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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 길냥이
by
cypress
Jan 19. 2021
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6월 초.
길냥이들에게도 밥을 주기 시작
한
후로
매일 저녁 비슷한 시간에 동네를 돌며
사료와 습식을 섞어 조공을 바친다.
어느 날은 손바닥만큼 작은 아이를 만나기도 했고
(빛보다 빨라서 구조 실패)
연한 회색빛의
멋진 옷을 입은 아이를 만나기도 했다.
(자주 보자 편해져서 눕방)
4개월 정도 된 아가냥
도
보고.
(츄르 음미하시는 중)
'이게 끝이야? 야 더 없냐?'
표정 최소 보따리 내놓으라는
적반하장
스타일.
멋진 회색 털 코트를 입은 아이는
서로 조금 익숙해지자
항상 빤히 나를 바라봤고
어느 날부터는 내 인사에
울음소리로 답하기 시작했다.
밥을 다 먹은 후에도
가지 않고 옆에 머무는 날이 많아졌고.
(뒷모습, 회식 후 길바닥과 토킹 어바웃 하시는
우리네 아버지 서타일)
밥 주는 애들 사료 몰래 훔쳐 먹는
싸움꾼 아재 스타일 고영희도 만나고
(머리가 너무 커서 대갈장군이라 불리며
동네 길냥이들 다 괴롭히고 물고 다녀서
캣맘들에게 미운털 박힘;;
그리고 밥자리 순회하며 포식하는 최대 수혜자)
눈썹이라는 별명을 가진 어미냥과
2개월 넘어가는 아기냥 둘,
세 가족
도
만났다.
엄마랑 용감무쌍한 첫째.
밥 들고 가면 깡충깡충 뛰어 마중 나옴.
엄마랑 쫄보 둘째 딸.
얼굴 보기 힘듦.
옹기종기 모여있는 세 가족.
그리고... 문제의 스토커.
스토커를 처음 만난 건 재작년 여름이었다.
주차장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애를 보고
집으로 달려가 물과 습식을 가져다 주니
허겁지겁 챱챱챱.
그
리고 1년 후 작년 6월 즈음
단지 내 바위에서 다시 목격.
작년보다 야위어 있었다.
밥을 준 후로
아이는 도처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지나가시게)
내가 지나는 길목을
먼저 뛰어가 자리 잡고 앉거나
내가 가는 단지 놀이터에 따라와
멀찌감치 앉아 있거나
(조금 가까이 온 거 같은 건 기분 탓)
분명 저쪽 끝에 있었는데
뒤 돌아볼 때마다
조금씩 가까워진 거 같은 건 진짜 기분 탓.
밥 다 먹고도 안 가고
옆에서 안 떠남.
물범인 줄
.
'물범 그거 뭐야 먹는 거야?'
멀리서도 나만 보면 드러눕기 시작.
눕방.
눕방.
눕방.
눕눕방.
처음 만났을 땐 분명 말랐었는데
지금은 피둥피둥...
작년 9월에 찍은 사진인데
지금은 거의 하마급으로 피둥피둥....
단지 걷다가 기분이 이상해서 돌아보면
화단에서 저렇게 훔쳐보고 있고
갑자기 내 앞으로 달려와
나를 즈려 밟고 가시라 누워 버리고
밤에 산책 나오면
어느 틈에 내 뒤에 와서
조용히 앉아 있고
어느 날
은
집에 들어가는데
우리 동 화단 풀숲에서 뭐가 쓱 나오길래
기겁을 하고 봤더니
풀숲에 숨어 있다가
내가 오니
머리만 쏙 내민 것;;;
날 미행한 건가, 우리 집 어찌 알았지...;;
급하게 올라가 가져온 습식 조공하니
흡족하게 드시고 총총총 사라짐.
가을이 되자 수염에 낙엽 달고 옮.
영롱하다...
주차장 안에서도 발견;;
이 예쁜 아이를 둘째로 들이려고
순화 과정을 거치려고 했지만
밥 주려고 손이 근처에만 가도
앞발 신공 휘둘러서
피를 본 게 몇 번...
중성화 수술 때 잡혀갔던 트라우마 때문인지
사람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
마이웨이 서타일.
10월 말에 사라져서 한 동안 안 보이더니
지난달 다시 나타나 밥도 먹이고
따뜻한 곳에 포근한 겨울 집도 만들어줬으니
그걸로 미련은 버리기로.
동네 미용실 사장님이 챙겨주시는 밥과
내가 관리하는 밥자리 사료까지 듬뿍 먹고
그동안 벌크업...
완전 쫄보였는데
몸집이 커지니까 담력도 커졌는지
치즈 어미 겨울 집도 냥아치처럼 뺏어 버리고;;
그래 니가 집 두 개 다 가져라~
예쁘고 미묘지만 조금 성격 못 된 기집애 ㅋㅋ
우리 흰둥이 오래오래 포동포동 건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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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쓰고 수백 권의 매거진을 만든 현직 집사. contents director. @d_pu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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