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역사와 명칭

by 최영남

1. 한강의 역사와 명칭

한강은 한반도 중부에 위치한 강으로, 대한민국의 국가 1급 하천이다. 북위 36° 30~38° 55’ 동경 126° 24’~129° 02’에 걸쳐 한반도 중부지역의 강으로 흐르는 물의 양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 남한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강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두물머리)에서 만나 서울시를 통과하면서 김포 반도에서 황해로 흘러 들어간다. 이때 거의 하구에서 임진강과 만나는데, 임진강 수계 지역을 한강수계로 포함시키느냐 마느냐에 대한 이견이 있기는 하다. 임진강 합류 이후 구간을 조강(祖江)이라고도 한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폭이나 유역이 비등하지만, 강의 원류는 보통 가장 긴 흐름을 기준으로 하므로 한강의 원류는 남한강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강의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시로, 금대봉(1,418m) 고목나무샘과 제당굼샘, 대덕산(1,307m), 비단봉(1,281m) 자락의 수맥이 창죽동 검룡소의 계곡에서 용출된 뒤, 정선의 아우라지에서 한강의 본류인 골지천이 송천을 만나 비로소 ‘계곡물’이 아닌 ‘강’다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월 방향으로 이어지다가 서강과 합류하고 다시 남하하여 충청북도 단양군을 지나서 제천시의 충주호로 모여든다. 이후 팔당에서 북한강과 만날 때까지 북상한다.(한국하천일람(국토교통부, 2013.12.31.))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 충청북도 북부, 강원도 영서 주민들은 이 강 또는 지류의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한강은 그 이름이 말하듯 공업용수, 농업용수뿐만 아니라 서울, 춘천, 원주, 제천, 충주 등 유역 도시의 상수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반도의 중앙부 평야 지대를 차지하는 한강 하류부는 신석기시대부터 문화발달의 터전이 되어왔으며, 삼국시대 이래 패권을 다투는 요지가 되어 왔다. 한강 유역의 농업생산력과 수운으로 인한 교통로 확보, 중국과의 해상교역로 확보 등 한강이 보유하고 있는 장점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시대에 태조가 이곳에 도읍을 정함으로써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중심을 이룬 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한강이 지나는 주변 지역은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즐길 거리와 볼거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한사군과 삼국시대 초기에 한강과 임진강은 한반도의 중간 허리 부분을 띠처럼 둘렀다는 뜻에서 대수(帶水)라 불렀다. 고구려에서는 아리수(阿利水), 백제는 욱리하(郁李河)라고 했으며, 신라는 상류를 니하(尼河), 하류를 왕봉하(王逢河)라 불렀다. 「삼국사기」신라편에 보면 왕봉현(王逢縣)은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행주지역으로 한강을 한산하(漢山河) 또는 북독(北凟)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한신이란 한산주(漢山州)이며, 지금의 경기도를 가리킨다. 독이란 바다로 들어가는 강이란 뜻으로 ‘북독’이란 신라의 북쪽에 위치 한 큰 강을 의미한다.

고려 때에는 큰 물줄기가 맑고 밝게 뻗어 내는 긴 강이라는 뜻으로 ‘열수’라고 불렀으며, 모래가 많아 ‘사평도(沙平渡) 또는 사리진(沙里津)이라고 불렀다. 그 이전에 백제가 동진과 교류하여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한강의 이름을 중국식으로 고쳐서 한수(漢水)라 불렀으며, 그 뒤로부터 옛 이름은 차츰 없어지고 마침내 한수(漢水) 또는 한강으로만 불리었다.


‘한강’은 본래 우리말의 한가람에서 비롯된 말로 한은 ‘크다, 넓다. 길다’라는 의미이며, ‘가람’은 고어로 크고 넓은 강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도 있다.조선시대에는 ‘경강(京江)’이라고도 불렀으며 외국의 문헌에는 서울강(Seoul river) 이라는 기록도 있다. 한편 금강산에서 흘러오는 물이 화천을 거쳐 춘천으로 흐르는 북한강을 예전에 화천에서는 “낭천”, 춘천지역에서는 “모진강”으로 불렀으며, 소양강과 북한강이 합쳐서 가는 강을 “신연강”이라고 불렀다. 강의 이름은 그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것이 통례이나 지금은 북한강을 모진강이라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모진강을 아는 사람도 거의 드물다.


그러나 옛날에는 북한강, 즉 모진강은 모진나루터로 유명했다. 서울에서 소금 배가 올라오고 특산물을 싣고 내려가기도 했으며 신포리로 걸어가는 다리를 놓고 이 다리를 역시 모진교로 불렀던 곳으로 춘천댐 건설로 모진강, 모진나루터, 모진교가 모두 사라졌다. 또한 북한강 뱃길이 끊어진 지도 80여 년이 지났다. 1939년 청평댐 공사가 시작되고 1940년대에는 화천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마포나 광나루 뚝섬에서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던 뱃길이 막혔다. 북한강의 뗏목이 사라지고 돛을 달고 금강산 마을 골짜기 마을까지 올라가던 배가 종적을 감춘 것도 이때부터다. 더욱이 춘천댐, 의암댐이 준공된 이후부터 북한강은 흐르지 않는 강이 되어 장강의 모습을 잃었다. 북한강은 남북 분단의 역사를 상징하듯 흐르지 못하는 강이 되어 분단을 지켜보고 있다.


한강의 폭은 평균 1.2km 정도로 매우 넓은 편이며, 하류 지점인 파주시 오두산성 근처는 2km가 훨씬 넘는다. 거기에 한강 주변에 거대한 둔치와 넓은 한강공원까지 조성되어 있어서 폭이 더욱 커진다. 한강의 폭은 국내에서만 클 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른 강과 비교해도 매우 넓은 편이다. '도심의 한가운데를 통과하여 흐르는 강'으로 따지면 더욱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영국 런던의 템즈강이나 프랑스 파리의 센강 등 세계에서 유명한 도시의 강에 비해 폭이 상당히 넓어서 사전지식 없이 서울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은 한강이 기대 이상으로 거대하고 넓은 폭과 지평선이 잘 보이는 웅장하고 멋진 경치를 보면서 많이 놀라곤 한다. 서울의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소위 '한강뷰' 라고 부르는 야경과 유람선을 타고 바라보는 한강의 경치도 상당히 좋다.


또한 하상계수가 매우 높으며, 유역은 지나치게 좁은 강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장마나 집중호우 같은 큰비가 내리면 잠수교가 잠기고 그 넓은 둔치와 한강공원도 모두 침수될 정도로 한강은 유량의 변화가 아주 크다. 파리의 센강이 하상계수가 10배가 되지만 서울의 한강은 하상계수가 무려 380배가 넘는다. 이와 반대로 갈수기인 겨울에는 강의 폭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1980년대 초 북한이 금강산에 댐(임남댐)을 건설함에 따라 수공(水攻) 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이 잠겨 위험하다고 온 나라가 시끌시끌한 적이 있다. 이때 전 국민 차원에서 모금 운동을 펼쳐 방어용으로 평화의 댐을 건설했다. 이 댐은 평소에는 거의 물이 담겨 있지 않다. 실제로는 북한의 임남댐은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댐으로 물길을 동해안으로 돌려 낙차를 이용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강으로 유입되는 물이 연간 약 13억 ㎥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남측에서 전기를 공급하고 북측에서 물을 내려 보내는 상생을 위한 협력방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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