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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살이-서른아홉 달 차(24.11월)

인도, 한류의 열풍에 빠지다.

by 소전 India

[한류 체험기]

오빠-오빠, 싸랑해~~!

지난 10월 18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랑데코리아 2024' 행사장. 제 뒤에서 귀청을 찢을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국의 K-팝 그룹 NTX가 마지막 무대에 등장하자, 관객들은 그야말로 열광했습니다. 한 무리의 10대 소녀들이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부르고, 무대 아래에서 춤을 추는 모습은 압권이었습니다. 바로 뒷줄에 앉아있는 소녀에게 “어떻게 한국어를 이렇게 잘하냐”라고 물어보니, "유튜브와 드라마를 보며 독학으로 배웠어요. 한국 음악이 너무 좋아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의 또렷한 발음과 열정적인 응원 모습은 제가 인도에서 한류의 진정한 열기를 직접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업무상 인도 공무원들과 만나는 일이 잦은 저는 한류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도움을 주는 순간을 종종 경험하곤 했습니다. 한 번은 특히 풀기 어려운 애로사항을 가지고 세관장을 만나러 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긴장한 채로 접견 자리에 들어섰고, 여성분이었습니다. 예상한 대로 대화는 다소 딱딱한 분위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회의가 시작되자, 그녀가 먼저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Crash Landing on You)' 이야기를 꺼내며 상황이 반전되었습니다. 그녀는 드라마 속 손예진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캐릭터가 보여준 강렬한 주체성과 결단력을 얘기했습니다. 인도에서는 여성의 역할이 전통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손예진의 당당하면서도 주체적인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 드라마가 단순히 흥미를 넘어서 인도 사회의 깊은 고민과 연결되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날 대화는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이어졌고, 업무상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도 의외로 쉽게 풀렸습니다. 이 경험은 한류가 단순히 문화적 유행을 넘어서, 사회적 의미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K-팝과 드라마로 물든 인도]

뉴델리에 위치한 한국 문화원에서는 다양한 한류와 관련된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행사에 참석하면서 인도 내 한류 열풍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매년 열리는 K-팝 경연대회는 한류의 강력한 인기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행사입니다. 지난 4월, 인도 전역에서 열린 예선에는 무려 10,559명이 사전 등록하였고, 11개 지역에서의 예선과 준결승을 거쳐 최종 12개 팀이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결승전은 11월 23일 뉴델리 야쇼부미 전시장에서 열렸으며, 약 6,000석의 좌석이 모두 매진되며 뜨거운 열기를 자랑했습니다. 이번 경연대회에서 결승에서는 댄스 부문에서 8인조 그룹 '더 트렌드'가 스트레이 키즈의 'God’s Menu'를 완벽히 재현하며 우승을 차지했고, 보컬 부문에서는 콜카타 출신의 아비프리야 차크라보르티가 아이유의 'Love Wins All'을 불러 감동을 선사하며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2024년 K-팝 경연대회 시상식(출처 : 주인도 한국문화원)


[K-팝: 음악을 넘어서]

인도에서 K-팝은 단순히 음악의 범주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방탄소년단(BTS)을 중심으로 한 팬덤 문화는 뉴델리, 뭄바이, 벵갈루루와 같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작은 도시들까지 퍼져 있습니다. 특히, 2022년 BTS 온라인 콘서트에는 수십만 명의 팬들이 참여하며, 팬들은 BTS 공식 응원봉인 'Army Bomb'을 흔들고 힌디어와 영어로 응원 메시지를 쏟아내며 열기를 더했습니다. 근무 중 만난 현지 여직원도 빅뱅 팬클럽에서 활동하며, 뉴델리에서 정기적인 팬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활동 중인 델리 대학의 'K-STAR Dance Crew'도 매달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K-팝의 인기를 더욱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OTT 플랫폼은 K-드라마가 인도에서 인기를 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여성 팬들은 한국 드라마의 섬세한 감정선과 매력적인 배우들에게 빠져들며, 드라마를 단순히 감상하는 것을 넘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앞서 세관장이 좋아했다던 '사랑의 불시착'은 인도에서 '국민 드라마'로 불릴 만큼 큰 인기를 얻었으며, '기생충'은 인도의 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예술 영화'로 평가받았습니다. 특히 기생충은 인도 카스트 제도와 비슷한 환경으로 설정되어 더 큰 호응을 받은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 밖에도 '버닝', '올드보이' 같은 작품들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드라마 속 등장한 한국식 치킨은 이제 인도 배달 앱 메뉴에도 'Korean Fried Chicken'으로 추가될 정도로 현지화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한글로 이어진 열풍]

K-팝과 K-드라마의 인기는 자연스럽게 한글과 한국어 학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인도 전역에는 7개의 세종학당이 운영 중이며, 뉴델리 한글학교는 매년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등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특히 자와할랄 네루 대학교(JNU)의 한국어학과는 3,0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한국어에 대한 현지 관심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한국어 능력시험(TOPIK)은 한국 기업에 취업하려는 젊은 인도인들에게 필수 자격증으로 여겨지며, 접수 시작 10분 만에 마감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인도 네루대학교 한글어학과 현판(출처 : 네루대학교)


[한류 열풍의 오늘과 내일]

인도에서 한류 열풍이 불어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젊은 세대의 문화적 수용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인도는 10~30대 청년 인구가 전체의 약 35%를 차지하며, 이는 6억 명 이상의 방대한 숫자입니다. 이들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유튜브와 인터넷을 즐기며 새로운 문화를 쉽게 받아들입니다. 여기에 더해 세련되고 고품질이며 시대를 앞서가는 이미지가 한류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킵니다. 한국 콘텐츠가 OTT 플랫폼을 통해 인도 전역에 확산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자막과 더빙 서비스는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한류 콘텐츠가 보다 널리 소비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특히, K-팝 팬덤 문화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댄스 커버, 온라인 캠페인, 팬 이벤트를 통해 한류를 문화적 현상으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인도의 전통적인 가족 중심 문화와 한국 드라마의 스토리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주도권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 인도의 젊은 여성들에게 대리 만족과 새로운 역할 모델을 제시합니다. 이는 여성의 사회 참여가 증가하는 인도에서 특히 큰 공감을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와 함께, 삼성, LG, 현대, 기아자동차와 같은 한국 기업이 구축한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는 한류 콘텐츠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K-뷰티와 패션의 인기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류 열풍은 앞으로 한국과 인도 간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현재 한국에서는 인도를 아직도 더럽고 미개하며 성폭력이 많은 후진국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물론 이는 역사적 사실이나 특정 사례에 근거한 측면이 있지만, 다른 면모 역시 많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자극적인 언론 보도로 인해 형성된 부정적인 프레임 효과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인도를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 체계적인 연구 없이 유튜브와 같은 간접적인 매체를 통해 접하는 것은 왜곡된 판단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의 삶이 길어질수록, 제 기존 인식의 틀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적·문화적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알면 알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인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성급한 판단이나 비판이 아니라, 더 자주 보고 배우며 경험을 쌓는 것입니다.


한류 열풍을 보며 또 하나 떠오르는 생각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나비효과처럼, 누군가의 작은 날갯짓이 이러한 큰 흐름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중 한 분이 바로 김도영 교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1988년 인도에 오셔서 델리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인도에 전파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오셨습니다. 35년 이상 인도에 거주하며 인도 사회와 문화를 깊이 연구하고 이해하신 교수님은 『내가 만난 인도인』을 통해 인도를 바라보는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셨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이야말로 인도 내 한류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인도 전역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비즈니스와 협력을 만들어내고 계신 많은 분들의 노고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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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인도의 미래(출처 : gokulamseekias.com)


물론 한류 열풍에 대해 일부 인도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는 외부 문화의 영향이 커지며 인도의 풍부한 역사와 전통이 희석될 가능성을 걱정하거나, 한류 제품의 인기가 인도 내 자국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제적 우려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상업적이고 외래문화의 침투로만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은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초 서양 문화에 대한 동경과 열풍이 있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당시에 어른들이나 언론에서 비판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의 경험이 우리에게 더 나은 문화와 콘텐츠를 만들어낼 자양분이 되었듯이, 인도에서도 한류가 긍정적인 상호작용의 기반이 되었으면 합니다.


결국, 한류는 문화적 우월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인도가 서로를 연결하며 상생과 발전을 이루어 나가는 든든한 기반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류 열풍이 두 나라의 깊은 이해와 협력을 위한 다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끝.


2024년 11월 인도에서 소전 (素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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