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보다 멍청한 인간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와서

by 정상연

최근에 뉴질랜드를 다녀왔다.

가볼 만한 여행지라는 사실은 알고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해본 뉴질랜드는 정말 환상적인 나라였다.


IMF 시절 한국인이 금모으기 운동을 해서 나라를 지켰듯이,

오늘날 뉴질랜드 사람들은 자연에 티끌만 한 훼방도 놓지 않겠다는 단결된 마음으로 지구를 지키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떼 묻지 않은 자연 그 자체를 온전히 느끼고 올 수 있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가축을 키울 때에도 최대한 자연스러운 방법을 선택했다.

드넓은 초원 위에 소, 양, 말, 사슴, 알파카 등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방식 말이다.

덕분에 동물들은 원래 그들의 본성을 유지한 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2주 동안 렌터카를 이용해서 2,000km 이상을 운전했는데,

왕복 2차선 도로 옆에는 언제나 방목된 가축들이 보였다.

동물의 귀여운 얼굴이나 떼로 몰려다니는 모습들을 보는 것은 신기하고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여행 중간 즈음이 지났을 때 도로 옆 동물들을 보며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늘 고개를 숙이고 풀을 뜯기만 한다는 사실이다.

아침에 만난 동물도 저녁에 만난 동물도 잠시 이동을 마친 동물도

그저 풀만 뜯어먹고 있었다.


그들에게 하루 종일 풀만 뜯으라고 시킨 이는 누구일까?

목장 주인이 잔소리를 했을까?

아니면 엄마 양이 새끼 양한테 교육을 시킨걸까?


그들은 자기 몸속 유전자에 새겨진 행동 양식에 따라

아주 '자연'스럽게 풀을 뜯었을 것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먹고 싸는 것이 대부분인 하루 일과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과학책에 따르면 인간과 가축의 유전적 동일성은 80% 수준이라고 한다.

모든 포유류는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나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유전자에도 먹고 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자연의 이치가 새겨져있을 터다.


그런데 바보같은 인간은 그 사실을 망각해버린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일과만 충실히 이행해도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고, 자식도 낳을 수 있고, 때가 되면 땅에 묻힐 수 있을텐데


엄마 친구 아들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가려고 발버둥치고,

은행과는 대출 계약을 맺고,

상사에게 인격 모독을 받고서는 집에서 아내한테 화풀이하는

쓸데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행복하게 풀을 뜯던 소들은

스트레스와 피로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 아스팔트 위를 돌아다니는 인간을 구경하며

엄청 신기해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