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번째 생일을 보내고 있을 전국의 호랑이들에게

by 최삼숙

얼마 전은 내 생일이었다. 굳이 특별한 걸 하는 편은 아닌데, 이번 생일은 굳이 특별하고 요란하게 정신없이 보내고 싶었다. 서른아홉번째 생일이었기 때문이다(곧 40이라니 흑흑).


생일이 겹치는 지인들과 몇 차례 생일파티도 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했다. 생일 딱 하루만 비워놓고 촘촘히 일정을 잡고 누군가를 만나고 축하받으며 보냈다. 생일 케잌만 몇 번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I 입장에서 E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 한시적 파티걸이 되어 그렇게 생일주간을 보냈다. 때론 술에 취해 때론 음악에 취해 때론 사람들에 취해. 신나고 즐거웠다.


생일 당일을 비워놨던 이유는 혹시 그전에 남자친구가 생기면 함께 보내기 위해서 였는데(마이타로 나 5월에 남친 생긴다며?)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 이루어지지 않았고(마이타로 어플 지운다) 연이은 약속에 심신이 지쳐있기도 해서 이 참에 쉴 수 있어서 잘됐다 싶었다.


‘오늘 뭐함?’

‘암것도 안함. 퇴근하고 집 가서 드러누울 예정‘

‘저녁 ㄱ?’

‘ㄱ’


생일 오전, 평소 자주 보는 학교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우리는 만나서 수육에 냉면 한그릇씩 때리고, 근처 한강에 가서 맥주 한캔씩 추가로 때린 후 시덥잖은 이야기에 낄낄대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요란한 축하도 케잌도 없었지만, 정신없던 생일주간 중 유일하게 온전히 마음이 편한 시간이었다. 내가 혼자 생일을 보내는게 마음이 쓰였을 친구의 마음은 ‘저녁 ㄱ?’ 한마디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결국 나는 내가 가장 보내고 싶었던 방식으로 생일을 보냈다.


요즘은 만나지 못하더라도 sns로 축하 메시지나 선물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한테 축하 메시지가 왔다. 그가 대학을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부터는 자주 보진 못했지만, 가끔 내가 뉴욕에 놀러가거나 그가 잠시 귀국하면 만나곤 했었다. 그는 내 생일을 축하해 주면서 자신이 요즘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데 읽어 보라며 링크를 보내 왔다. 어? 나도 쓰는데! 하고 나도 나의 브런치 링크를 공유했다. 최근에는 잘 안써~ 하면서.


얼마 지난 후 친구에게 장문의 카톡이 왔다.


나의 브런치 글을 전부 읽었는데, 웃다가, 감동받고, 분노하고, 심지어 눈물도 조금 흘렸다고, 뭔가를 읽고 눈물을 흘려 본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고 했다(그가 퇴근하는 기차 안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학교 다닐 때 나는 그가 에픽하이 미쓰라를 닮았다고 항상 생각했다).


나의 지난 이야기를 읽다가 예전에 우리가 뉴욕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고. 난 결혼 한 달 전에 동생이 살고 있던 뉴욕에 갔었고 그때 그 친구도 본 적이 있는데, 나의 전 남편의 지인이자 나의 친구인 그에게 무언가 고민상담 비슷한 것을 했었다. 그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충분히 같이 고민해주지 못했던 것 같아서 사실 지금까지도 나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고. 그런데 내 글을 통해 내가 얼마나 성숙하고 단단하고 멋지게 이겨냈는지 보게 되어 한편으로 안심이 된다고.


눈물이 났다. 어릴 때 친구라는 건 수년간 연락을 하거나 만나지 않더라도, 언제가 되었든 갑자기 나타나 1만 얘기해도 10까지 찰떡같이 알아 듣는 능력이 있고, 시간을 순간이동해서 어제 만났던 것처럼 갑자기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그런 반갑고 신비로운 존재인 것 같다. 20년 전에도 교실 뒤에 서서 그 친구에게 심각하게 인생 고민(주로 연애상담)을 토로했던 흐릿했던 기억들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미소가 피어올랐다. 눈은 촉촉한데 입은 웃고 있는, 요상하고도 따뜻한 감정이었다. 그의 미안함과 눈물이, 그리고 이렇게 전해진 마음이 참 고마웠다. 멀리서 온 그의 메시지가 이번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생일선물이었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나의 삼십대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짧은 서른아홉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난 주저없이 삼십대라고 이야기해왔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태풍의 핵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빨리 나이드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이 고통의 삼십대를 빨리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시간동안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는 앞으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고, 나의 일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들은 도파민 가득한 관계의 말로가 무엇인지 치가 떨리는 깨달음을 남겨주었다. 근사해보이고 삐까뻔쩍한 사람들에게 기웃거렸던 돌이켜보면 공허했던 시간들은 화려하고 힙하게 살기에는 나는 외양도 마음도 촌스럽고 쿨하지 못하다는 걸 깨우쳐 주었기에 무용한 시간이 결코 아니었다.


누군가의 사랑받는 아내와 엄마가 되는 것에서 오는 그 미지의 감정을 가져보지 못했지만, 아내와 엄마들이 항상 꿈꾸는 내일 당장 떠나기, 주말에 가만히 누워서 아무 것도 안하기(심지어 엄마가 밥도 차려주심), 명절에 드러 누워서 넷플릭스 정주행(명절 내내 엄마가 밥 차려주심)을 원없이 하고 있다(죄송합니다 어머니). 혼자인 시간동안 나는 글쓰기의 즐거움, 달리고 나서의 뿌듯함, 혼밥과 혼영의 생각보다 괜찮음을 알게 되었고, 같이 놀 싱글 친구들을 수집하면서 다양한 방면의 새롭고 재미있는 일들도 경험하게 되었다. 힘든 일들이 내 인생에 없었다면, 느끼거나 일어나지 않았을 것들이다. 하늘은 시련과 함께 내 옆에서 손 잡아주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친구도 보내주었기 때문에 시련이 온전한 불행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불행은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이 교통사고처럼 찾아온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든 나 자신이든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다는 것,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뭘 해도 안 되는 시기가 있고 그때는 그저 시간이 지나는 것 외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 그 시간은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 그러다보면 좀 나아지고, 또 좀더 나아진다는 것, 인생은 업다운의 연속이고 엄청난 행복이란 것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 지금 이순간에 충실하고 가능한 한 열심히 즐거운 것을 찾아 해야 한다는 것. 외로움을 이겨낸다면 나는 천하무적이 될 거라는 것. 지난 시간이 고군분투하는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고, 되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아는 이 뻔한 얘기들을 문장 하나하나 쓸때마다 지난 시간과 감정이 스쳐가며 가슴이 아려오는데, 그동안 나에게 고생했다고 토닥토닥 해주고 싶다.


나는 동갑내기들에게 알 수 없는 편면적 내적 친밀감을 느끼곤 하는데(예를 들어 TV에 동갑 배우들이 연기를 정말 열심히 잘 할때 다른 배우들보다 더 챙겨보게 되고, 동갑인 운동선수를 더 응원하게 되는 그런 마음이 있다. 친구야 너도 참 고생이 많다), 좌충우돌하면서 삼십대를 살아냈고 2025년 마지막 삼십대의 생일을 맞이하고 있는 나의 동갑내기들에게도 파이팅 해주고 싶다(빠른 년생 포함이다 어린 척 하지마라).


전국의 호랑이들이여 마지막 30대의 생일 축하한다. 그간 참 고생 많았고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잘 하고 있다. 이 시간을 발판 삼아 40대도 호랑이의 기상으로 재밌게 잘 살아보자. 05학번 이즈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