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덕수 삼춘 이야기 上

by 정상연

제주도에서 공중보건의로 환자분들을 돌봐드리던 시절 이야기이다.

공중보건의 2년차와 3년차 시절에는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조천보건지소에서 일했다.

조천은 잔잔한 신촌바다를 품고있고 뒤로는 봉긋한 오름과 푸른 곶자왈이 자리하고있는

정말 제주스러운 동네였다.


제주도에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 아닌 시골 동네에는

대부분 어르신들만 거주하신다.

그중에서도 스스로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께 보건소에서는 방문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아무래도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에 주로 공중보건의가 업무를 맡았다.


조천보건지소의 방문진료는 매주 수요일 오후에 이루어졌다.

수요일에 오전 진료가 끝나면 점심을 후딱 해결하고서 방문 진료를 신청한 환자분들 댁으로 찾아갔다.


초반에는 간호사 선생님과 팀을 이루어 돌아다녔지만,

사실 혼자 해도 충분한 업무였기 때문에 어느 시기부터는 혼자 일하겠다고 했다.

보건소 입장에서도 인력 낭비를 막을 수 있어서 흔쾌히 승낙해줬는데,

다만 나의 근태 관리를 위해서 방문 진료를 할 때마다 현장 사진을 찍어서 제출하라고 했다.


사진 형식이 정해지지 않아서 나는 할망, 하르방들과 핸드폰 셀카를 찍어서 제출했다.

2년 간 매주 집에 방문하여 손자처럼 말동무를 해드리기도했고,

특이하게 늘 셀카도 함께 찍는 한의사라서 그랬는지

방문 진료를 갔던 어르신분들과 많이 친해졌다.


그중에서도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신데,

바로 '덕수삼춘(가명)'이다.


제주도에선 친하게 지내는 어르신들 모두에게 '삼춘'이라는 호칭을 붙인다.

덕수삼춘께 처음에는 성함 뒤에 님을 붙여서 불러드렸지만,

사이가 가까워지자 그냥 덕수삼춘이라고 부르며 치료해드렸다.


덕수삼춘의 집으로 가는 길은 정말 인상깊었다.

이끼가 낀 볼품없는 현무암들로 세워졌지만 바람에도 끄떡없는 돌담을 따라 걸어가면,

동네 강아지들이 반갑다는건지 뭔지 우렁차게 짖어댔고

동네 주민들이 길 옆에 아무렇게나 세워놓은 소형 트럭들을 보며 왠지 모를 정감을 느꼈다.


길을 더 걸어가보면 금잔디가 윤기나게 깔린 덕수삼춘네 마당이 나오고

그에 비해 볼품없어 보이는 슬레이트 지붕의 70년대 풍 제주도 가옥이

하늘부터 시작하여 내 시야의 모든 장면들과 최고의 조화를 이루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주 토박이분들의 보금자리에 정말 깊숙이 들어와있다는 포근한 마음으로

덕수 삼춘네 현관문을 열면

요양병원에서 맡을 수 있는 어르신의 쩐내과 소변 찌린내가 내 코를 공격했다.


물론 냄새를 맡자마자 인상이 찡그려지는 것은 2년이 지나도 어쩔 수 없었으나,

다행히도 집에 들어서고 얼마 있지 않으면 후각은 냄새에 곧 적응해서 더 이상 불쾌함을 못 느꼈다.

어쩌면 나를 반겨주시는 덕수삼춘의 환한 얼굴 때문에라도 냄새를 바로 잊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주인집에 단칸방을 세들어 사는 덕수삼춘은 10년 전 고관절을 심하게 다치신 이후로

거동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셨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계시면서 유리로 된 현관문 밖을 바라보며

그저 구름모양이나 비가 내리는 방향 등을 관찰하셨다.


수요일에는 '청년 한의사가 언제쯤 오려나' 하며 마당 밖을 계속 바라보셨을 것이다.

마침내 본인의 초라한 집에 한의사가 다가올 때에는

풍경에 감동을 받은 듯한 청년의 표정을 보고선 당최 이해가 가지 않으셨겠지.


어쩌면 좁고 냄새나는 집에서 맞이해야할 손님 생각에 겸연쩍어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덕수삼춘은 늘 정갈한 몸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셨다.

주 1회 방문 목욕 서비스를 신청하시기도 하셨고,

혼자 낑낑대며 화장실에 가는 데에만 30분을 소모하면서까지 몸 구석구석을 닦으셨던 덕이다.


덕수삼춘의 좁은 방안에는 가족사진들로 가득했다.

덕수삼춘의 결혼사진부터 시작하여

따님과 아드님의 사진,

손주와 손녀의 사진,

증손주와 증손녀의 사진까지

덕수삼춘의 아담한 벽에 걸어놔야 하는 인물들이 참 많기도 했다.


모든 가족들이 제주를 떠나 육지에 정착한 지 오래였는데,

종종 다 같이 덕수삼춘을 보러 제주에 오신다고 했다.

가장 최근에는 덕수삼춘을 애월에 있는 감성 사진관까지 모시고가서 단체 가족사진을 찍으셨는데,

덕수삼춘은 그 사진을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걸어놓으셨다.

가족과 함께 애월에 놀러갔던 그날. 덕수삼촌은 세상 행복하셨던 것이 분명했다.


<다음 화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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