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자아

by 최윤형

내가 널 어떻게 가르쳤는데


우리는 흔히 자신을 이성적 존재라 여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도덕과 규칙을 따르며 살아가는 존재. 그러나 이 이성은 과연 본래의 나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사회와 교육을 통해 주입된 것일까?


국가는 기본적인 교육을 모든 국민에게 보장한다. 겉으로 보기엔 개인이 원활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가 원하는 ‘도움이 되는’ 개인을 길러내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사회에 해가 되지 않고,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을 만들기 위한 체계다.


사람을 해치면 안 되고,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는 당연한 규칙조차 사실은 학습의 결과다. 이러한 윤리의식은 본성이라기보다,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약속이며 반복된 교육과 경험을 통해 내면화된 것에 가깝다. 만약 우리가 이런 학습을 받지 않았다면, 그 ‘상식’이라 불리는 것들이 과연 보편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야생 동물의 무리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본능의 흐름에 충실하다. 하지만 인간의 공동체는 단순히 본능을 넘어선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삶의 질 향상,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 나아가 ‘더 나은 인간상’을 추구한다. 이 모든 것은 이성이라는 도구 위에서 작동하며, 이 이성은 본성이 아니라 학습의 산물이다.


이처럼 학습된 이성은 우리의 본모습이라기보다, 사회와 규범 속에서 ‘길러진 자아’이다. 물론 이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개별적인 욕망과 본성이 충돌하지 않도록 조정해 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이성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이성이 ‘진짜 나’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과거 나치 독일은 도덕과 이성이라는 이름 아래 전체주의를 정당화했고, 그 속에서 수많은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선택이 이뤄졌다. 그들이 추구한 ‘우월한 인간상’은 결국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킨 집단적 오류였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극단적 전체주의에서 멀어진 듯 보이지만, 여전히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혹은 보편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다양성을 억누르는 일은 반복되고 있다.


예컨대 무단횡단이라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나쁜 행동’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누군가 길 건너 쓰러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신호를 무시하고 달렸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악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선과 악, 옳고 그름의 경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인간의 본성도 마찬가지다.


성선설과 성악설 사이에서 나는 성무선악설에 더 가까운 입장을 지지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모든 것은 맥락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우리의 도덕도, 규칙도, 그리고 자아도 마찬가지다.


결국 학습된 이성은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짜 나’라기보다는, 외부 세계에 의해 구성된 ‘사회적 나’이다. 우리는 본성과 이성 사이, 본능과 규범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존재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나를 만들어가고, 또 내가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오해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진짜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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