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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소비자학자 Jul 09. 2018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테마3. 소비의 동인

르네 지라르 지음, 김치수 옮김

원서 1961년, 번역서 2001년



ver 180328

르네 지라르의 1961년 저작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욕망을 삼각형 구조로 분석한 책이다. 그가 주로 다루고 있는 소설은 <돈키호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적과 흑> 등으로, 이 소설 각각의 주인공(주체)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이상향(대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욕망은 대상에게 가까이 가는 것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주체는 이상형을 직접 소구하는 것이 아니라, 중개자를 모방함으로써 욕망을 실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구조가 바로 ‘삼각형의 욕망’ 이다. 

그런데 욕망은 주체가 스스로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중개자에 의해서 주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욕망의 간접화’라고 부른다. 즉, 욕망은 중개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이때 주체와 중개자 사이에 경쟁관계가 있는 것은 내면적 간접화라 하고, 경쟁관계가 없는 것은 외면적 간접화라 저자는 명명했다. 내면적 간접화는 주체가 내면에서/이미 알고 있는 누군가 중에서 중개자라는 존재를 만들었다는 것으로, 외면적 간접화는 주체가 외부에서 중개자를 찾아냈다는 것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대상이 되고 싶은 주체의 욕망은 보통 주체가 가진 재화 혹은 서비스를 탐내는 것으로 현실화된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욕망은 그것들이 가진 사용가치가 아닌, 그것들이 가진 의미, 말하자면 교환가치에 따르게 된다. 

현실 사회에서 중개자의 역할은 광고모델, 연예인, 셀럽, 유명인, 유튜브 스타 등이 담당한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이들에게 욕망을 투영해 간접화한다. 그런데 이 중개자들은 그 자체로 욕망을 현현시키는 존재는 아니다. 뒤에 있는 누군가가 그들을 통해 특정한 욕망을 경제 체제에 생성시킨다. 욕망의 대상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뒤에 있는 누군가는 현대 경제체제에서 보통 기업이 담당하며, 이러한 활동을 바로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이 개념을 포함시키면 르네 지라르의 삼각형의 욕망은 ‘사각형’으로 진화될 수 있다. 

초기 마케팅 시대에는 소비자들이 광고를 보고도 그게 광고인지 모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중개자를 그들의 욕망⎯편안한 삶과 행복한 인생⎯을 이미 이룬 존재들로 여겼고, 따라서 모방하려는 욕구 역시 매우 강력했다. 마케팅이 잘 먹히던 시대였다. 

지금은 마케팅이 통용되기 힘들어졌다. 소비자들은 광고인 걸 안다. 즉, 중개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나에게 구매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마케팅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최근에는 여기서도 한 단계 더 나아간 것 같다. 소비자들은 기업의 의도를 알면서도, 그냥 시키는 대로 정해진 욕망을 하기도 한다. 중개자를 좋아하고 모방하되, 꼭 그들이 심어주는 욕구만이 아닌 다른 욕구를 충족해본다.  

소비자는 기업의 마케팅 활동을 겪으며 나의 본질적인 욕망과 간접화되어 있는 욕망을 견주고, 선택의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 자체도 어떤 의미에서는 결국 주어진 욕망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유주의가 발전하고 사회는 평등해졌으며 경쟁이 심화된, 그래서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욕망은 선택하는 자유다. 그렇다면 기업은 자유라는 궁극적인 욕망을 소비자에게 주는 것으로 마케팅의 빅픽처를 완성한다. 만족의 종류는 주관식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객관식이다. 그렇다면 욕망 간접화의 종류에 주관식 간접화와 객관식 간접화라는 분류를 도입해볼 가치도 있을 것 같다.



김쌤의 추천이유

우리가 '이상적인 자아'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또 소비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어떤 특정 롤모델이나 연예인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 그 삼각형 욕망의 구조를 치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현대 소비욕망의 본질을 포착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김쌤의 수업시간 코멘트

수업을 위해 책을 고를 때 고민 없이 바로 선정한 책이다. 우리의 욕망은 남이 하는 욕망을 빌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개인과 나와의 거리가 매우 중요하다~ 과연 서울대 학생들의 욕망은 나의 욕망일까, 부모님의 욕망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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