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시간이다. 살아남는다는 희망은 없다. 이것은 나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쿵 짧은 경첩 소리가 울렸다. 여기도 없었다. 벌써 일주일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구해야 했다.
서기 2073년 7월, 너무 흔해져 버려 서점 4번째 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을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관. 근데 그 세계관이 내 현실이 되어있었다.
어느 날 아침 적막을 깨는 불쾌한 알람 소리에 끝맺지 못한 꿈을 뒤로 한 채, 나는 세수를 했고 밥을 먹었으며 세계는 멸망해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그리 특별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었던 아침에 세상은 멸망해 있었다. 안타깝게도 세상이 멸망하게 된 연유를 알아차릴 틈 따윈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늘 술을 먹고 들어오던 아저씨를 물어뜯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늘 구박만 하던 아저씨를 드디어 혼쭐을 내기로 하실 모양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뒤로 하고 정신없이 달렸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기도 전에 이 미련한 몸뚱이는 발을 멈췄다. 그 순간 나는 내 미련함에 감탄했다. 가게 안에서 터져 나온 좀비 떼들이 내 앞을 쓸고 지나갔다. 나는 다시 뒤로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한 옥상에 위치해 있었다. 높은 곳에서 본 망해가는 세상의 모습은 익숙하기 그지없었다. 쫓는 사람과 쫓기는 사람, 그리고 넘어지는 사람과 그걸 물어뜯는 사람.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건대 웃음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매달 찾아오는 세금도, 내 아기자기한 월급을 가져가는 카드 값도 전혀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다. 매일매일 지하철 속을 부대끼며 언제쯤 이런 삶이 끝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도 이젠 이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비워내듯이 웃어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무도 없고 그리고 아무나 있다. 이제 이 세상에는 더 이상 ‘돈’이 알바생의 입꼬리를 올려주지 않고 더 이상 ‘돈’이 음식점 사장의 손을 바삐 움직이게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돈’이 누군가를 움직이게 못 하게 하자 내게 남은 것은 아침에 서툴게 맨 넥타이만이 꼿꼿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사라진 ‘돈’은 ‘법’을 무너뜨렸고 더 이상, 이 세상은 ‘돈’과 ‘법’으로 덕지덕지 붙여진 규칙이 아니라 ‘힘’만이 모든 만물의 법칙이 될 것을 나는 분명히 알았다.
그 누구도 내게 친절을 베풀지도 않고 그 누구나 내 목숨을 노린다. 그 생각에 조금은 눈물이 났다. 그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이 들어섰다. 서울 빌딩 숲에 고요가 깃든 그런 아침이었다. 그날은 충분히 특별한 날이었다. 낮고 얼룩진 천장 대신 처음 맞이한 푸른 하늘이 새 세상임을 일러주는 듯했다. 어제의 눈물 자국을 지우고 일단은 오늘을 살아야 했다. 내게 친절을 베풀 사람은 없다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리 특이하지도 슬프지도 않을 일이었다. 그 전에 세상에서도 진실된 친절은 있지도 않았기에, 차라리 속박이 풀린 이 세상이 조금은 더 좋은 것 같았다.
건물 옥상을 내려오며 쇠 지렛대를 하나 구했다. 넥타이에 친구를 구한 것 같아 기뻤다. 나는 그 쇠 지렛대에 몸을 기울인 채 이동했다. 이제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었다. 첫 어린이집에 갔을 때처럼, 인사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정체 모를 사람에게 이끌려갔던 그때처럼 나는 건물 옥상을 빠져나왔다.
편의점에서 여러 음식을 구해 봉투 50원 값을 내지 않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때 느꼈던 짜릿함이란 실로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그 일은 이전 세상에선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전 세상의 나는 성실히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었다. 늘 같은 지하철 칸을 이용했고, 출근 시간 동안에는 화장실에 가지 않았으며, 사무실에 앉아서도 혹여 발끝이 벌어져 집에 가고픈 의도가 비칠까 봐 정해진 자리에 표시까지 해두곤 했다. 그런 나에게, 봉투 값을 내지 않는 그 순간은 일생 최대의 행복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퇴근길 내 마지막 종착역이었던 집 문에 붙여진 오래된 전단지를 발견했다. 그 전단지는 평소 시선보다 조금 더 위에, 목을 빳빳이 피고 조금 들어올리면 보일 그 위치에 있었다. 나는 그 전단지를 떼어 내고 집으로 들어왔다.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따사로운 햇살이 눈을 가지려 눈을 비비며 일어난 특별한 둘째 날 아침이었다. 어제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편의점에서 구해온 음식들을 다 먹어 버렸기에 오늘 아침에 먹을 음식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의 첫 번째 역을 편의점으로 정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가는 손에는 서류 가방 대신 쇠 지렛대가 쥐어져 있었다.
좀비 떼들이 휩쓸고 지나간 도시에는 한가롭기 짝이 없었다. 새들은 지저귀며 고양이는 기지개를 켜고 옆집 아저씨는 새들을 사냥하려 하셨다. 나는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 아저씨의 목덜미에는 어제 아주머니께서 물어뜯으신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그래도 살아온 정이 있는지라 그 외의 자국은 없으셨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돌아서려는 찰라 아저씨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나는 당황하는 기색을 숨긴 채 쭈뼛거리며 인사를 한 뒤 전속력으로 달려고 했다. 그런데 달려오는 아저씨의 발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아저씨께서는 그저 고양이와 함께 새들을 노리실 뿐이었다.
새들은 날아갔지만, 펄럭이는 날갯짓은 분명 아저씨의 눈망울에 담겼다. 나는 아저씨의 저 표정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서 나오는 길에 술에 잔뜩 취해 별을 바라보시던 얼굴에도 아까와 같은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아저씨의 눈빛에는 그 어떤 속박도 없이, 오직 본능적인 순수함만이 가득했다. 그 모습은 인간이었을 때보다 더욱 생동감 넘치는 희망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제는 술을 드시지 않고도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비가 된 아저씨는 더 이상 집으로 돌아가 아주머니에게 구박을 당하지 않으셔도 되셨다. 그저 이렇게 아침 햇살을 맞으며 고양이와 함께 새들을 사냥하거나 나무에 기대어 낮잠을 주무셔도 되셨다. 그때 나는 알았다. 자유란 좀비가 되어서야 얻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딸랑- 청량한 종소리와 함께 편의점 문이 열렸다. 설마 생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쇠 지렛대에 힘이 들어갔고 정체 모를 누군가가 나오는 순간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도 문을 밀어내고 나온 것은 옆집 아주머니셨다. 아주머니는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내게 고개를 조금 숙이고 인사를 건내셨다.
친절히도 넘어져 있는 나를 보고시고는 일으켜 주셨다. 맞잡은 손의 손톱은 무척이나 날카로웠지만 맞닿아 있던 손의 온기는 따뜻했다. 아주머니 얼굴 속에도 깊어진 팔자주름이 조금은 올라가 있으셨다. 편의점에서 오늘 먹을 것과 내일 먹을 것을 챙겨 봉투에 담았다. 먹고 싶었던 통조림은 없었지만 이걸로도 충분했다. 이번에는 100원을 내고 나섰다. 그 전보다 더욱 행복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이런 행복은 화장실 전등을 켜는 익숙한 손짓 하나에 무너졌음을 알 수 있었다.
전기가 끊겼다. 나는 당황스러운 손짓으로 여러 번 전등 스위치를 켜고 끄기를 반복했다. 전등은 잠시 희미한 빛을 내더니 그마저도 휘정듯 빛을 잃고 꺼졌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세면대 수전을 열어젖다. ‘끼-익’거리는 음성과 함께 떨어진 물방울 하나가 내 눈언저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그것과 닮아 있었다.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괜찮았다. 근처에 편의점이나 가게에 물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전기가 끊긴 것이었다. 이제 냉장고도 전등도 주요소도 전기로 운용되는 모든 기기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신세를 한탄할 틈도 없이 나는 재빨리 마트로 향했다. 냉장식품, 신선식품 등은 얼마 되지 않으면 다 상해버릴 것이다. 그전에 먹어버리던가 어서 조처해야 했다.
도착한 마트의 유리창이 깨져있었다. 분명한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흔적이었다. 냉장고는 넘어져 있었으며 상한 음식물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다급히 통조림을 찾았지만 역시나 있을 리 만무했다. 몸을 돌려 편의점으로 향했지만, 그곳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왜 나는 몰랐지? 언제 가져간 거지? 어제 편의점 갔을 때 왜 나는 몰랐을까?’ 하는 끊임없는 자책만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어제도 없었다. 그리고 내일도 없을 것이다. 끝내 절망감에 다리가 힘을 잃고 쓰러졌다. 아무도 없고 아무나 있다는 사실이 다시금 뼈아프게 깨달았다.
그렇게 배고픔에 지쳐 며칠을 헤맸을까, 땅의 진동에 뉘어있던 몸을 일으켰다. 군복을 입은 ‘군인과 닮은’ 그들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군인과 닮은’이라 칭하는 것은 그들은 단언컨대 군인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지켜야 할 군인이 옆집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잔혹하게 쏘아대고 내게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총구는 시민을 향한 적이 없어야 했건만, 이제는 망설임 없이 아주머니와 어저씨의 얼굴을 겨누었다. 그 모습은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 익숙한 광경이 이제는 그 어떤 괴물보다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나를 보며 자기들끼리 무슨 말을 하다 이내 나를 둘러매고 어디론가 향했다.
‘헉-’ 짧은 놀란 신음소리와 함께 불쾌한 기계 소리가 낯선 방을 가득 메웠다. 벽에는 온통 인류 재건 / 나라 만세 / 좀비 척결과 같은 글귀들로 가득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의사의 복장을 한 사람과 양복을 입은 사람이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 ‘의사의 복장’을 한 사람이 ‘양복 입은 사람’에게 몇 가지 말을 한 뒤 그 ‘양복을 입은’ 사람이 알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의사의 복장’인 사람은 떠났다. 양복을 입은 그 사람은 나를 가볍게 위아래로 살핀 뒤 내게 말을 걸었다. “00 씨 당신은 2일 동안 잠들어 있었고, 총 4L의 수액을 사용하셨습니다. 의사로부터 당신이 지금부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습니다, 갑시다.”
이 세계가 멸망하고 사람에게 처음 들은 말이었다. 그 사람에 말에는 의아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우선 00 씨는 내 이름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일’이라는 게 뭔지, ‘어디로’ 가는 건지 나는 또 전달받지 못했다. “잠시만요, 여긴 어디죠? 그리고 무슨 일을 한다는 겁니까?” 내가 그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그저 따라오라는 손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또 이끌려 가며 그 남자의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것은 가히 불가항력적이었다. 마치 수년을 반복했던 몸짓처럼 나는 그의 뒤로 끌려갔다. 도착한 곳에는 주황색의 작업복으로 보이는 옷 한 벌과 총 한 정이 놓여있었다. 그 남자는 내게 두 번째 말을 건넸다. ‘옷을 입고 총을 챙겨서 나오십시오’ 그는 질문 따위는 받지 않을 것이라는 듯 금 자리를 떴다.
옷을 입고 나온 그곳에는 나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수두룩했고, 그들은 모두 같은 곳을 조준하고 있었다. 그들의 총구가 향한 곳에는 자유를 택한 이들이 있었다. ‘탕 탕 탕’ 갑작스러운 총성과 함께 자유를 택한 이들은 비틀거리며 쓰러져 나갔다. ‘그들은 왜 죽어야 했는가, 저들은 좀비가 된 이후에 누구보다 행복했을,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자들이 아닌가, 저들을 좀비라는 이름으로 죽여 마땅한가’와 같은 생각에 잠겨있던 차, 그들이 쓰러지고 드러난 광경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의 뒤에는 또 다른 ‘자유를 택한 이들’이 있었으며 그들 속에서는 나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때 남자가 내게 세 번째 말을 걸어왔다. “저 대열에 합류해서 쏘십시오” 나는 그 남자에게 빌며 말했다. “저기에 제 어머니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분명 좀비가 되시지 않으셨을 거예요. 제발… 제발 좀 살려주세요” 그 남자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이 무릎 꿇은 나를 일으키고, 총구를 들어 어머니 쪽으로 향해 겨눴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래 나는 옆집 아주머니에게 긁혀서 좀비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내 등 뒤에서 내 자세를 잡고 있는 ‘그’를 뿌리치고 어머니를 향해 달렸다.
‘탕 탕 탕’ 아까 들었던 익숙한 총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배 아래가, 무릎 아래가 따듯한 무언가로 적혀지고 조금씩 아려왔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한 걸까. 나는 그저 그 흔한 어느 날에 일어나 출근을 하려 했지만 세상은 멸망해 있었고 편의점 봉투를 그냥 가져갔으며 지금은 어린이집에서 정체 모를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 어머니 품으로 달려갔어야 했을, 그때의 실수를 그때의 소망을 이루고 있었을 뿐이었다. 눈앞에 어둠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아려오던 무릎이 움직이지 않는다. 입에서 쓰디쓴 것이 흘러나온다.
최후의 시간이다. 살아남는다는 희망도 없다. 이것은 내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