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이른 결론

by 최윤형

지금 중요한 건, 책이 아니잖아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많다. 대표적으로 독서와 보고서 작성 같은 것들. 얼핏 사소해 보일 수 있으나, 이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활동이다. 문장을 한 자 한 자 이해하고, 문맥을 파악하며 내용을 내면화하는 독서는 특히 그렇다. 고전문학이나 번역 문서, 예컨대 러시아 문학처럼 이름조차 낯선 인물들이 등장하는 책을 읽을 땐, 그 집중의 강도는 배가된다.


보고서 작성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수치나 항목을 세는 일일지라도, 그 정확성을 요구받는 순간 집중력은 필수다. 하나하나를 빠뜨리지 않으려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리거나, 모니터를 손톱으로 터치하며 숫자를 센다.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해내는 '멀티플레이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하나에 몰입하려면 다른 모든 것은 배제돼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독서모임을 오랜 기간 운영하면서 매달 세 권가량의 책을 꾸준히 읽어왔다. 독서는 나에게 루틴 이상의 무게를 갖는 활동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환경적 조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너무 시끄러운 곳도, 지나치게 고요한 곳도 집중을 방해한다. 집은 물건이 너무 많아 시선이 흐트러졌고, 독서실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공간이라 오히려 책에서 멀어졌다.


나는 독서를 하다 인상적인 문장이 있으면 필사를 한다. 그러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날이면 몇 페이지를 읽었는지 수시로 확인하며 멍하니 페이지 수만 계산하게 된다. 특히 흥미롭지 않은 책의 마지막 몇 장은, 독서모임을 위한 의무감만으로 버티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집중'은 작업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잡생각 없이 하나의 일에 몰입할 수 있을까. 특히 우리 같은 청춘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기성세대는 어쩌면 공사 구분이 명확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법을 이미 터득했을지 모른다. 반면,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디딘 우리는, 매일같이 새로운 감정과 생각에 노출되며 여전히 쉽게 흔들린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감정은 ‘사랑’이다. 사랑은 청춘의 상징이자, 때로는 우리의 사고와 일상마저 뒤흔드는 감정이다. 나 역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스물다섯의 삶을 살아가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겪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다. 관심에서 시작해 썸, 연애, 그리고 이별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은 삶 전체를 조여오기도 한다.


상상해 보자. 당신은 이제 막 성인이 된 대학생이다. 어느 날 우연히, 관심이 있는 사람과 단둘이 좁은 공간에 있게 된다. 이 사람은 한 달 뒤에 떠날 예정이다. 당신의 관심은 이미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정작 당신은 그 순간 읽어야 할 책을 펼쳐 들고 있다.


그 상황에서 당신은 진심으로 그 책에 집중할 수 있을까? 작가에게 미안할 정도로, 그의 문장을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을까?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단지 한글이라는 문자만이 허공에 맴돌 뿐이다. 그렇다고 말을 걸자니 두렵다. 첫 단추부터 꼬일까 걱정되고, 괜히 어색해질까 머뭇거린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그렇게 아무 말도 못 한 채 시간이 흘러간다.


결국,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외부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안에 자리한 감정, 특히 사랑 같은 본능적인 감정이 때로는 집중을 가장 강하게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우리는 사랑과 관심, 외로움과 불안, 두려움과 기대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다. 그런 감정들 사이에서 순간의 몰입을 기대한다는 건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우리의 삶을 너무 미워하지 말자.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어른들은 말하지만, 아직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지조차 결정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주어진 수많은 기회와 가능성 속에서 너무 이르게 선택한다면 훗날 다른 경험을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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