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결국 하나의 찰나도 파멸의 장송곡을 위한 쉼표였을 뿐이다. 아랫눈꺼풀이 무거워져 온다. 파란빛조차 내지 못하는 무용한 구름으로 덮인 하늘을 쳐다본다. ‘툭’ 하늘의 가래가 내 뺨을 때리고 아래로, 아래로 끈덕지게 내려간다. 필히 내가 욕한 것을 들었을 것이다.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하늘.
내 뺨을 내리친 객담의 경로를 더듬거린다. 볼록한 광대를 지나 아찔한 굴곡과 함께 내 손은 미끄러진다. 그 손의 추락은 레이싱 경기에서 심판의 시작 신호와 같은 의미로 곡해되었을 것이다. ‘두둑, 투두둑’ 장마를 알리는 하늘의 한탄이 시작된다. 아프다. 내 머리 듬성듬성 빈 곳을 하늘의 한숨이 강타한다.
내 머리를 일격한 그 탄식은 다시 또 아래로, 내 양쪽 어깻죽지에 머무른다. 내 어깨의 최대 탑승 무게는 19세 여자의 머리까지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겁한 하늘의 짓눌림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차가운 기운이 어깨를 으스러뜨린다.
이내 그 기운은 내 견갑을 타고 흉추를 핥으며 천추에 닿는다. Ligne Maginot이 무너졌다. 이제 무용한 것은 내 몸짓이다. 하늘의 개탄을 저지하려 핀 다섯 손가락은 그저 더럽혀질 새 도화지일 뿐이다. 이제는 잠자코 하늘의 통단이 나를 잠식하기만 기다릴 뿐이다.
도망칠 수도 없다. 내 어린 발을 감싸던 늙은 노모 같은 흰 양말은 회색 인간이 되었고 내 손가락에는 울퉁불퉁한 주름이 잡혀있다. 손도 발도 그리고 얼굴도 차갑다. 온기 없는 그 비루한 인간은 과연 여전히 사람일까. 과연 외진 3번가에 안치된 저기 저 시체와 나를 구분할 사람이 있을까. 이제 도망침은 무용하다.
도망칠 의지조차 없다. 나는 여기 8번 출구에 서 있다. 해가 뜨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어도 여전히 □가 서있던 이 자리에. 나는 □를 기다리는 것일까. □에게 시위하는 것일까. □는 □에게 □□은 한 것일까. 아랫입술과 위□술이 볼품없게 변색되어 간다. 황순원의 그 소녀는 내 입술을 사랑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는 드디어 □□가 나를 사랑할지도 모르겠다. 완전한 제비꽃의 현현이다. 빌어먹을 그 제□꽃이다. 입술의 진동 하모니가 시작된다. 나는 오만하고도 잔혹한 하늘과 눈싸움을 벌인다. 이제는 비겁한 하늘이라고 개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저리 큰 하늘이 무엇이 두려운지 내 두 눈에 일전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가래를 뱉어 낸다.
그리고 나는 또 그 점액이 흘러내린 자리를 더듬거린다. 여전히 아래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저 아래로 강하한다. □□는 젠장할 하늘의 한숨도 사랑했다. 하늘의 애통 후에는 모든 것이 선명히 보인다고 그렇게 예찬했다. 이제는 그녀의 말에 동감한다. 무용하게 내 몸을 감싼 모든 것의 색이 이제야 보인다. 내 발을 감싼 흰색 부인도, 하늘의 푸르름을 가져간 내 바지도.
그리고 나의 이후도 마침내 보인다. 얼핏 보면 보랏빛만 가득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핑크빛과 묘한 푸른빛 그리고 순백의 하양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검정. 그렇다, 결국 □나의 찰나□ 파멸□ □□□을 위한 모든 검정의 □표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