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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Nov 11. 2024

삶과 죽음이 중첩된 곳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파동

영화 〈룸 넥스트 도어〉

8★/10★


  종군기자로 일한 마사가 과거를 회고한다. 그녀는 전쟁터에서 한 가톨릭 수사를 만나 취재했다. 그 수사는 위험천만한 전쟁터를 떠나기를 거부했고, 동료 한 명과 그곳에 남기를 택했다. 수사의 또 다른 친구에게서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은 마사는 추측한다. 아마 그와 함께 전쟁터에 남아 있기로 한 동료는 수사의 연인일 것이며, 두 사람은 섹스의 환희로 일상에 깃든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것이라고.     


  여기서 전쟁과 섹스는 각각 죽음과 삶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들은 늘 함께다. 비단 전쟁터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마사는 현재 말기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다. 암 선고는 또 다른 전쟁이다. 즉 마사는 죽음에 밀접해 있다. 그런 그녀에게 ‘섹스’, 즉 죽음의 공포를 상쇄해주는 삶의 순간은 무엇일까? 원하는 때에 삶을 끝낼 수 있는 약이다. 다크웹으로 존엄사 약을 구한 마사는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해줄 친구를 찾는다.     



  잉그리드는 유명한 작가다. 최근 그녀는 자신이 죽음에 느끼는 두려움을 주제로 책을 냈다. 우연히 옛 친구 마사의 소식을 들은 잉그리드는 병문안을 가고 묵혀둔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마사에게 부탁을 받는다. 비밀을 지킨 채 자기 삶의 마지막을 함께해달라는 제안이다. 공포와 혼란 속에서도, 잉그리드는 마지못해 그 제안을 수락한다. 잉그리드에게는 마사에 대한 우정과 작가로서의 호기심이 죽음의 공포를 상쇄시켜주는 ‘섹스’ 역할을 한다.     


〈룸 넥스트 도어〉에는 삶과 죽음이 병치되어 있다. 마사에게 딸을 주었으나 베트남전 후유증으로 사망한 남자, 마사 커리어의 원천이었던 수많은 전쟁터, 삶의 마지막 순간을 결정할 수단을 확보한 후 마사가 누리는 평온함, 개인 잉그리드의 두려움과 작가 잉그리드의 호기심, 한때는 섹스에 열정적으로 탐닉했으나 지금은 비관적 기후 위기론자가 된 두 사람의 옛 연인……. 마사와 잉그리드가 나누는 이야기와 공유하는 일상에는 늘 죽음과 삶이 달라붙어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마사 사후 잉그리드가 이를 미리 알고 있었으리라 추궁하는 기독교 신자 경찰과 마사가 자신에게도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경찰에게 폭로한 또 다른 친구가 그렇다. 이들은 마사, 잉그리드와 달리 지극히 단조롭고 따분하게 재현된다. 짜증이 날 정도다. 삶에 대한 애착만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 짝을 이루는 죽음을 품지 못할 때 우리 삶이 얼마나 밋밋하고 멍청해지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북미에서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차기 시민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계급과 인종, 장애, ‘존엄함’의 정의 등 명쾌히 답변되지 않은 지점이 많기는 하지만(이 영화에서도 존엄사/안락사는 두 상류층 백인 여성의 이야기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죽을 권리’를 갈망한다. 마사는 분노에 차 왜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은 죽을 권리가 필요하다는 외침이라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죽을 권리를 획득한 사람이 누리는 삶/죽음의 환희다. 마사는 불법으로 약물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마사 사후 ‘상식’을 대변하는 경찰은 잉그리드를 심문하려 든다. 하지만 영화 속 카메라는 두 사람이 마지막을 스스로 정하기로 한 후 발생하는 미묘한 떨림을 포착하는 데 훨씬 더 큰 중점을 둔다. 마사의 마지막 선택을 암시하는 신호, 그 신호를 오인한 잉그리드의 감정,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삶을 마감한 마사가 확보한 ‘존엄’의 내용 등 삶과 죽음이 중첩된 곳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파동을 담아내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정서가 ‘잔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밀도 높은 드라마에 긴장과 스릴이 더해졌다는 인상이다. 우리의 일상적 사고 습관이 삶에 달라붙은 죽음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죽음의 가능성을 환기하는 것만으로도 종종 서늘한 긴장감이 발생하는 것은. 〈룸 넥스트 도어〉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죽을 권리’에 대한 사유를 촉발하는 영화다.       


   

*다이앤 렘, 《나의 때가 오면》, 성원 옮김, 문예출판사, 2024.

**미국에서는 일부 주에서만 약물을 활용한 존엄사가 합법이고, 이 경우에도 승인받기 위한 몇몇 절차가 필요하다. 앞의 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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