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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영 Sep 23. 2022

<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18









그날은 몹시 더운 날이었다. 시내 서점에 나갔다가 우연히 노란색 표지의 책 한 권을 보게 되었다. 제목이 <살짝 웃기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라는 제목이었는데 작가나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 바가 없지만 어쩐일인지 읽고 싶어져서 그냥 한 권 들고 집에 돌아왔다. 글쓰기 작법서를 가끔 읽기는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냐, 생각하는 쪽에 가까운 편이긴 하다.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교과서나 문제집을 펴놓고 그 부분부터 공부를 하면 되는 것이지 공부법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 해서 그걸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하지만 전직 카피라이터였던 편성준 작가가 쓴 그 책은 꽤 재미있게 잘 읽히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글쓴이 자신에게 영감과 기쁨을 주었던 여러 책들을 소개하는 친절도 잊지 않으셨더라.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야지 마음먹고 몇 권의 책을 메모해두었는데 그중 한 권이 오늘 소개할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이다.



이 책을 제일 먼저 사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소개글 때문이다. 모든 미국의 작가들은 데뷔전에 이 앤 라모트의 책을 읽는다고 하니 진짜 대체 무슨 내용이 들어있길래 작지도 않은 그 나라의 작가 지망생들이 이 책을 읽는다는 건가. 게다가 "모두"라고 하니 더 궁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을 꼼꼼하게 다 읽은 지금에는 한 다섯 번쯤 읽고 또 읽어야겠구나 마음먹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책이었다. 



사실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곳에 일상 글이라도 꾸준히 올려봤던 사람이라면 나도 좀 뭔가 작품이 될만한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글쓰기라는 것이 누가 레슨을 해 줄 수도 없는 일이고.(물론 글쓰기 교실이나 대학의 문창과 같은 곳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서 큰 도움을 받았다는 사례는 생각보다 적은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작법서 읽어봐야 약간 뜬구름 잡는 소리가 많기 마련이다. 작가들은  내가 보기엔 원래 잘 썼던 것 같은데 막 본인들도 힘들었다고 약간 엄살에 가까운 소리들을 한다. 나는 모니터 앞에서 흰 화면을 바라보다가  아이고 막막해라 그냥 가서 집안일이나 더 하자꾸나 하고 일어난 적이 더 많은 것 같은데 뭐 야구경기를 보다가 누가 2루타를 치는 순간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는 그런 새빨간 거짓말이나 막 하고 말이지.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조차 이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그냥 글감으로 생각해서 글을 쓰는 것이지 실제로 못 쓰는 것은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더 많았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거의 쓰레기와 같은 초고를 어떻게 다루는지부터 시작해서 작가로서의 본인이 어떤 망신을 당하고 어떤 두려움에 휩싸이는지 조차도 망설이지 않고 이야기를 해준다. 책의 맨 나중에 나오는 옮긴이의 글에 따르면 이 책의 원제는 버드 바이 버드(bird by bird)로 직역하자면 새 한 마리씩, 한 마리씩이라고. 처음부터 너무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작은 일부터 천천히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진실한 글을 쓰는 일, 작가가 되는 일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저자의 따뜻한 조언을 읽고 있자면 이 책이 글쓰기에 대해서만큼은 매우 구체적이고 온갖 실용적인 방법들로 가득 차 있는데도 불구하고 글쓰기 책이 아니라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조언을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작가로서의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이 경외의 감각을 되찾아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고, 그 새로움에 허를 찔리고 종내에는 자신을 가두던 좁고 제한된 세계를 부수고 나올 수 있게 돕는 역할 말이다.(p.171)라는 구절과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세상과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아름다움과 고통을 발견하고 놀랄 수 있다, 편협하고 어두운 나르키소스적 관점으로는 아무에게도 희망을 주지 못한다(p.174)라는 부분을 읽다 보면 

왜 그토록 많은 지망생들이 이 책을 읽고 위안을 받는지, 허황되게도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는 조바심 가득한 꿈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을 갖고 나아가게 되는지 잘 알게 된다고 할까. 




나도 오랫동안 블로그(네이버 블로그)를 통해서 잡다한 글들을 써오기는 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을 따라 타지에 와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외롭던 날들이 정말 많았었는데 그때마다 책을 읽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곤 했다. 그렇게 읽고 쓰고 듣던 일들이 나의 고독을 덜어 주었던 것도 같다.  그때 느낀 것들을 그냥 아주 단순하게만 써놓았기 때문에 그걸  무슨 글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나에게는 꽤 많은 양의 초고가 있구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는 글을 너무너무 잘 쓰는 사람들도 많고 집안에 조용히 앉아서 전업으로 아이들 키우는 내가 굳이 말을 얹지 않아도 똑똑하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아는 사람들 또한 정말 많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내가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만큼은 누구라도 쓴다, 아무나 글을 쓰는구나에서 그 아무나가 나인 것도 같다. 하지만 내가 특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아직 인생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도 맞지만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삶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어려운 상황들 속에서 앞을 알지 못한 채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때  (좋은 글은) 우리를 웃음 짓게 하고 나아가 낙천성을 되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것은 바다에서 무시무시한 태풍이 불어올 때 배 위에서 노래를 하는 것과 같다. 당신이 화난 풍랑을 잠재울 수는 없지만, 노래는 배 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바꿀 수 있다" 고. 






어떤 책은 길을 터주고 용기를 주기도 한다.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책을 만나는 일은 매우 희소한 경험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 <쓰기의 감각>이 그런 책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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