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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소비자학자 Feb 27. 2018

The good wife, finale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지금의 나는 지금까지의 나다.


 여기엔 반드시 한 마디가 더 붙어야 한다.


그러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미드 굿와이프를 드디어 다 봤다.

 5시즌 시작할 무렵(이니까 2012년?;)에 동시에 앞에 두어편 보다가, 뭔가 날 불편하게 만드는 설정들 때문에 그만뒀었다.

 작년 말에 넷플릭스 가입하면서 정말 기대치도 않게 있는 걸 발견해서, 정식(?)으로 본다는 데 기쁨까지 느끼며, 두달 반 정도 정말 착실히 봤다. 5시즌부터 7시즌 피날레까지.

 윌이 죽는 걸 알고 있었고, 결론이 애매모호하게 끝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한국 리메이크판 덕분에 당시 반짝 정보 찾으러 다니고도 했었는데. 다 잊어버렸었다. 다시 정말 애정 새록새록, 매일 놀라며 보고.

 피날레.


 Aㅏ...........


 위에 내가 좋아하는 말은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사람이 일순간에 돌변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은다. 그저 매일매일의 꾸준한 발걸음, 작은 선택들들들이 내일의 방향을 잡아줄 뿐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지금까지의 나일 수밖에 없지만, 그 옛날 언젠가의 나와는 상당히 달라져 있다. 그걸 우리는 성장이라고 부른다.

 굿와이프는, 알려져 있듯, 주인공 얼리샤 플로릭의 성장 드라마다. 그런데, 음, 이 성장이라는 것이,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참 재밌다. 분명히 얼리샤는 커리어를 회복하면서 엄청 유능함을 뿜뿜하고 있고, 더이상 남편에게 기대지 않으며, 아이 둘은 제멋대로(..)지만 어쨌든 대학에 진학했고, 소위 말하는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 의지도 표명했고, ‘나 좀 성장한 듯’ 하고 자부도 하는데.

 여전히 굿와이프로 남는다.

 그 개X놈의 새X인 피터 플로릭 옆에서, 와이프로서의 역할에 엄청 충실하다. 되살려진 커리어적 능력과 특유의 호감 사는 캐릭터, 그리고 돌파력까지 다 동원해서, ‘착한’ 아내를 넘어 ‘유능한’ 그리고 ‘적합한’ 아내까지 되어버렸다.

 

 피터가 정말 개X놈인가는 지금 보니 잘 모르겠다. 그리고 윌이랑 잘 됐으면 행복했을까 역시 판단하기 힘든 문제다. 제이슨하고도 마찬가지고. 애매모호한 표정만 짓고 여기저기 딴 얘기 하고 다녔지만 결국 여성 파트너 로펌에 대한 야망이 있었던 건 맞으니까, 캐리가 등을 돌린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맨 끝장면, 다이앤이 얼리샤의 뺨을 아주 그냥 철썩 때리는 게 어쩌면 시청자의 입장에서 얼리샤를 바라보는 표준(?)을 제시한 것 같다.

 주지사 피터의 부패 관련하여 연방검찰이 찍어놓고 수사하는 내용이 7시즌 전체의 스토리다. 그런데 이게 엄청 복잡하게 굴러가서, 누가 내편인지 니편인지 적인지 아닌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얼리샤의 감정선도 공감하며 따라가기 힘들다. 진짜 뭐 하나 결정되지 않고 심플하지 못한 상황이다.

마지막 화에 죽은 윌이 상상속에서 나타난다.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일을 도와주는 상사로서인데. 가만히 보면 재미난 게, 꼭 얼리샤의 편을 들질 않는다. 얼리샤는 남편이 무죄라고 믿고 있다. 이혼하기로 했으면서, 기소까지는 도와달라는 남편 말에 끄덕이고는, 열과 성을 다해 도와준다. 그동안 얼리샤를 성장시켜준 주변인들의 기분을 나쁘게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괴로워하는데, 상상 속 윌은 말한다.


 No, things were never simple.


 얼리샤는 언제나처럼 자기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 본인을 둔다. (이건 제이슨의 대사로 설명된다) 분명히 성상납 혐의로 검사 남편이 갑자기 감옥에 가, 취직을 해야했던 그때의 얼리샤와 지금의 얼리샤는 다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얼리샤의 지금까지의 선택들들들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다이앤의 따귀는 말한다. 혼자 불쌍한 척 하더니 가장 이기적이고 자기만 알고 그래서 가장 이득을 본 건 너야!



 마흔 정도 되니까,

 더이상 삶이 심플하지가 않다.

 심플한 척 판단하고 행동하지만, 속내는 엄청 복잡하다. 그냥 겉으로 징징대지 않을 뿐. ‘이건 이렇더라’ 단정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분명히 쉰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르겠지만, 오늘과 그리고 이제부터의 내가 다다른 길 도중에 50이하는 나이도 맞이하겠지.

 30대 중반부터, 미혼일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끌어온 굿와이프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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