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wr Mar 30. 2023

불시착한 뉴욕행 비행기가 도착한, 여섯 개의 밤

〈여섯 개의 밤〉 리뷰

6★/10★


  〈드라이브 마이 카〉를 연출한 하마구치 류스케가 감독을 맡아 2022년에 국내 개봉한 영화 〈우연과 상상〉을 기억한다. 세 편의 개별 에피소드에서 주인공들은 대화를 통해 갈등을, 삶의 모순과 아름다움을 펼쳐냈다. 잔잔한 분위기의 영화지만 엄청난 흡인력을 가진, ‘말’의 놀랍도록 강렬한 힘을 확인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최창환 감독의 신작 〈여섯 개의 밤〉은 여러모로 〈우연과 상상〉을 연상시키는 영화다. 우선 이야기 구조가 그렇다. 비행기 엔진 고장으로 뉴욕행 비행기가 김해 공항에 불시착한다. 어쩔 수 없이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사람들. 영화는 총 세 개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탑승객들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모토는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말, “모든 여행은 여행자가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목적지가 있다”이다. 그리하여 개별 여행자들이 도달한 ‘알 수 없는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예상치 못한 목적지에 도달한 이들은 웃음을 지을까 눈물을 흘릴까.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수정과 선우다. 수정에게 호감을 가진 선우가 호텔 빨래방에서 수정에게 말을 걸고, 둘은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기에 가능한 막연한 호감과 느슨한 긴장감으로 조금씩 서로를 탐색한다. 하룻밤을 보내고도 다음날 인사조차 하지 않는 둘이지만, 그 ‘가벼움’ 속에서도 그들은 깊은 위로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깊은 슬픔에 싸여 있던 수정과 그런 수정을 욕망하던 선우 모두에게 따뜻하게 기억될 밤이 흐른다.


  두 번째 이야기는 예비 신혼부부 지원과 규형이 주인공이다. 규형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던 둘은 곧 펼쳐질 장밋빛 미래에 들떠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그런데 규형에게는 지원이 모르는 또 다른 미국행 이유가 있었다. 어긋남이 물꼬를 트자 이직, 출산 등 둘이 어느 정도 합의한 줄로만 알았던 굵직한 이슈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전혀 달랐다는 사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진다. 마음이 상한 둘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누가 더 희생했느냐며 공치사를 하기에 이른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사실은 가장 먼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둘은 과연 약속한 미래를 온전히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마지막은 암 수술을 위해 미국에 가는 엄마 은실과 그의 딸 유진의 이야기다. 오랫동안 삶의 무게에 시달려온 은실은 한껏 예민해져 봇물 터지듯 자신의 걱정거리를 쏟아내고, 유진은 익숙한 엄마의 푸념에 조금씩 지쳐간다. 그리고 수많은 모녀가 그러하듯 끝내 폭발하며 부딪힌다. 서로의 처지와 감정을 가장 잘 알지만 바로 그 이유로 상대를 오롯이 사랑하기만 할 수는 없는 모녀. 그러나 폭풍이 지나가면 결국 서로만이 자기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념하듯 깨닫는 모녀. 은실과 유진의 이야기는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모든 모녀관계에 잔잔한 위로를 전한다.



  뉴욕행 비행기의 불시착으로 누군가는 따뜻하지만 흐릿한 위로를, 누군가는 관계의 균열을, 누군가는 관계의 끈끈함을 재확인하는 계기를 가졌다.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목적지’에 도착한 셈이다. 여섯 명의 각기 보낸 밤이 증명하듯, 비밀스러운 목적지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로 우리를 흔들어놓는다. 이 흔들림을 어떻게 품으며 나아가는지에 우리 삶의 깊이가 달려 있다. 등장인물이 대체로 다소 전형적으로 젠더화되어 재현된다는 점은 아쉽지만, 생의 가능성을 살피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여섯 개의 밤〉의 시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출간한 문예출판사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니퍼 로페즈, 연타석 안타는 무리였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