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며칠은 굶은 걸인처럼, 매일 밤마다 내가 뱉었던 모든 말들을 집어삼킨다. 가득 찬 위장에 역류하려는 입을 막아서고 속을 어르고 달래며 다시 삼키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후회의 순간에 못 이겨 결국 억지로 욱여넣은 모든 것들을 게워낸다. 그럴 때면 나는 내 토사물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는다. 그러다 쓰라린 속을 다독이기 위해 망각의 ‘소화제’를 들이켜고는 한다.
약초 특유의 씁쓸하면서도 약간은 매콤한 맛이 혀끝을 스치고 놀란 속을 토닥이려 내려간다. 이 행위에 중독되면 답도 없다. 이 ‘소화제’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구태여 뱉어낸 말을 돼먹을 필요도 없게 된다. 그것이 현실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지금 당장의 내가 실수의 조각들을 삼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 ‘소화제’의 효능이다.
늦은 밤, 소화제를 마신 나는 하늘 위 구름을 타고 과거의 조형들과 다시 인사하고 웃는 것을 반복하며 과거의 내 실수들을 깨끗이 닦아낸다. 그렇게 말끔하게 지워내면 이루어 말할 수 없는 고양감과 기쁨에 탄성을 지른다.
그러나, 아침 햇살과 함께 귓가에 울리는 새소리가 들려오면 어젯밤의 청소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었는 지를 한탄한다. 그러고는 다시는 하지 않겠다 결심하며 눈가에 서린 물기를 닦아내고 오늘을 산다. 오늘은 더 이상 실수를 뱉지 않으려고 다짐하며 만원 버스에 몸을 실는다.
그럼에도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면 불현듯 찾아오는 내 과거의 실수들이 나를 뒤엎고 끊임없이 과거의 실수를 뱉었던 장면을 되풀이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의 실수를 삼키지 못하고 소화제를 찾는다. 어쩌면 약물 중독자가 되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2024년 7월 28일.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지워도 다시 생각나는 그 날짜부터 나는 시작한다. 시침이 자정에 가까워져 갈 무렵 ‘나’는 그녀에게 연락했다. ‘잘 자, 좋은 꿈 꿔’,
매일 밤 이 장면이 시작할 대목이면 나는 저 연락을 받은 그녀의 얼굴을 추리하곤 한다. 일절 연락 없던 그저 같은 반 친구에 불과했던 아이가 늦은 밤, 저런 메시지를 보낸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하며 말이다.
첫날에는 그녀가 놀랐을 거라고 추측했으며, 다음 날은 웃었을 거라고 생각했고 또 어느 날에는 눈살을 찌푸렸으리라 예상했다. 나는 그녀가 어떤 안색을 띄었는 지를 영원히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알 수 없는 그녀의 낯빛에 대한 추측을 이어간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의 수고로움을 전혀 알지 모른 채, 야속하게도 그녀를 향한 연락을 이어간다. 아마 연락을 하려는 마음으로 돌을 쌓았다면 아마 마천루의 높이와 상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지치지도 않는 듯이 매일 밤 그녀의 밤의 안녕을 빌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수가 늘어갈수록 연락의 빈도는 잦아지고 내가 삼켜야 할 양은 늘어난다.
이뿐만이였다면, 내가 약물 중독자가 될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과거의 ‘나’의 손은 그치지 않았다. 그의 손은 단절되어 있는 네모 상자를 넘어 그녀로 닿고자 했다. ‘툭‘ 기어코 그 욕구는 그녀의 머리에 닿았다. 피로에 지쳐 책상에 이마를 맞닿은 그녀의 머리를 정수리부터 뒤통수까지 ‘나’의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녀의 머리는 참 특이했다. 그녀의 뒷머리는 완벽한 원에 가까웠다. 정수리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가면, 아찔한 굴곡과 함께 미끄러져 내려간다. 나는 마치 미끄럼틀을 타는 어린아이처럼 그 행위를 수없이 반복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나를 향한 수많은 절규에 가까운 질문과 그녀를 향한 미안함을 감출 수가 없다. 그리 친하지 않은 ‘친구’인 그녀의 머리를 나는 왜 쓰다듬었을까. 그것도 반에 있는 모든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아마 나는 이 세상에 그녀와 나 밖에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수업 시간에도 그녀를 바라보았으며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보고 기록하며 그녀가 잠들었을 때에는 지금처럼 쓰다듬기까지 했으니 내 추측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책상에 이마를 맞대어 가려진 그녀의 표정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내가 만약 그녀라면, 조금은 놀랐을 것이고 그 뒤로는 의문이었을 것이며, ‘손길’의 의도를 알아차렸을 때는 약간의 불쾌감이 들었을 것이다.
나에 대한 풀리지 않은 의문과 그녀를 향한 추측을 끝내면 나는 형용할 수 없는 크기의 괴로움이 나를 삼킨다. 삼켜야 할 것들이 나를 집어삼키는 ‘역의 행위’가 시작된다. ‘내가 왜 그랬을까, 아아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또 괴로움으로 마지막 남은 소화제를 들이켠다. 씁쓸한 향기가 목을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이내 정신은 몽롱해지고 나는 정신을 잃는다.
두 눈을 가린 채 추는 무용은 필히 행인의 팔을 치는 법이다. 치인 팔의 멍은 깊고 크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는다. 무용수의 동작이 커질수록 고해해야 할 행인은 늘어만 간다. 아득히 멀리 ‘그’가 떠난다. 적막이 흩어지고 동공에 비추어지는 것은 상처투성이의 사람들과 거울 속 신원불명의 피로 뒤덮인 자신만 있을 뿐이다. 어떠한 절규와 비명도 그에게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닦아내지 못한다.
거울 속에서 멀어지는 그의 뒤골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다시 두 눈을 가린 채 이름 모를 어느 황량한 곳일까, 그의 팔에 치였던 사람들의 거처일까. 하나 그는 어디론가 떠나버리기 전에 알아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었다. 우선 그의 손톱이 그리 길지 못했고 그의 팔과 얼굴에 새겨진 생채기를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