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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살이-열일곱달차(23.1월)

시네마 천국- 인도

by 소전 India

인도에 온지 17개월 만에 처음으로 영화관에 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 많은 곳을 기피하다보니 ㅇ플렉스, o차, o즈니 같은 매체로 근근이 영화에 대한 허기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아바타2가 개봉을 한다고 하여 서둘러 예매를 했습니다. 막상 가는 길에 ‘영화관은 어떨까? 더럽지는 않을까? 관객은 많을까?’ 등등 궁금증으로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도착해서 보니 출입 방법부터 많이 낯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누구나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거나 예약한 표를 발권한 후 상영관에 검표를 받고 들어갑니다. 하지만 인도는 전용 앱을 통해서 표를 구매해야 하고, 입구에서 발권한 표를 다시 바코드로 확인을 합니다. 아마도 영화를 보지 않으면서 매장을 점령하는 사람들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됩니다. 영화관 안에는 영화표 대신 피자나 커피 등 음식을 파는 매장만 있습니다. 색다른 것은 키오스크나 판매대에서 팝콘이나 피자를 구입하고 좌석 번호를 알려주면 좌석까지 배달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과 들고 다니는 불편함은 없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쟁반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배달원과 수시로 음식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로 인해 영화에 집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또 신기한 것은 영화 상영중에 갑자기 광고가 나오면서 20분 정도의 휴식시간이 시작되는 것과 별도의 안내없이 이어서 영화가 상영되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자율권을 주면서도 알아서 통제되는 적당 적당한 인도 문화가 그대로 영화관에도 적용되는 느낌이었습니다.

img.webp 인도를 대표하는 영화관 PVR(출처 : pvr.in)

처음 가 본 인도의 영화관이라 약간의 어설픔은 있었지만, 아바타2는 재미있게 감상하였습니다. 3D로 연출한 바닷속의 화려한 배경아래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착취, 약탈자와 싸움에서 승리하는 과정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습니다. 영화 중간 중간에 고래 사냥 장비들의 외관에 일포(日浦) 포경(捕鯨) 등 선명하게 찍힌 일본어를 보면서 아직도 고래를 연구용으로 포획하여 즐겨먹는 일본인들에게 한방 먹이는 통쾌함도 보였습니다. 카메룬 감독의 시대를 앞서가는 신기술을 적용한 면도 좋았지만, 고래를 사랑하지 않고 먹기만 하는 일본에게 커다란 엿을 선사하는 고난도의 기술을 보면서 영화감상보다 더 후련함을 느꼈습니다.

아바타2에서 일본어로 표기된 고래 포획 기계들(출처 : ppompu)

아바타2에서 일본어로 표기된 고래포획 기계들(출처 : ppomppu)


영화관은 복잡하지만 생각보다 관객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인도 영화산업을 알아보니 인도는 자국영화의 비중이 80-90%로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아바타1의 경우 전 세계에서는 흥행에 성공을 했지만 인도에서는 고배를 마셨고, 미국을 대표하는 마블 시리즈도 인도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고 합니다. 어쩌면 인도는 영화를 만들고 보고 즐기는 진정한 의미의 영화천국 같습니다. 우선 영화 제작편수가 한 해에 약 2천여편 이상으로 명실상부한 1위로 보입니다. 통계상으로 보면 나이지리아의 ‘놀리우드’(나이지리아+할리우드)가 한 해에 2천편이 넘게 제작되는데 대부분 극장상영이 아닌 비디오, DVD판권으로 판매, 대여되고 있다고 합니다. 인도는 전국 1만 5천여 개의 상영관에서 개봉되고 있고, 하루 평균 관람객이 1.5천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21년 약 500편 제작 3,000여개의 상영관(474극장), 일평균 관객수 16만명, 영화진흥위원회 자료)


흔히 인도 영화를 볼리우드(bollywood)라고 합니다. 인도 중부에 있는 뭄바이의 옛날 지명인 봄베이(bombay)와 미국영화를 일컫는 헐리우드(Hollywood)’의 합성어입니다. 볼리우드는 1970년대 말 봄베이에서 발행되던 『씨네 블리츠』(Cine Blitz)에서 일부 기자가 당시 봄베이 지역의 영화 제작방식이 점차 헐리우드를 모방하는 경향을 빗대서 만든 신조어였는데, 이후 급속하게 확산되었고 2001년에는 옥스포드 영어사전에도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실제 인도 영화를 볼리우드라고 보는 것은 우리나라 부산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K-movie라고 부르는 것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서벵골 지역의 콜카타 Tollygunge 지역 중심의 영화를 ‘톨리우드’, 타밀나두 첸나이의 지역 중심의 타밀 영화를 ‘콜리우드’라고 하고, 통상적으로 해당 주의 언어와 명칭이 합쳐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텔루구어 영화를 똑같이 콜카타 지역과 같은 명칭은 ‘톨리우드’라고 한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드로 끝나는 말이 미국의 문화적 우월성과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언론이 만들어낸 프레임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k-movie, 얼마나 간결하고 멋있지 않은가요?


인도 영화를 마살라 영화라고도 부릅니다. 마살라가 인도의 모든 음식에 골고루 들어가듯이 인도 영화가 다양한 장르, 이를테면 멜로로 시작했다가 액션으로 변질, 스릴러로 갔다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다양성을 나타낸 말입니다. 또한 인도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노래와 춤도 마살라 영화의 특징을 나타내는 도구라고 합니다. 인도 영화의 특징으로 몇 가지를 재밌는 것을 소개합니다. 1,3,6이 되어야만 흥행에 성공한다고 합니다. 잘 생긴 남자배우가 한 명 있어야 하고(아무래도 남성 우월문화), 춤추는 장면이 3번 이상 나와야 하고, 노래가 6곡 이상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남자배우의 중요성은 아저씨의 ‘원빈’처럼 인도에서도 흥행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합니다. 연기를 못한 배우는 용서해도 춤을 추지 못하는 배우는 용서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노래도 마찬가지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영화보다 먼저 출시되어 영화 흥행의 중요한 변수라고 합니다. 오히려 영화보다 노래가 더 히트를 친 경우도 있고, 영화음악을 듣다보면 우리나라 트로트처럼 들을수록 점점 박자에 맞춰지고 흥을 돋우는 신비한 매력이 있습니다. 인도는 왜 이렇게 상영시간이 늘고, 글로벌화에 반하는 춤과 노래를 좋아할까요? ABCD라는 말도 있습니다. 'Any Body Can Dance'의 줄임말로 인도 영화에서는 누구나 춤을 출수 있다는 말이지요. 애인에게 실연을 당하여 의기소침하게 돌아가는데 길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이 춤을 추면서 주인공을 위로해주는 장면도 있고, 결혼을 앞둔 집안 끼리 반대를 하다가도 마지막엔 춤을 추면서 화해를 하고 결혼을 승낙해주는 장면 등등, 스토리와는 무관하게 갑자기 춤판이 벌어져서 어리둥절한 경우가 있습니다. 인도 영화를 자주 보다보니 지금은 춤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하는 예감이 들면 바로 춤추는 장면이 나오는 신기한 경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img.webp 인도의 대표적인 영화 RRR(출처 : RRR.in)


인도 영화에서 춤은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지루해져가는 관객들의 몰입을 높여주고 고조되는 갈등을 한 방에 해결해주어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며 인물들의 감정을 쉽게 전달합니다. 멜로, 전쟁, 환타지, 추리물 등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영화에서 대부분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선 춤에 대한 관대함은 인도인들의 삶을 지배해온 종교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특히 파괴와 전쟁의 신인 시바신은 춤을 관장하는 신이라는 뜻의 ‘라타라자’ 즉, 댄싱 퀸이라는 신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비슈누 역시 다른 모습으로 ‘아바타’라고, 크리슈나 피리를 부는 신으로 음악을 관장하는 신으로도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신들이 춤을 영화에 도입하여 일체감을 만드는 것이 인도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바로 언어적인 장벽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성영화 시절에 오히려 인도영화가 더 잘나갔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화면에 다른 여러 가지 언어를 표현할 수가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유성영화가 들어오면서 마살라 영화가 더 증가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도는 법에 규정된 공식 언어만 22개이고, 500여개 언어가 쓰이며, 방언까지 합치면 약 3000여개가 넘은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북 인도와 남 인도가 다르고, 남 인도의 좁은 지역에서도 왕국 간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여 통역이 필요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언어적 장벽을 극복하기 위하여 굳이 대사나 자막이 필요 없는 춤 장면을 많이 포함한다고 합니다. 언어의 바디랭귀지를 인도영화에서는 춤으로 만들어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장르로 만든 것 같습니다.


세 번째로는 독립운동의 도구로 영화에 춤 장면을 넣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은 것처럼 인도도 영국으로부터 200여년의 긴 지배를 받다보니 정신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916년도에 '신파'가 처음 등장했고 일본이 우리나라의 문화를 탄압하면서 영화, 연극에도 저항적이거나 사회적인 소재를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아주 달달한 연애담 중심의 영화들만 제작했다고 합니다. 인도의 마살라 영화도 비슷하게 출범을 했습니다. 인도 역시 식민지 정책으로 심한 규제를 받았고 민족의식을 억압당했기 때문에 신화적 주제, 음악, 무용이 영화의 주류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식민을 넘어 독립운동의 수단으로 우리나라는 '신파'를 인도는 인도에는 '마살라'라는 독특한 장르를 만들고 발전시킨 것 같습니다. 처음 인도영화를 볼 때 불쑥불쑥 나오는 춤 장면 때문에 조금 거슬렀지만 이러한 종교적, 언어적,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 영화인 것 같습니다. 배경에 사회적 생활상과 다양한 역사와 철학이 녹아있으니까요. 인도 영화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권선징악’ 선이 결국 승리한다는 스토리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바후발리처럼 영웅이 나와 혁명을 일으키고, RRR처럼 독립 운동을 이끄는 영웅이 나와서 적들을 쓸어버리는 장면에서 현세에 이루지 못한 대리 만족을 한다고 합니다. 만약 영화가 선이 아닌 악이 승리하게 끝난다면 영화를 보고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또 잘 만든 영화라면 영화가 마친 후에도 떼창과 떼춤을 추기 때문에 흥행여부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영화가 인도 사람들에게는 삶의 애환을 잊고 희망을 갖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폐쇄적인 신분제, 수행을 방해하는 존재로 여성을 하대하는 문화, 뜨거운 여름과 겨울 스모그로 야외활동이 제한되고 4시간 이상 이동해야 산을 보는 등 오락거리가 제한된 상황에서 현실에서 가장 쉽게 즐길수 있는 오락거리가 아닌가 합니다. 아이폰과 유튜브로 무장한 젊은 층들이 등장하면서 인도의 영화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발리우드 영화가 너무 퇴폐적이고 서양 문화를 옹호하면서 인도다움이 없어진다고 점점 반대세력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또한 인도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신분제, 남녀불평등 등 고질적인 문제도 해결하려는 새로운 도전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인도 영화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직접 보는 것입니다. 이번 주말, 인도 영화 한편 어떠신가요?


2023.1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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