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wr Apr 06. 2023

두 여자의 사랑+우정=‘소울메이트’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소울메이트〉 리뷰

7★/10★


  개인의 성장은 축복이다.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 생각, 내면이 깊어지고 그 깊이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이 내주는 숙제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성장한 개인은 외롭다. 성장의 내용이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번역‧소통 불가능한 자신만의 깊이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성장은 한때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이를 종종 멀어지게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삶의 모든 순간을 같은 조건으로 마주할 수는 없기에.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와 이를 리메이크한 〈소울메이트〉는 누구보다 가까웠으나 성장하면서 멀어진 두 소녀가 둘 사이의 거리를 다시금 좁히는 긴 여정을 담아낸 영화다. 몇몇 세부 설정이 다르긴 하지만 두 영화 모두 높은 완성도로 두 여성이 직조해온 관계를 찬찬히 톺는다.


  부모에게 별다른 애정을 받지 못하는 아이(안생/미소)가 있고, 안락한 가정에서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자란 아이(칠월/하은)가 있다. 전자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반항아적 기질이 있고, 후자는 일반적이고 평온한 삶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 차이가 둘이 친구가 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아직은 어린 나이이기에 서로의 다름이 불편하기보다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둘은 서로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좋다. 서로만이 누구도 주지 못하는 편안함, 따뜻함, 애정 어린 감정 등을 제공해준다.



  첫 번째 균열은 칠월/하은이 남자와 연애를 하며 시작된다. 모든 걸 함께 한 친구 사이에 미묘한 감정의 균열이 생긴다. 이에 안생/미소는 우정을 지키고 이전부터 꿈꿔왔던 삶을 살기 위해 그들이 자라온 마을을 떠난다. 이제부터 둘은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성장을 모색한다. 안생/미소가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보헤미안으로 살아간다면, 칠월/하은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삶을 향해 나아간다. 둘은 그 와중에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정작 몇 년 만에 만나 함께 떠난 여행에서 둘이 서 있는 자리가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확인하고야 만다.


  얄궂게도 이 만남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인생 그래프가 반전된다. 안생/미소와 칠월/하은은 마치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듯 이전과는 다르게 삶을 꾸린다. 결국 다툼으로 끝난 여행에서, 서로가 경멸해 마지않았던 친구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자기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즉 그토록 달라 보였던 친구의 삶이 곧 내 삶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 영화에서 소설과 그림은 각각 친구를 이해하는 도구가 되어준다. 모두 상상력과 관찰력이 필요한 예술의 형식이다. 두 친구는 이를 통해 멀어진 친구의 삶을 자기 삶으로 들여온다. 더불어 예상하지 못한, 그러나 선물처럼 다가온 아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두 친구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고, 남은 친구는 떠나간 친구의 삶을 대신 살아간다. 오해와 거부의 시간을 건너, 두 친구가 그 무엇도 자신들의 관계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쁨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소울메이트〉가 그려내는 두 여자의 농밀한 관계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는 여자들의 ‘우정’이 늘 ‘사랑’과는 엄격히 구분된 관계인 양 재현되어온 것과 관련이 있다. 안생/미소, 칠월/하은의 관계는 우정이기도 하지만 사랑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늘 두 여성의 친밀한 관계를 ‘우정’이라는 관계의 형태에 제한하려 한다. 하지만 두 영화가 보여주듯 진정한 우정은 때때로 사랑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준다. 더불어 안생/미소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칠월/하은의 말에 묘한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애초에 진정한 우정이란 사랑에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성들이 ‘우정’ 혹은 ‘사랑’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복합적인 관계를 탐험하는 이야기는 매혹적이다(〈윤희에게〉를 생각해보라!). 사회가 구획해놓은 관계의 틀을 마음껏 헤집으며 자신들만의 깊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카타르시스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소울메이트〉는 여기에 고독한 성장이라는 또 다른 주제를 더한다. 두 여성이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온 관계 역동과 성장 궤적은 가부장적/이성애중심적 사회에서 규범에 비껴간 친밀성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감동으로 다가갈 것이다. 사회가 권장하는 방식으로 살지 않아도, 우리는 누구보다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평범한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