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에 대한 우리의 관점

능력주의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by 최윤형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 것은 마땅한가? 능력주의 앞에서 대부분은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현재 내 모든 성취가 내 능력에서 비롯되었는가 라는 질문에는 대부분 긍정하지 않는다.

평가의 기준은 능력에 두면서도, 내 성취를 온전한 내 능력으로 보지 않는다면, 능력주의라는 생각 자체에는 모순이 발생한다.

예컨대 애초부터 나의 능력으로 시작된 기회가 아님에도 내가 우연한 계기로 세계적 수준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고 가정하자. 결국 평가는 다른 세계적인 인물들과의 능력 차이에서 비롯되나, 자수성가한 경쟁자와 달리 나는 운이 가득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물론, 그런 삶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내게 선물 같은 운을 준 행운의 여신을 만나게 됐다면, 그 만남이 그저 운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다시 예를 들면, 내가 어렵사리 입학한 대학에서 우연한 계기로 어느 업종에 종사 중인 특강 강사를 만났다고 해보자. 특강 강사를 초빙한 것은 학교의 능력이었고, 그 강사의 강의에 참석하게 된 것은 운이라고 하면 여기까지는 내 능력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 학교에 입학한 것은 오롯이 내 능력이었기에, 결국 모든 일의 발단은 내 능력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 운을 내가 찾는 것도 내 능력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내 성취가 모두 내 몫이냐는 질문에 긍정할 수 없는 것에 간단한 예는 부모로부터의 경제적 사정에 있다.

태어나길 서울의 고급 팬트하우스에서 태어난 자녀가 매월 백지수표만큼의 용돈을 받을 운명으로 태어났다면, 그는 상대적으로 성공을 위한 경제적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높은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태어나길 소멸 위기의 소도시, 그중에서도 가장 안 쪽에 있어 버스가 하루에 한 대가량 지나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자녀라면 어떨까. 당장 자신의 성공보다는 가정을 지키기 위한 기둥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두 아이의 기반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능력주의를 부정해야 하는가? 물론, 그건 아니다. 능력주의는 업무 또는 스포츠에 있어 실력을 수치화하기 가장 적합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금 더 나은 팀원 혹은 팀 형성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 된다. 능력주의가 없다면, 사람에 대한 평가의 여지가 모호해지며, 거시적 관점으로는 국가 혹은 기업 발전을 위한 단순한 생각인 실력자 양성의 시발점에 오류가 생긴다.

그러니,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겸손함이다. 백지수표를 줄 수 있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만일 내가 사는 곳이 무인도라고 가정해 보자. 돈은 많지만, 땔감 외에는 쓸 일이 없다. 즉, 자신이 이뤄낸 성취에 대해서는 너무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올라옴에는 누군가 내려갔다는 것일 수도 있으며, 그 과정에는 선천적 혹은 운명적으로 나보다 부족한 처지에 있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을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시선은 시상대 위에 선 누군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 모두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