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 지음, 다산책방펴냄, 2017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인 것 같아
조금 민망하기도 하지만
사실 한 사람의 인생을 단 몇 줄로 간명하게 요약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한다. 평범한 인간에게도 악하거나, 약하거나,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혼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심지어 역사적으로 굵직하고 역동적인 사건들이 줄줄이 일어났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 같고.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 출신으로 평생을 소비에트 공산국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공포정치가 펼쳐졌던 암울한 시대에 살며 예술 활동을 했던 작곡가다. 체제에 적극 협력했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기도 했고. 사람들은 동료 예술가들을 비판하고 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음악을 작곡하며 살아왔던 그를 기회주의자로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의 저자인 줄리언 반스는 꼭 그렇게만 봤던 것 같지는 않다. 드라마틱한 소설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대신 실존 인물이었던 쇼스타코비치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그가 갈등하고 두려워했던 것들을 파헤쳤고 그러한 독재 사회주의 체제에서 예술가는 어떻게 살면서 창작활동을 했을까라는 부분을 계속적으로 기술한다.
1906년생인 쇼스타코비치는 이미 19살에 작곡한 교향곡 1번이 연주되자마자 세계적으로 큰 호평과 함께 주목을 끌었던 음악 신동이다. 그의 앞날엔 별로 거칠 것이 없어 보였는데 이른바 <므젠스크 멕베스 부인>이라는 오페라가 소비에트 정권으로부터 큰 비난을 받게 되고 공격을 받게 되는데 이때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직감한다.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이때 이 형식주의 예술에 대한 비판으로 600여 명이 넘는 동료 예술가들은 수용소로 끌려가는 등 모진 고초를 겪었다.
그러다 므라빈스키의 지휘로 초연한 교향곡 5번을 통해 반동사상(?)이 교정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그 이후로는 계속 체제 선전용 작품들을 작곡하면서 탄압을 피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프로코피예프와 함께 집중 공격 대상이 되고, 이후에는 더더욱 적극적으로 체제에 협력한다. 자신이 제일 존경하던 스트라빈스키를 비난하는 연설을 하는 그 과정이 소설에서는 정말 인상적으로 그려졌는데 그때는 그래도 소극적인 반항이라도 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너무 오래 살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더더욱 동료 음악가들을 매도하고 서방 정치와 예술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뛰어난 천재 음악가들이 대체적으로 그렇듯이 쇼스타코비치도 음악을 만들고 있을 때에는 너무나 그 재능이 빛나는 사람이었지만, 일반인처럼 일상을 살아가기에는 모르는 것도 많았고 모자라는 것들도 너무 많았다. 체제에 순응하기가 너무 싫어서 비판하는 유서를 써놓고 죽을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렇게 죽어봤자 자기의 생각과 음악이 제대로 남지도 못할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죽지도 못한다. 비겁한 인간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음악이 살아남아 오랫동안 연주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겉으로는 그렇게 순응하며 살았지만, 때로는 난해하게, 그리고 모호하게 음악을 작곡함으로써 자신의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고. 라흐마니노프와 함께 20세기 생존 작곡가로서는 유례가 없을 만큼 큰 인기도 누렸고 오래오래 살다가 죽었다.
소설은 이러한 쇼스타코비치의 치열한 내적 갈등을 묘사하면서 어느 시대에나 있는 시대적 소음, 그러니까 독재, 폭력, 가난, 폭압 이런 것들에 대해 쇼스타코비치가 어떻게 응답했는가를 보여준다. 독재 치하에서 삶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했던 예술가를 미화하는 것도 아니고, 구절구절 변명을 늘어놓은 것도 아니어서 어떻게 보면 참 냉정하다 싶은데도 그의 인생에 대해 어떻다고 평가하기가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음악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좀 생기기도 했고. 아주 유명한 몇몇 곡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 기회에 찾아서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레닌은
음악이 기분을 처지게 한다는 걸 알았다.
스탈린은 자기가 음악을 이해하고
감상할 줄 안다고 여겼다.
흐루쇼프는 음악을 경멸했다.
어느 것이 작곡가에게 최악일까.
(p.168)"
"다른 모든 것들이 실패했을 때,
세상에는 허튼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일 때에도 그는 이것만큼은 고수했다.
좋은 음악은 언제나 좋은 음악이고, 위대한 음악은 아무도 망가뜨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p.180) "
"그가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에 맞설 수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그 음악 - 그 존재의 음악- 누군가에 의해 진짜 음악으로 바뀌는 음악,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면 수십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그런 음악.
그가 고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p.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