을 상황이었으나, 일본에선 이걸 끝까지 자연분만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너무 지쳐서 분만대에서 졸며(나중에야 알았지만 이건 출혈량이 많아서 그런 것이었다) 조선시대 같았으면 나도 애도 죽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아기를 내릴 수 있을 만큼 내리고, 겸자로 아기 얼굴을 잡아 꺼내는 겸자 분만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이라며 힘을 내라는 조산사의 말에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짜내자, 의사가 기구를 넣어 아이를 꺼냈다. 문자 그대로 커다란 수박이 아래로 나오는 느낌과 동시에 으엥 하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8시 31분.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몸이 개운해졌다. 그 난리통을 겪은 와중에도 아기는 건강하게 울었다. 나도 애도 살았다.


힘들게 세상과 마주한 너

한편, 코로나 시국이라 남편과 가족의 분만 참여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다만 출산 후 1시간 면회는 가능했는데 내가 직접 연락을 해야 해서 맡겨둔 휴대폰을 받아서 열자 유도분만 시작했냐는 스웨덴 남자와 가족들의 메시지가 보였다. 유도분만은 무슨, 벌써 낳았습니다, 라는 회신을 보내고 스웨덴 남자에겐 지금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연락했다. 뒤이어 도착한 스웨덴 남자는 분만실 입장과 동시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득녀의 감동을 만끽했다. 그렇게 나의 출산은 무사히 종료되었고, 우리의 소중한 첫 아이를 만났다.




정말 놀랍게도, 아기가 태어난 순간 고통스러웠던 4시간이 맨 인 블랙의 불빛을 본 것 마냥 잊혔다. 내 말을 들은 친정 엄마는 그래서 여자란 미련한 존재라고 했다. 그렇게 힘들었던 걸 다 잊고 둘째 셋째를 낳는다며. 과연 내 인생에 둘째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만약 생긴다면 또 이걸 해내긴 해내겠거니 싶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고 다시금 깨달았다. 어머니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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