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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Jul 20. 2023

톰 크루즈, 이 구역 낭만의 최종 수호자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리뷰

6★/10★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만큼 세밀하면서도 정교한 미시 액션의 타격감을 가졌는가? 아니다. ‘007 시리즈’처럼 메인 캐릭터가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미션 임파서블’이 첩보 액션 시리즈로서 갖는 특장점은 뭘까? 바로, 그린 스크린 밖의 톰 크루즈다.


  ‘제발 그가 자연사했으면 좋겠다’는 팬들의 말을 그저 농담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실제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의 첫 촬영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오토바이 스카이다이빙 신이었다. 만약 톰 크루즈가 오토바이를 타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촬영하다 사망할 경우, 바로 촬영을 멈춰 다른 장면에 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단다. 그리고 이 촬영 장면은 영화 홍보에 대대적으로 활용되었다. 이것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내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특이점이기 때문이다.



  시리즈의 주인공 에단 헌트가 또다시 불가능한 임무를 맡았다. 물론, 여기서 ‘불가능’은 에단 헌트가 그 임무를 맡기 전까지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어떻게든 그는 자신이 맡은 바를 해낼 것이기에. 새로 만난 적은 실체가 없다. 그러나 어디에나 존재한다. 에단이 마주한 적은 ‘엔티티’라는 이름의 AI다. 에단의 싸움터는 첨단 기술을 활용한 초 단위의 정보 싸움이 일상인 첩보 현장이다. 그런데 엔티티는 첨단 기술과 정보의 집약체 혹은 그 자체다. 에단과 동료들이 사용해왔던 기술과 통신망은 수시로 망가진다. 그들이 획득한 정보 역시 엔티티가 조작한 거짓일지도 모른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스카이넷’은 인간을 통제하는 인공지능이라는 미래의 막연한 공포에 관한 장르적 상상력이었다. 그러나 이제 스카이넷이라는 상상력은 ‘현실’이 되었다. 온갖 AI가 쏟아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은 이 영화가 제시하는 인공지능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힘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핵심은 액션이다. 이를테면, ‘본 시리즈’는 9‧11 이후 현실에서 발생한 ‘영화적 스펙터클’로 인해 충격을 받아 세계관이 흔들린 사람들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이슨 본의 물음에 기꺼이 동참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본 시리즈’의 정체성과도 같은 미시 액션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그 의미가 있다. 기존 블록버스트의 액션 스펙터클과 비슷한 시각성을 지닌 테러 장면과 대비되는 미시 액션은 테러에 대한 동시대 관객의 무의식적 공포를 달래주었고, 관객이 테러의 트라우마를 잊고 영화를 ‘편안하게’ 감상하게 해주었다. 그렇다면 ‘미션 임파서블’ 톰 크루즈의 CG 없는 고난도 액션은? 톰 크루즈의 액션은 영화에 어떤 장면이 나와도 그저 그린 스크린에서 찍었거니 하며 무심한 듯 반응하는 관객에게 새로운 긴장을 안긴다. 그가 고난도 액션을 소화할 때마다 ‘저걸 어떻게 찍었을까?’라는 경외 섞인 물음이 자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술, AI가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만연한 시대에, 톰 크루즈의 뚝심이 의도치 않게 동시대인의 불안을 달래주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해 역시 아직은 ‘진짜’가 우위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완성도 높은 CG로 우리를 감탄하게 만든 영화가 여럿이다. 때문에 어떤 장면을 CG 없이 촬영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영화를 고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어쨌든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완성도 높은 장면을 선보여 관객에게 평가받으면 그뿐이다. 톰 크루즈가 배우로서 가진 태도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의 마케팅, 관람평이 온통 CG 없는 액션에만 집중된 현 상황이 의아한 건 이 때문이다.


  영화가 그 자체의 매력이 아닌 출연 배우의 열의나 헌신에 기대 평가받고자 한다는 건, 영화의 재미가 떨어진다는 걸 반증하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꽤 긴 러닝타임 동안 내내 적당한 긴장감을 선사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호들갑 떨 만한 신선함이나 완성도를 갖췄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지금껏 우리가 봐 왔던 할리우드 첩보물의 전개와 장면이 익숙하게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린 스크린에서 편하게(?) 연기하는 배우와 대비되는 톰 크루즈의 장인정신(그리고 그가 위축된 인간에게 전하는 위로)과 영화에 대한 평가는 별개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톰 크루즈가 이 구역 낭만의 최종 수호자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톰 크루즈가 출연한 영화와 배우 톰 크루즈에 대한 평가를 분리하는 것이 그의 장인정신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아닐까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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