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핑계의 기억

자동차로 캠핑하며 돌아다닌 유럽축구 여행기

by 라이터래

2012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리던 날


2011년 5월 29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느 일요일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날이었다. 이날 모스크바에서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렸기 때문이다. 전세계(다분히 유럽 중심의 건방진 발상이긴 하지만 아니라고 하기도 뭐하다)를 통틀어 최고의 축구클럽이 누구인지 가리기 위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 바르셀로나가 붙었다.

원래 일반적인 경기는 집에서 보곤 했다. 그래도 이 경기만큼은 집에서 혼자 궁상 떨기 싫었다. 월드컵 때처럼은 술집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자들도 좀 있고 말이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축구와 이성을 연결하려는 나의 태도에는 분명한 트라우마가 있다.

2001년 말 군 입대를 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막 이등병 딱지를 땐 일병이었다. 우리 부대는 인천 월드컵 경기장을 지키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었다. 월드컵 시작 몇 달 전부터 훈련을 했고, 월드컵 기간에는 경기장 뒷산에 매복했다. 당시 연대장은 우리의 주적으로 훌리건을 지목했다. 모두가 비장했다. 훌리건의 예상 은거지 및 진입로, 도주로까지 예상해 우리 연대 전부가 온 산을 포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포르투칼 전이 있던 날은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 소리로 경기를 들었다. 90분 경기가 끝나자 '와'와 '아', '하'의 차이를 알 수 있게 됐다. 이 와중에도 휴가를 다녀오는 전우들이 있었다. 그들은 신사유람단처럼 받은 바깥 세상의 소식을 떠들어댔다. 특히 시청광장의 응원은 단군이래 최고 규모의 남녀상열지사였다는 비보를 전해왔다. 그 후로 종목을 망라하고 잇슈가 되는 스포츠 경기가 열리면 '혹시나'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 날도 혹시나 했다.

급히 동네 죽마고우들로 남성팀 패키지를 준비했다. 언제부터 친구로 지냈는지 모르는,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W.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동창이면서 문화적 취향이 가장 비슷한 J, 나까지 셋이 모였다. 홈쇼핑식으로 이야기하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딱 오늘만 가능한 구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은 그다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축구를 좋아하는 정도에 따라 남자를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가장 심각한 부류는 소위 ‘축구환자’들이다. 유럽의 축구경기들은 시차 때문에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밤늦게나 새벽에 생중계 된다. 새벽에 하는 경기를 챙겨보고도 아침 일찍 공을 차러 나간다면 축구환자라 할 수 있다.(이들은 축구 경기를 하는 것을 보통 ‘공찬다’라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무릎 십자인대파열, 아킬레스건 손상처럼 스포츠 뉴스에나 나올 법한 부상을 경험한다.


“그 무릎에 붕대 뭐야?”

“아 이거? 십자인대파열이라네. 박지성 부상과 같은 거라고, 하하하(호탕한 웃음 발사)”


연애인이 하고 다니는 가방을 샀다고 자랑하는 여자의 심리와 비슷하다.

축구환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상인’이다. 이들도 가끔은 새벽에 하는 축구경기를 본다. 하지만 경기가 지루하면 바로 TV를 끄고 잘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기적으로 축구를 하지는 않지만, 일년에 한 두번 회사 체육대회에서 하는 축구 경기 정도는 기꺼이 참여해주신다.(공을 차는 것과 엄격히 구분해주길 부탁한다) 단, 이들은 경미한 부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찰과상이라도 입으면 심판의 제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 버린다. 그리고 여성 직원들로 구성된 임시 의무진에게 강력하게 후시딘을 발라달라고 요구한다. 부상 때문에 다음 날 출근해서 한쪽 다리를 절지도 모른다.

마지막 부류는 축구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월드컵 때만 축구를 보거나 아예 축구를 보지 않는다. 군대에서 말년 병장의 노리개가 되어 강제로 축구 해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회사 체육대회 때는 관중석으로 날라오는 공에 맞아 부상당할 위험이 있다. 예전에 옆집 살던 아저씨는 게장을 싫어했다. 까먹기 귀찮고 손도 더러워져서 아예 안 먹는다고 했다. 그에게 맛은 둘째 문제였다. 그는 공 하나를 가지고 22명이 90분 동안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짓거리를 제일 한심해했다. 사람이 한결같다고나 할까. 중간 단계의 사람들을 정상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축구환자들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이 환자들은 특이하게 본인들을 '환자'라고 부르는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스포츠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비정상이라고 할 수는 일이다. 그저 나로서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취향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이상한 축구 분류법에 따르면 J는 정상인에 속한다. W는 좀 애매하다. 학창 시절 농구도 잘했고 나에게 당구를 가르쳐 준 스승이기도 하지만, 스포츠 관한 지식이 좀 부족하다. W가 가장 유식해 보일 때는 온라인 게임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다. 나는 보험금을 타려고 병원에 입원한 가짜 환자 정도다. 광고대행사들이 참여하는 축구리그에 나가긴 하지만 경기 횟수는 고작해야 한 해에 10번 미만이다. 가끔 골을 넣기도 하는데 전반이 끝날 때쯤이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사람처럼 숨을 쉬어댄다.(심지어 이 리그는 전후반 25분 씩이다) 축구에 대한 지식도 살짝 방향이 어긋나 있다. 축구 좀 안다는 사람들이 4-4-2, 4-3-3에 관심을 둘 때 C. 호나우두의 새 여자친구의 신체사이즈 36-24-36에 더 관심이 간다. 진짜 축구환자들이 나를 환자 축에 끼워주지 않을 게 분명하다.

어쩌면 그날 만남은 축구를 보기 위해 만났다기보다 술 한잔하는데 마침 가게에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보여줬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처음 가게 문을 열 때부터 이성과의 우연한 만남은 포기해야 했다. 술집은 극단적인 남초 지역이었다. 친구들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보러 새벽에 술집에 오는 여자들은 국내에 존재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온전히 축구에 몰두할 수 있는, 원치 않던 분위기가 형성됐다.

박지성의 선발 출전은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퍼거슨 영감이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를 일이었다.(난 박지성을 선발명단에 넣어줄 때만 그를 ‘경,Sir.’이라고 부른다.) 다행히 퍼거슨경은 박지성을 선발명단에 포함시켜 주셨다.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3년 전 첼시와의 결승전에는 선발 출전하지 못했다. 우승 후 동료 선수들과 어색하게 어울리는 그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 없었다. 2년 전에는 바르셀로나를 상대해 동양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뛰었지만, 168cm짜리 공격수에게 헤딩골을 얻어맞고 무참히 패했다. 드디어 복수의 기회가 찾아왔다. 박지성이 메시를 봉쇄하고 결승골까지 넣는다면? 상상만 해도 눈시울 붉어졌다.

심판의 호각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맨유는 초반부터 바르셀로나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분명 경기 초반 맨유가 보여준 압박은 대단했다.

박지성이 선봉에 섰다. 시작부터 세계 최고의 풀백이라고 평가받는 다니엘 알베스를 집요하게 수비해 실수를 유발했다. 메시는 경기장 중앙에서 드리블로 공을 치고 나가려다가 박지성의 태클에 공을 뺏겼다. ‘네가 메시냐?’라고 묻는 듯한 태클이었다. 그대로만 해준다면 개고기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박지성과 그의 동료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모두가 보았듯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반칙이었다. 메시는 보이지 않는 제3의 다리가 있었다. 사비는 긴장하면 자동으로 우황청심환이 분비는 심장을 지녔다. 이니에스타는 사비와 텔레파시로 대화가 가능했다. 비야는 판데르 사르를 얼음으로 만드는 리모컨을 사용했다. 푸욜은 풍성한 곱슬머리로 숱 없는 루니를 현혹했다. 박지성의 분투도 영감의 헤어드라이어도 소용없는 경기였다. 그나마 루니가 넣은 골도 오프사이드로 판정할 수도 있는 애매한 상황에서 나왔다.

3대 1일 된 후부터는 승패를 떠나 ‘맨유가 얼마나 덜 치욕스럽게 지느냐’에 주목했다. 내가 나가 골대에 기대 헐떡이고 있었더라도 경기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오히려 비야의 세 번 째 골은 내가 골대 옆에 서 있다가 머리로 막아내지 않았을까.

3 대 1이 되자 바르셀로나가 맨유에게 메시를 빌려줘도 뒤집을 수 없을 분위기가 흘렀다. 응원하는 팀이 지고 있는 경기를 보는 일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시험지를 받았더니 모르는 문제만 잔뜩인데 종이 칠 때까지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기분이다. 이렇게 끝판왕을 가리는 경기에서 지고 나면 한동안 축구는커녕 굴러다니는 모든 구형의 물체가 보기 싫어진다. 보통은 그렇다. 충동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충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갑작스러움을 내포하고 있지만, 사건의 인과관계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할 때 사용하는 게 옳다. ‘너의 빨간 입술을 보니 갑자기 키스가 하고 싶어’라든지, ‘광고주가 너무 쪼아대서 로또가 사고 싶어졌어’는 이해가 간다. 내 경우에는 ‘승리의 순간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싶다’는 바람이 적절한 원인이겠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 반대조차도 부러웠다. 맨유의 팬들이 풀죽어 경기장을 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갑자기 유럽에 가서 축구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형언하기 힘든 신비한 분위기에 휩싸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집에서 주는 쟈스민 차를 너무 많이 마셔서 카페인에 취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카페인에 취해 내 몸이 오징어처럼 흐물 거렸다) 정말 중요한 경기이긴 했어도 저렇게 안타까울까. 맨유의 팬들은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 비밀을 알아버린 사람들처럼 머리를 감싸고 어쩔 줄 몰라했다. 그 순간 깨닫았다. 그들은 축구를 보는 게 아니라 느끼고 있었다. TV를 통해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렇게 난 축구를 느끼기 위해 유럽에 가야했다. 핑계의 기억은 대략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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