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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Jan 05. 2023

〈메모리아〉, 새로운 감각과 연결감으로의 초대

〈메모리아〉 리뷰

7★/10★


  ‘쿵’. 침대에 누워 있던 제시카가 잠에서 깬다. 별다를 것 없는 일이다. 소리가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제시카는 자꾸 이 ‘쿵’ 소리가 신경 쓰인다. 그래서일까? ‘쿵’ 소리가 점점 더 자주 들려오는 것은.



  문제는 이 소리가 제시카에게만 들린다는 점이다. 때문에 제시카는 이전과 같이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소리의 정체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음향 전문가에게 가서 자신이 들은 소리를 정확히 재현하고자 하고, 병원에 가서 의사와 상담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리의 정체는 여전히 미궁에 있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나서는 제시카의 여정은 그녀가 숲에서 에르난이라는 남자를 만나며 변곡점을 맞는다. 에르난은 모든 걸 기억하는 남자다. 그의 기억은 길가의 돌에 남은 ‘진동’(소리는 파동이다)으로 그 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고 세심하다. 에르난의 방식에서 제시카는 자기 머릿속의 소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단서를 획득한다. 에르난이 돌의 진동으로 또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연결되듯, 제시카 머릿속의 ‘쿵’ 소리도 그와 또 다른 누군가를 이어주는 소리, 즉 서로 떨어져 있는 존재들의 독특한 연결일 수 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메모리아〉는 ‘쿵’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다만 그 소리가 ‘교감’의 한 방편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나아가 그 소리가 콜롬비아의 슬픈 역사에서 파생된 것일 수 있음을 또다시 암시한다. 한 인터뷰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콜롬비아는 오랫동안 내전과 마약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영화를 찍기 몇 해 전 (정부와 반군 간) 평화협정이 체결됐지만, 여전히 누가, 어떻게 그간의 수많은 죽음을 책임질 것인지 등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억압과 폭력,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고,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 그게 이 나라의 역사였다.”


  즉 제시카가 끝내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그 근원을 궁금해하는 ‘쿵’ 소리는, 마찬가지로 그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콜롬비아인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감각적’ 표현이다. 수면 도중 머릿속에서 폭발음이 들리는 ‘폭발성머리증후군’을 앓은 감독이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카 캐릭터를 떠올리고, “내가 겪은 이 증상이 콜롬비아가 지닌 기억에 대한 일종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인터뷰 역시 이를 방증한다.



  요컨대 〈메모리아〉는 소리라는 감각으로 우리의 집단적 연결감을 확장하고자 하는 영화다. 영화가 명쾌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작고 미세한 감각으로 열리는 집단적 연결감은 결코 분명한 형태로 존재할 수 없다. 언제나 미지의 가능성의 형태로, 즉 늘 새로운 열림과 확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


  〈메모리아〉가 소리라는 감각에서 출발하는 영화임에도 OST가 없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 다소 긴 러닝타임(136분)의 이 영화는 지극히 느린 템포로 소리의 근원을 찾는 제시카의 여정(그리고 일상)을 좇는다. 영화의 시퀀스는 인과적‧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편집되지 않은(혹은 편집을 최소화한) 일상의 잔잔한 리듬은 역설적으로 ‘감각으로 연결되는 우리’라는 영화의 메시지를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기존 영화가 제공하는 자극적‧정합적 감각으로 인해 닫혀 있던 섬세한 감각을 조심스레 일깨워 관객을 제시카의 여정에 동참케 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감독의 인터뷰를 인용해보자.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 질문하지 말고, 그저 영화와 함께 존재해주세요. 그러면 시간여행을 하는 우주선에 탄 듯,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메모리아〉는 기존 영화가 제공하던 시공간에서 벗어나 미세하지만 사라질 수 없는 새로운 감각‧연결감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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