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도〉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마조히스트인 군인 록조는 동시대 미국의 백인 민족주의자의 곤란한 무의식을 대변한다. 혁명가를 때려잡고 이민자를 구금하고 추방하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록조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비밀 클럽 입회가 최종 승낙되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 정도의 강성이다. 그러나 모임의 또 다른 회원이 운영하는 공장은 이주 노동자가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다. 록조의 욕망도 그렇다. 록조는 혁명가 흑인 여성 퍼피디아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있으며, 힘껏 발기한 상태로 그녀에게 체포당한 적도 있다. 그녀와의 성적 관계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욕망에 굴복해 자신을 내려놓고 마조히즘의 쾌락, 즉 흑인 여성이 지배하는 섹스에 자신을 의탁했다. 겉으로는 척결과 배제를 외치지만 실제 생활과 욕망은 유색인과 이민자들에게 완벽히 종속되어 있다는 아이러니는 이주민을 혐오하는 전 세계 국수주의자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영화는 퍼피디아와의 일이 비밀 클럽 입회에 문제가 된 걸 안 록조가 그 흔적을 지우려 나서는 과정과, 혁명의 이상을 잃고 비루한 중독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퍼피디아의 옛 파트너 밥과 그의 딸(실제로는 록조의 딸) 윌라가 록조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담는다(영화에는 정치적 통찰과 매혹적인 미장센을 결합한 인상적인 장면이 굉장히 많다. 자칭 혁명가 밥의 무능 혹은 찌질함과 이민자들의 오래된 네트워크로 밥과 윌라 부녀를 능숙하게 돕는 가라테 사범의 대비, 일렁이는 파도를 닮은 도로 위 추격전 등등).
퍼피디아와 밥으로 대변되는 이전 세대의 혁명가는 실패했다. 록조는 과거를 ‘세탁’한 후 권위를 이어가려 한다. 싸움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영화 제목을 직역하면 ‘끊임없는 전투’다. 다만 새로운 싸움에는 새로운 혁명가가 필요하다. PTA는 윌라를 새 시대의 혁명가로 제시한다. 흥미로운 건 윌라가 순결하고 고귀한 출생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윌라는 혁명가의 자질을 타고났으나 동료를 팔아넘긴 배신자 흑인 어머니 퍼피디아, 혁명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인 백인 아버지 밥, 극우 인종주의 이너서클에 들어가려다 ‘불온한’ 과거가 드러나 조용히 처리되는 실제 아버지 록조에게서 비롯했다. ‘원죄’ 없는 혁명가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일까.
한편, 극 초반에 급진적 혁명 그룹 ‘프렌치 75’의 리더 격으로 등장하며 엄청난 활력을 선보이는 퍼피디아가 왜 배신자로 변모했는지는 계속 곱씹어보게 된다. 영화는 이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밥과 결혼하고 윌라를 출산한 후 더는 혁명적일 수 없는 것에 대한 분노가 그 원인일까? 나는 퍼피디아가 극 후반 다시 등장해 (선이든 악이든) 근사한 역할을 수행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끝까지 배신자로만 재현된다. 그러나 퍼피디아는 배신의 대가로 주어지는 안락한 삶에서 또 한 번 도망쳐 멕시코로 향했다. 윌라가 실패한 혁명을 어떻게 계승해 나갈지만큼이나, 동료를 배신한 이후 퍼피디아가 살아갈 삶 역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