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의 열 두 달, 그 하루들을 모은 기록.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는 직장인으로서의 사회복지사,
다른 듯 닮은 일터에서 일어난, 너무 익숙해 지나쳤던 사회복지사의 하루들을
픽션 에세이로 풀어냈습니다.
어제 확인한 일기예보는 분명 ‘맑음’이었는데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한다. ‘마음 토닥토닥 텃밭 가꾸기’ 첫 수업이 있는 날. 어르신들이 찾아오기 쉽도록 안내표지판을 걸어 놓는다. 하나 둘 어르신들이 시간에 맞춰서 도착한다.
“여기가 맞아요?”
“아이고, 옥상에 이런 곳이 있었네?”
어르신들은 익숙지 않은 복지관 옥상 텃밭 앞에서 잠시 망설인다. 하지만 이내 준비된 모종들을 살펴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예전엔 집에서 화분도 많이 키웠는데, 이제는 몸이 힘들어서 말이지.”
“감자는 너무 깊이 심으면 안 돼.”
식물과 텃밭을 매개로 이야기들이 오간다. 모종삽을 처음 쥔 손길은 서툴렀지만, 이내 어르신들 사이에선 흙의 감촉을 이야기하며 농사 경험을 나누는 작은 대화들이 피어났다. 나는 조용히 그 곁에 앉아, 어르신들의 옛 기억을 따라간다. 수업이 끝난 뒤, 어르신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문득 시계를 봤다. 나도 옆에서 모종심기를 거들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렇게 시간이 흐른 줄 몰랐다. 업무로 시작되었지만, 어느새 내게도 이 시간이 위로가 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구상한 건,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일상 속 관계의 온기를 다시 건네고 싶어서였다. ‘고독사 예방’이라는 무거운 명목보다는, 더 일상적이고 가벼운 언어로, 함께 흙을 만지다 보면 어느새 마음도 열릴 수 있을 거란 믿음이었다.
사실 나는 해보지 않은 프로그램이라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다. 참여하겠다고 마음먹기까지, 그리고 이곳에 오기까지도 많은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도록 분위기를 살피는 게 내 역할이라 여겼다.
복지관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할 때면, 사회복지사로서의 책임감과, 한 사람으로서의 감정 사이에서 늘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때로는 참여자의 속도와 계획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어떤 날은 이 시간이 참여자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스스로 묻기도 한다. 나는 담당자로서 행정 일정에 맞춰 예산을 집행하고 결과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래서 가끔은 참여자들을 재촉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이 작은 시작이 의미 없진 않을 거라 믿는다. 아직 어색한 관계이지만 언젠가 어르신들에게 “그땐 좋았지” 하고 회상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며칠 뒤, 나는 식물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기 위해 옥상에 올라갔다. 실루엣이 왠지 익숙하다. 수업이 없는 날인데도 어르신 한 분이 잡초를 솎고 있었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어르신은 웃으며 말한다.
"집에 있으면 괜히 생각이 많아져서. 시간도 남으니 미리 와봤지."
다음 수업 때 다른 참여자분들이 덜 힘들도록 미리오셔서 작업하러 오신 것이다. 서류에는 ‘우울감 완화’, ‘관계 회복’, ‘사회적 고립 예방’ 같은 딱딱한 말들이 적혀 있다. 실제로 피어나는 감정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더 따뜻하고, 더 예측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모종삽을 손에 쥐고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누군가는 땅에 손을 대는 순간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서로 나누는 짧은 눈 맞춤조차도 텍스트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의미를 품고 있었다. 우리가 심는 건 작물뿐 아니라 마음이고, 우리가 가꾸는 건 텃밭뿐 아니라 관계이기도 하다.
그 모든 과정이 계획서 어디에도 적히지 않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야말로 나는 진짜 사업의 목적을 실감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 객관적인 수치로 변화가 측정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음속에 무언가 작게 싹트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작은 씨앗 하나를 심는 것부터 시작이라 생각한다. 그게 사회복지사인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