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덕수 삼춘 이야기 下

by 정상연

(이어서)


매주 덕수삼춘네 집에 가면 나는 요쿠르트나 두유를 얻어먹었다.

삼춘네 따님께서 시켜놓으신 듯한 상자 안에서 하나씩 꺼내서 먹었다.

'손님들도 같이 나눠먹을거라고 예상하셨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애써 죄송스런 마음을 억누르고

요쿠르트와 두유를 맛있게 쪽쪽 빨아먹었다.


웰컴 드링크를 먹고나면 지난 일주일간 덕수삼춘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쭤보았다.

그러면 삼춘의 시무룩한 얼굴과 함께 매번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별일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늘 혼자 누워만 계시는데 재밌는 일이 생길 것이 만무했다.


하지만 손녀와 전화통화를 하셨거나

따님이 잠깐 시간 내어 집을 찾았거나

요양보호사분이 재밌는 소식을 알려줬거나

등의 이벤트가 하나라도 있던 주에는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나에게 그 일들을 전부 말씀해주셨다.


덕수삼춘께서 신이 나서 말이 빨라지실 때에는 제주도 사투리가 심해졌다.

그러면 중간중간 못 알아듣는 내용도 있었지만

나는 말을 끊지 않고 귀 기울여 삼춘의 이야기에 최대한 집중했다.

이야기 자체보다도 말광량이 소녀처럼 변하는 덕수삼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게 흥미로웠던 것 같다.


치료는 늘 비슷한 부분을 다루었다.

밤새 잠이 안 오는 지독한 불면증과 음식 생각이 전혀 없는 소화 불량.

24시간을 좁은 방 안의 침대에서 누워지내는 덕수삼춘에게는

이 두 가지 증상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덕수삼춘을 꼭 고쳐드리고 싶어서 늘 열심히 침을 놔드렸다.

앙상하게 마른 덕수 삼촌의 팔과 다리를 들춰서 혈자리를 찾아내어

코끝에 땀이 맺혀 떨어질 정도로 집중하며 침을 놔드렸다.


조금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어느날은 도로 심해지는

지지부진한 치료가 한동안 이어졌다.


어느날에는 덕수삼춘께서 너무 밥을 못 드시길래

큰맘 먹고 제약회사에 주문을 넣어 한약재들을 내 집으로 시켰다.

바다 건너 한약재가 도착하자 곧바로 덕수삼춘만을 위한 한약을 보골보골 끓였다.

제주도의 조그만 아파트 복도 전체에 한약 냄새가 가득해질 정도로 오래 탕전했다.


해질녘 약이 준비되자 나는 바로 덕수삼춘네로 향했다.

원래 방문하던 날이 아니어서 덕수삼춘은 나를 보고 깜짝 놀라셨지만,

금세 환한 얼굴로 맞아주셨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한약을 갖고온 것을 보시고

덕수삼춘은 이내 눈시울을 붉히셨다.

나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한약을 그릇에 따라서 드렸다.


그 뒤로도 덕수삼춘이 많이 편찮으신 날에는

나는 탕전기에 불을 지폈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즈음에 한약을 가지고 덕수삼촌네로 향했다.

덕수삼춘의 혈색이 점점 좋아지면서 보건소에는 종종 덕수삼춘의 따님이 보내주신 치킨 선물이 왔다.

한약 이야기가 따님께 전달되었나 싶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내가 제주를 떠나야하는 시간이 왔다.

제주분들이 육지것들에게 정을 안 준다고 흉보는 사람들이 많던데, 그럴 수밖에 없겠다.

평생 이렇게 배반을 당하는 느낌을 받으면 쉽게 마음을 주기가 어려울테니까.


덕수삼춘은 항상 그랬듯이 또 홀로 남겨졌다.

육지에서 내려온 한의사 총각에게 마음을 열어봤지만,

결국 그도 육지것들과 다르지 않게 떠나가버린 꼴이 됐다.


나는 육지에 와서도 한동안 덕수삼춘과 연락을 이어갔다.

별로 할 말은 없었지만, 목소리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덕수삼춘도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덕수삼춘과 연락이 끊긴 지 이제 5년이 다 돼 간다.

아직 핸드폰엔 삼춘의 번호가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선뜻 연락을 드릴 용기가 들지 않는다.


내가 덕수삼춘을 차갑게 떠나버렸듯이

삼춘도 미련없이 저 세상으로 떠나신 것은 아닌지...

정말 떠나신 게 맞다면 내 마음이 어떻게 반응할지 정말 모르겠다.


오늘 서울에는 제주바다에서처럼 억센 바람이 많이 분다.

옷 속을 파고드는 바람을 맞으며 덕수삼춘의 낡은 집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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