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썰렁한 연말연시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해마다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은 미결로 남아있고 아쉬움이 크게 다가옵니다. 한국의 연말은 바쁘게 움직입니다. 한 해 동안 업무 성과를 정리하고 새해 업무 계획을 수립합니다. 직장, 가족, 동호회 등등 참석할 모임도 많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한 해를 마무리합니다. 망년회라는 미명 아래 연속으로 모임을 갖고 술을 마시는 주당들도 있습니다. 성탄절을 기점으로 연말 행사가 시작됩니다. 12월31일 저무는 해를 보며 한 해를 보내고 보신각 타종 행사와 불꽃놀이를 시작으로 새로운 한 해를 맞습니다. 이른 새벽 산 정상이나 바닷가에서 일출을 보면서 희망과 꿈을 기원하고 한 해를 시작하는 부지런한 분들도 있습니다.
현란한 한국의 분위기에 비하면 인도의 연말연시는 썰렁~~ 그자체입니다. 송년모임이 단체로 실종된 것처럼 아무 느낌 없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열리는 디왈리를 새해의 시작으로 봅니다. 12월31일이나 1월1일이 특별한 의미가 없는 평범한 하루입니다. 남인도에서는 3월 말이나 4월 초에 종교적인 행사로 새해 맞이 행사가 있으나 연말은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이렇게 썰렁한 이유는 한 해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매년 4.1일 시작하여 3.31에 끝납니다. 영국의 통치를 받던 1867년 당시 영국 회계연도에 맞추고자 세운 기준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통상 우리나라의 1분기는 1월부터 3월까지 이지만, 인도는 4월부터 6월 까지 입니다. 2017년 모디총리가 집권하고 1년 시작을 1월1일로 변경하려고 하였습니다. 다른 나라와 통계가 맞지 않고 회계연도 시작 2개월 후인 6월부터는 우기가 시작되어 국책공사 추진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 지방 정부의 반대와 각종 조세 징수 기간 차이, 결산 등의 이유로 합의를 결정을 못하고 아직도 논의 중에 있다고 합니다. 저도 업무상 조세징수나 교역 통계를 보면서 성장률이나 전년 동기 대비를 할 때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신정과 구정 두 가지 달력이 존재하듯이, 인도도 양력(그레고리력)과 음력인 힌두력을 혼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양력에 해당하는 인도 국정력은 1957년 공식 채택된 역법입니다. 28개주와 8개 연방 직할구에서 사용하는 달력이 서로 다르다 보니, 공휴일이나 조세징수 등 행정 집행에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시 공화국 형태의 국가를 수립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을 하였다고 합니다. 과학산업연구위원회 산하에 달력개혁 위원회를 만들고, 회장에 천체 물리학자인 메그나드사하(Meghanad Sahd, 1893-1956)를 선임하였습니다. 서로 다른 30여개의 달력을 비교 연구하고 하나로 통합하여 지금 사용하는 인도의 국정력을 만들었습니다. 국정력이 정부기간, 행정기관에서 사용하는 공식 달력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인도 사람들은 힌두력에 근간을 두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구정이나 한식, 단오 등 행사를 음력으로 기산하듯이 인도도 홀리(3,4월), 디왈리(10,11월)를 보름달이 뜨는 모양을 기준으로 삼아 축제일을 정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인도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고대 인도인들은 서양 문물이 정립한 직선적인 시간관이 아닌 삶이 주기적으로 윤회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힌두 역사를 보면 43억 2000만 년인 대주기를 4개의 주기로 나누고, 그 마지막 주기이자 현재 우리가 사는 ‘칼리유가’를 43만 2000년이라고 여기다고 합니다. 지구 탄생이 65억년인 것을 감안한다면 지구탄생이래 수많은 시간에서 우리인생 100년은 찰라의 순간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다 보니 어제와 오늘이 다를 게 없고, 전생과 현생, 그리고 내생이 엮여있다 보니 세상사를 사건 중심으로 이해합니다. 시간은 금도 아니고 돈도 아닌 ‘마야(maya, 幻影)’라고 한답니다. ‘마야’는 영원한 존재를 물질 속에 한정시키는 힘이라는 의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덧없는 것, 허망한 것이라는 의미도 강하게 내포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현상 세계에서 경험하는 1~2분, 1~2시간 혹은 1~2년으로 나누는 그런 의미의 시간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일종의 착시로 바닷가에서 반짝이는 조개 껍질을 은 조각으로 본다거나, 깜깜한 곳에서 새끼 줄을 뱀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 사업하는 분들을 만나보면 서로 다른 시간 개념으로 인해 아주 곤란한 상황을 많이 겪는다고 합니다. 통상 사업이 계약, 납품, 결제 순으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시간이 잘못되면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합니다. 계약서대로의 납품이 늦어진다든지 결제를 기한 내에 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실제 제가 받은 민원 중에 인도에서 중고 기계를 수입하다가 선급을 주고 물건을 보내주지 않아 경찰에 사기죄로 고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현지 법인들이 사람을 채용하는 경우에 현지 직원들이 출퇴근, 병가, 연가 등등 각 시간과 기한을 맞추는 것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제가 첸나이 지역에 출장을 갔을때 기사에게 목적지 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물었습니다. 조금만 가면 된다고 하더니, 3시간을 넘게 걸려 도착했습니다. 벵갈루루에서 사업하시는 분은 기사에게 어디냐고 물어보면, 항상 '2 minutes 내'라는 말을 자주 쓴다고 합니다. 2분 안에 온다는 한 기사가 대략 20분 정도 지나서야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냥 잠깐만, 곧 이라는 표현이지만 우리나라와는 정말 다른 의미로 통할 때가 많습니다. 모 방송국의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인도형 럭키씨가 말해주는 인도인의 시간 개념도 재미있습니다. 한국사람 표준시간(Korean Standard Time)에 대비하여 인도는 표준이 아닌 IST(india slow time)이라고 합니다. 열차가 3시간이 넘으면 정상이고, 8시 결혼식에 정시에 오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시간을 맞추어 도착하면 '할 일이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고 하니 같은 시간을 두고도 너무나 다른 인식과 관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가 급속한 경제성장과 K컬처를 만든 이면에는 시간을 아끼는 빠른 일 처리의 효율성도 한 몫을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산업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속도의 효율이라는 미명 하에 많은 것을 잊고 시간의 덫에 빠져 바쁜 쳇바퀴 삶을 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느린 것은 무능하고 게으르다며 죄악처럼 치부되는 사회, 모든 것은 목적을 향하여 빨리 빨리,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길들여진 세상에 사는 것 같습니다. 인도인들의 눈에 비춰지는 우리들의 모습 또한 이해하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가 지나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 한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문득 궁금해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나무의 나이테처럼 삶의 무게와 흔적을 남기는 마음속에 남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온도가 일정한 열대지방 나무는 나이테 흔적이 없지만, 혹독한 추위와 뜨거운 혹서의 지방에는 그 경계가 뚜렷하다고 합니다. 고난을 헤치고 역경을 이겨내는 삶의 흔적이 바로 나무의 나이테 같이 보입니다. 하루살이가 내일을 모르고, 한해살이 곤충이 이듬해를 모르는 것처럼, 인도인들의 긴 윤회속 다양한 현세와 내세를 반복하는 영원함 삶에 비하면 우리처럼 1년을 보내며 울고 웃는 우리나라의 삶에 아무런 감응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1년의 삶을 함께한 사람들과 되돌아보고 서로 격려해주며 한 획을 긋는 것도 나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도의 송구영신 분위기는 꽝이지만 나름 독거노인(인도에서 혼자 사시는 분들) 몇 명을 집으로 초대해서 올해 마지막 날을 함께 보낼 계획입니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새로운 한 해를 맞는 희망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끝.
2022.12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