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방법은 몰라도 망치는 방법은 안다
자기소개를 잘 하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자기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최선이다. 옷고르기처럼 말이다. 그래서그런지 자기소개를 잘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조언들이 존재하므로, 그런 글들을 찾아 읽으면 좋을 것이다. 대신 나는 자기소개를 기가 막히게 망치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몇해 전, 다니던 회사가 합병을 했고 조직이 단순무식하게 합쳐지는 과정중에 미국 출장을 가게 되었고, 합병한 상대회사에서 나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A와 함께 미팅을 다니게 되었다. 출장 목적은 미국에 있는 피투자회사들과의 미팅 및 그 외 여러 업체들과의 미팅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가는 출장이 아닌터라, 기본적으로 하루 4~5개의 미팅을 잡아놓았었다. 이동시간도 있고 하니 업체당 시간은 1시간~1시간 30분.
B업체와의 오전 미팅 시간이 되었다. 실은 그 전날 저녁에 현지 투자관련 행사에 참석했었고, 그 자리에서 이미 A와 B사 CEO는 캐쥬얼하게 서로 인사를 나눴다. 평범하게, 각자 "무슨 일을 해왔고, 지금은 무슨 일을 한다"의 수준으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A는 그보다는 B사 CEO의 학력에 대해 더 궁금해해서 희안하다 생각했었다. 여튼, A가 B사 CEO의 배경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를 나눴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B사 CEO에게 '난 어느 학교 나왔는데 어느 학교 나왔니, 창업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니, 나 누구 아는데 넌 누구 아니...' 등 사업과는 1도 관계없는 이야기로만 40분 가까이 시간을 써먹었다. 1시간 잡힌 회의에서 절반의 시간이 넘었지만, 난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었다. 그 이후 진행한 업체들 미팅이 대체로 그랬다. A가 그 유명한 H대 출신이라는 것을 전세계가 다 알기까지 '지구는 둥글고,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A가 H대 출신이고 그 유명한 누구누구를 안다는 사실을 다 알때까지 앞으로 앞으로' 나갈 기세였다.
후에 B사 CEO가 후일담으로, '그 미팅 자리는 참으로 이상했노라고, 왜 졸업한지 20년은 후딱 지난 학교 이야기와 인맥이야기를 그리 오래하는지, 심지어 전날 밤에 한번 다 이야기한 백그라운드를 또 다시 이야기하는지, 무슨 데자뷰 현상인가 싶었노라고' 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있다.
1. 내가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를 어필하라
개인적 자리도 아니고, 사업적 자리에서 학력, 고향, 가족 등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ice-breaking해보자. 상대방의 본질에 상관없이, 미팅의 목적에 상관없이 말이다. 특히, 내가 좀 잘났 보일 만한 배경이 있다면 그것을 극대화하려 어필하다. 또한, 상대의 기를 누르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How about you?"를 날려라.
2. 나의 네트워크를 대놓고 과시하라
내가 유명한 사람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등 네트워크를 다짜고짜 과시하라. 어차피 상대방은 검증도 못할테니, 나의 네트워크를 과시하여 내가 얼마나 대접받아 마땅한 사람인지 선빵을 날려라. 필요하면 사돈의 팔촌까지 들이밀어라.
3. 상대방이 했던 말은 모조리 잊고, 늘 처음처럼 새로 시작하라
분명 어제 저녁에 그대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굳이 묻고 물었다만,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뜨는 법. 오늘 또다시 물어라. 나는 이 학교를 나왔는데, 너는 어느 학교를 나왔냐고. 상대방이 이상하게 생각해도 상관없다. 나는 어차피 상대방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으니, 내가 귀담아 들을 때까지 상대방이 반복해서 설명하게 하라. 또, 상대방이 잊었을 수 있으니 나의 자랑 포인트는 처음처럼 새로 다 이야기하라.
글로 보니 '저런 사람이 어딨고, 저런 사람에게 넘어가는 사람이 어딨겠나' 싶겠지만, A는 여전히 엄청 유명한 그 회사에서 큰자리 차지하며 잘 나가고 있다. 안타깝지만, 의외로 1, 2번에 넘어가는 사람이 엄청 많다. 각자가 마음의 중심을 잡고 있지 않으면, 1, 2번에 혹하기 쉽다는 이야기다.
비록 A가 좋은 학교, 좋은 인맥을 가진 것이 사실일지라도, 저런 방식의 자기소개로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없다. (생각해보니, 인상이 깊기는 하다. 아직까지 그 자리가 눈에 선한걸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