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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May 18. 2023

존재가 ‘불법’인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내는 법

〈토리와 로키타〉 리뷰

8★/10★


동쪽 시장에서 아버지가 동전 2개로 작은 쥐를 사오셨네
그런데 고양이가 와서 작은 쥐를 먹어버렸네
아버지가 시장에서 산 쥐를

이번에는 개가 고양이를 먹었네
아버지가 시장에서 산 쥐를 먹은 그 고양이를


  〈Alla Fiera Dell‘Est〉*라는 이탈리아 노래 가사 일부다. 유럽, 북미 등으로 이주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부르던 노래라고 한다.** 노래는 계속 이어진다. 쥐는 고양이에게 먹히고, 고양이는 개가 삼켜버리고, 개는 지팡이로 두드려 맞고, 막대기는 불에 탄다. 더 강한 존재가 더 약한 존재를 먹거나 제압하는 일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민자들이 이 노래를 부른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노래 가사 속 약한 존재들의 운명이 여기저기서 치이기만 하는 자신들의 처지와 닮은 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적 거장 다르덴 형제의 신작이자 칸영화제에서 75주년 특별기념상을 수상한 〈토리와 로키타〉는 두 이민자 청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로키타가 벨기에 어딘가에서 체류증 허가를 얻기 위한 심사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로키타는 자신이 이미 벨기에에서 체류증을 받은 토리의 친누나라고 주장하며, 어린 동생 토리와 함께 있기 위해서 자신 역시 체류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심사관의 질문이 뒤따른다. 말투는 차분하지만 질문의 내용은 날카롭다. 로키타는 조금씩 수세에 몰리고 끝내 공황 장애가 와서 약을 먹고는 눈물로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로키타가 거짓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키타는 토리의 친누나가 아니다. 토리는 아프리카에서 횡행한 마녀/주술사 사냥***의 표적이 되어 학대와 린치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되어 체류증을 발급받았다. 반면 로키타는 체류증을 발급받아 가사노동자로 일하며 고향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이유로 유럽에 체류 중인 토리와 로키타는 같은 보육원에서 생활하며 어느덧 친 남매보다 더 끈끈한 사이가 된다. 로키타는 토리를 지극히 아끼고 돌봐주며 토리 역시 로키타가 체류증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한다. 요컨대 토리와 로키타는 유럽 사회의 가장 낮고 험한 곳에서 그 무엇도 끊어낼 수 없는 우정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다르덴 형제는 이번에도 누군가의 삶을 극화하여 소비하는 대신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기법으로 토리와 로키타의 우정과 삶을 차분히 담아낸다. 마약 배달 및 재배, 이주 브로커의 갈취, 성착취 등이 등장하지만 이 소재들은 이주자들의 취약함을 과 극화하는 데 활용되지 않는다. 토리와 로키타가 조금씩 벼랑 끝으로 밀려나는 과정과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우정과 사랑이 더 깊어지는 과정에 카메라의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합리한 상황에서 불가능한 관계를 일구어낸 토리와 로키타는 끝내 비극을 마주하고 만다. 체류의 ‘합법성’을 따지는 일이 한 인간 존재를 ‘불법’으로 내몰고, 가장 취약한 자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단단하게 만들어낸 관계는 폭력적으로 응징당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안보, 국경, 안전과 같은 가치들은 대폭 강화되었고 이 가치를 ‘훼손’하는 존재들은 곧바로 강한 비난‧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즉 이주자들은 ‘국민/민족 정체성’을 헤친다는 오래된 비난과 더불어 새로운 차별과 배제의 언어에도 대응해야만 했다. 이주자들은 더한층 공공의 안녕을 위협하는 존재의 표상이 되어버렸고 그만큼 연대, 포용, 환대의 가치 역시 약화되었다. 〈토리와 로키타〉가 다르덴 형제의 전작에 비해 비관적이라는 관람평이 이어지고 있다. 악화된 현실의 반영일 것이다. 그러나 이민자와 정주자의 관계가 이런 식으로만 맺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토리와 로키타가 주고받은 우정과 사랑이 전체 사회로 확대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억지로 꺾여버린 토리와 로키타의 우정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_GQKAbudcc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506500028&wlog_tag3=naver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마녀사냥에 관련해서는 실비아 페데리치의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갈무리, 2023)를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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