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유독 기다리는 것에 약한 것 같다. 기다리기보다는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있고, 무엇을 하든 빠르게 결론을 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진로를 정할 때도 어릴 적부터 끝없이 장래희망에 대해 묻는다. '너는 뭐가 되고 싶니?' 혹은 '너는 꿈이 뭐니?'처럼 말이다. 초등생시절, 사과 모양 혹은 하트 모양으로 잘린 종이에 장래희망을 적은 적이 있었다. 이윽고 그 종이는 교실 뒤편 사물함 위에 붙어있던 갈색 나무의 가지를 빼곡히 채워나갔다. 당시 나의 꿈은 '축구선수'였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과학자나 대통령, 가수 혹은 나처럼 축구선수를 꿈꿨었다.
가지를 빼곡히 채웠던 열매들이 자라 성인이 되었다. 아직 어엿한 직업을 갖기에는 이른 나이라지만, 각자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했다면 그 시작점 정도에는 발을 내딛고 있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 열매들은 자신들이 꿈꿨던 대로 살고 있을까?
축구선수를 꿈꿨던 나는 이제는 단순 취미로 축구를 즐긴다. 축구를 접할 기회가 적어지기도 했지만, 애초에 내가 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사실 취미는 축구였으나, 내가 진정 꿈꿨던 것이 축구선수였느냐라고 묻는다면 그것에 대해 빠르게 긍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축구선수가 되어 국가대표 혹은 해외리그에서 뛰는 모습은 그려봤으나, 그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그려보지 않았다.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마땅히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은 사실이나, 내가 그 노력까지 감수하며 도전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한 의문점에 해당한다. 어쩌면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를 중시하는 그 성격이 우리의 진로에 대해 너무 빠른 결론을 원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만든다.
경험보다 결과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 이제 아홉 살이 된 아이가 자신의 꿈에 대해 얼마나 고민을 해봤겠는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하나의 꿈이라는 결과를 도출해야하는데 되려 결과를 먼저 도출한 뒤, 거기에 우리가 원하는 틀대로 아이들을 조종했던 것은 아니었나?
그도 그럴 것이 과거 고성장 시대 속 '나'보다는 '우리'가 중요했던 지난 공동체주의 세상 속에서 함께 힘을 모아 성장하는 것이 개인의 성장보다 더 큰 가치가 있었다. 더욱이 그에 맞게 세상도 성장하니, 대학만 졸업해도 버스가 와서 취업의 길로 데리고 간다던 과거에는 과정 보다는 그 결과 자체가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던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어 세상을 이끌고 있는 만큼 신세대와는 다른 모습이 세대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예시로 자신의 직업에 대해 '평생직장'이라는 말로 직업의 가치를 정했던 기성세대는 빠르게 퇴직 혹은 이직하는 MZ세대에 대해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자신들이 추구했던 직장이라는 것이 주는 안정감과 온전함 속에서 그 직장의 발전, 다시 말해 자신을 희생하여 직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의지를 젊은 세대는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신세대의 입장에서는 '공동체'적인 가치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많다. 고성장이 이뤄진 국가에서 원만한 삶과 교육의 질을 보장받으면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함께 힘을 합쳐 성장하자'는 가치보다 ‘나의 삶을 조금 더 발전시키기는 것’에 더 비중을 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고성장이 이뤄진 만큼 지금의 성장은 과거에 비해 정체되었으며, 빠른 성장의 후폭풍으로 아직 준비되지 못한 제2의 삶에 대한 논의가 신세대가 세상으로 나가는 발걸음을 붙잡기도 한다. 아직 퇴직하지 않은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제2의 삶을 고민하고 있으며, 과학의 발전으로 수명이 늘어난 만큼 그들의 퇴직 시기에 대한 연장의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반면에 그들이 퇴직하지 않음으로써 신세대가 사회로 들어갈 관문은 계속 좁아지고 있으며, 역설적이게도 부모의 퇴직이 늦어지면서 자식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직전의 국가에 살아가면서 국민들의 기본적인 인건비는 상승하고 있으며, 그들 스스로도 쉽게 취업이 가능한, 하지만 고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그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국면 속에서 어린아이들에게 꿈을 먼저 묻던 결과론적인 사고에 빠져있던 기성세대의 입장이 다소 이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세상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단단한 위치를 잡고 있는 것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살아온 시대가 신세대의 삶에도 똑같이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전의 30대가 지금의 30대와는 다른 것처럼 그들에게 요구되었던 역량과 신세대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다를 수 있다.
빨리빨리를 요구하는 시대, 그 흐름만큼은 변하지 않은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사회의 보편적인 틀은 변화하고 있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 사회는 전체적으로 조금씩 느리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지금의 30대는 과거의 20대와 같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흐름의 변화 속에서 우리의 인식 또한 어느 정도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청춘을 살아가기에도 벅찬 지금, 그 청춘을 빨리빨리에 맞춰서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혹은 '내가 너무 모자란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