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 리뷰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몇 년을 담은 이 영화에서 음악만큼이나 인상적인 건 이미지다. 그의 뉴욕 집 뒷마당에는 피아노가 있다. 피아노가 놓인 곳은 야외고, 눈비를 막아줄 별도의 가림막은 없다. 눈, 비, 바람, 흙, 정원의 곤충 등등. 이 피아노는 자신을 보호해줄 것을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뒷마당에서 조금씩 낡아간다. 사카모토는 개의치 않는다.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망가졌다’고 말할 그 피아노 앞에서, 그는 연주하고 또 다른 소리를 채집한다. 소멸해가는 중인데도 아름다운 음악의 원천일 수 있는 이 피아노는 말기 암으로 머지않아 세상을 떠날 류이치 사카모토를 대변하는 하나의 이미지다.
음악가이자 환경과 평화에도 관심이 많았던 류이치 사카모토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인간이 만든 건 자연에 파괴된다’는 단순하면서도 절대적인 명제를 내면에 각인했다. 인간이 만든 게 무엇인지에 따라, 파괴될 때의 여파는 다르다. 예기치 못하게 파괴된 원자력 발전소는 재앙을 낳았다. 그러나 피아노라면? 그 피아노에서 추출해낸 음악이라면? 피아노가 바람과 눈비, 벌레에 의해 삭는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리는 없다. 피아노에서 나온 음악 역시, 류이치 사카모토가 출연하고 음악도 만든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OST가 그러하듯, 무해함을 넘어 오랫동안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잔잔한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모든 게 자연의 의해 스러질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만들고 남길지를 고민해야 한다. 적어도 사라질 때의 해악이라는 관점에서는, 음악이 원자력보다 훨씬 우월하다.
또 하나의 테마가 있다. 죽음과 평화의 문제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카모토는 죽음을 통보받은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혼란과 절망에 빠진다. 언젠가 끝이 날 거라는 건 알았지만, 급작스레 선고된 죽음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왔다. 그리고 또 다른 죽음이 있다. 암 선고를 받은 뒤 얼마 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시작된다. 건조하게 날아가 섬광과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미사일과 얼굴과 이름조차 알 수 없이 순식간에 파편이 된 사람들. 류이치 사카모토가 겪은 혼란을 극단적으로 압축해 극한의 강도로 겪어낼 수밖에 없던 사람들. 이 혼란과 절망. 나의 죽음과 세계의 죽음의 겹침. 사카모토는 고민한다. 얼마 남지 않은 생애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피아노에서 나온 음악이라면, 언젠가 사라질지라도 무해한 음악이라면 내면의 혼란과 시대의 폭력 한가운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혼란과 아픔이 승화된 음악은 예술이 인간의 고통에 관한 것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영화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남긴 일기와 기록, 영상, 미공개 음악을 위의 두 고민의 결에서 펼쳐낸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형식에서 영화의 세 번째 테마가 솟는다. 우리가 남긴 기록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괜히 서슬 퍼렇게 다가갈지도 모를 이 명제는,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사람과 만났을 때는 꽤 은은한 감동을 자아낸다. 그가 절멸과 폭력의 시대에 음악을 매개로 진정성 있게 제법 괜찮은 삶을 꿈꾸고 말해왔다는 것을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기 때문일 터. 그러나 류이치 사카모토가 누군지 모른다고 해도, 그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가 남긴 단출하고 정갈한 기록과 울림 있는 음악이 그에 관한 지식과 정보가 알려주는 것들을 넘어서는 힘을 가져서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