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7명. 필자가 맡은 이번 학기 수업을 수강한 학생 숫자이다. 그리고 500명, 700명이 동시 접속한 화상 초청특강을 비롯해 과목별 진행한 쌍방향 화상토크까지 포함하면, 어림잡아 3천명을 한 학기에 스크린으로 만났다. 대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이다.
4년 전 사이버대학 교수로 부임한 첫 해, 수개월간 준비한 교안을 갖고 스튜디오에서 첫 촬영을 하던 때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눈앞에 학생들이 없다보니, 표정은 어색하고 몸은 경직되고, 눈동자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허둥거리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뇌가소성(neuro-plasticity)의 효과일까. 지금은 마치 학생들이 눈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리며, 실제로 대화하듯이 손짓과 몸짓을 가누는데 익숙하다. 스스로가 그러한 일체감을 느끼면서 촬영을 할 때, PC나 스마트폰으로 보는 학생들이 마치 교수와 1:1로 만나는 기분을 느낄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필자는 상상을 수반한 이미지트레이닝이 원격촬영의 필수적 요소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수업촬영을 할 때면, 마치 CG 촬영이 늘어나는 영화 촬영현장의 블루 스크린 앞에 서 있는 영화 배우들의 몸짓과 표정이 연상될 정도이다.
예전에는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고, 학생들을 스크린으로 만나는 사이버대학 자체가 낯설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이 사실상 같은 환경에 놓였다. 규제로 묶어놓았던 온오프라인의 경계는 일시적으로 사라졌으며, 코로나19가 불러온 나비효과가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연결되기보다 단절과 고립을 선택하고, 직접적 접촉이 아닌 스크린으로 만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불안과 위험스러운 환경이 인간의 뇌로 하여금 편리함과 안전을 선택하게 만드는 미래 사회는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뇌는 기본적으로 반복적인 입력을 통해 서서히 변화한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자극이 뇌에 입력되면 포기하거나 아니면 도전에 응전한다. 위기를 겪고 나서 오히려 성장을 겪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이다.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위기 앞에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국민들의 평생학습을 위한 교육기관 정도로 인식되었던 한국發 사이버대학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이제 미래형 대학의 한 축을 제시하고 있다. 평균연령 40~50세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던 이전과 달리, 20~30대 연령층의 사이버대학 진학이 최근 대폭 증가하는 추세이다.
인공지능(AI)과 공존 혹은 경쟁할 인류 첫 세대에게 지난 200여 년간 지속되어온 동일한 시간, 건물, 커리큘럼으로 점철되는 학교와 대학 교육이 변해가는 거대한 물결을 우리는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혁명이 일으킨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역량에 대한 물음을 제시하고, 생명공학기술의 발달은 인간 정체성을 질문한다. 물질은 정신의 가치를 일깨우고, 디지털은 아날로그 감성을 부른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리는 법이다.
원격으로 제작되는 수업환경도 이러한 변화 앞에 마주선 느낌이다. 촬영 및 편집기술이 발달하다보니 화면은 갈수록 각종 애니메이션과 현란한 기법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집중도가 떨어지는 두뇌환경을 고려해서, 일정시간마다 퀴즈는 내거나 적절한 시간으로 주제를 나누는 교육공학적 가이드라인이 점차 많아지는 형국이다.
하지만, 때로는 단순하고 심플하게 다가가고 싶다. 현란한 애니메이션보다 전자칠판이라도 직접 글을 쓰는 것이 좋고, 말을 할 때마다 배경화면에 글씨와 이미지가 정확히 제시되기보다 사람의 눈빛과 표정,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필자가 있는 뇌교육융합학과는 인간의 뇌의 올바른 활용과 계발을 습득하는 분야이다. 뇌를 생물학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교육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과학자와 의학자가 연구하는 뇌가 아니라, 누구나가 가진 뇌를 활용하는 원리와 방법을 습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이 아닌 체득이 중요하다.
스마트폰을 통해 대부분의 정보를 검색하는 순간부터 지식을 배우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학습은 결국 스스로가 하는 것이다. 원격학습이 또 다른 지식의 채널이 되는 것이 아닌, 삶의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을 변화시키고, 문제해결 역량을 높이는 생활기술을 습득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모든 정보를 스크린으로 뇌에 입력받는 세상. ‘미래’, ‘인공지능’, ‘디지털’이라는 이름 앞에 덧씌워진 세상. 인간의 고유역량을 계발하고, 인간의 가치를 일깨우는 휴머니즘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우리 앞에 놓인 진정한 ‘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