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pre 브런치 에세이'
나는 2016년, 면접을 망치고 아버지에게 크게 혼난 일이 계기가 되어 이곳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2년동안 글을 쓰면서 나는 정신적으로 큰 만족을 얻었고, 나를 짓누르고 있던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외적인 성과도 있었다. 한 글은 조회수 100000을 기록했고, 또 한 글은 작은 웹진에 인용되었다. 나는 글을 쓰는 것으로 새로운 성장의 길을 열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어느 날, 내면의 목소리가 나에게 묻는다.
뭐 하고 있냐고. 네가 하고 싶었던 일은, 이야기는... 정말로 이거냐고.
그렇다. 내가 진짜로 쓰고 싶었던 글은, 이야기는 이것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으려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나는 글을 통해 내 어두운 부분까지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내기 위해서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그 이야기'를 쓰려면 정말로 글을 쓰는 실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많은 글을 써서 실력을 기르면 언젠가는 '그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더라도 부끄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면의 목소리는 다시 나를 질타했다.
확실히 글쓰기는 너에게 정신적인 만족을 주었고, 무기력을 벗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글쓰기의 정신적 만족에만 머무르기에는 네가 살아야 할 시간은 너무도 길다.
실력이 부족하다고? 너는 2년 동안의 글쓰기 활동으로 이미 충분한 실력을 갖춘 것이 아닌가, 같은데 왜 아직도 '그 이야기'를 실체화시키지 못하고 있냐고 실력이 없다는 것은 변명이고, '그 이야기'를 쓰는 게, 세상에 내놓는 게 너무 겁나고 부끄러워서 변명하고, 일부러 다른 종류의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지금 브런치를 하고, 스팀잇에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이유는 너의 '도망'을 정당화하기 위한 게 아닌가. 스팀잇으로 돈이 벌리고, 큰 이득을 보면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브런치로 글을 써서 책을 낼 수 있게 되면 너는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너는 그 이익에 안주해 평생 다른 글만 쓰면서 도망다닐 것이다. 너는 어쩌면 부와 명성을 모두 거머쥘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너는 죽을 때까지 '그 이야기'를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내면에 품은 '그 이야기'는 답을 알고 있다.
만일 너에게 실력이 부족하다면, 이제부터는 글 이외의 방법으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 좋은 글은 좋은 경험에서 나오고, 좋은 경험을 하는 방법은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에 있다. 너는 갈수록 가족과도 말이 없어지고 있다. 아버님께서도 그런 너를 걱정하고 있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면 사회성을 키울 방법을 찾아라. 많은 종류의 사람과 많은 대화를 하는 법을, 일을 찾아라.
너는 직장을 기피하고 있다. 너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직장에 다니면 꼰대 같은 상사를 만날 것이고, 동료들은 너를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할 것이다. 너와 회사 사람들 사이에는 유대관계 따위는 없을 것이며, 과중한 야근에 너의 몸도 정신도 갈갈이 찢겨나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대다수 직장은 그런 곳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직장은 기피해야 하는 곳일까? 그렇지 않은 곳도 이 세상에는 많을 것이다. '제3의 직장'이라는 책을 읽지 않았나? 제3섹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집에 틀어박혀있을 것인가?
두서가 없지만, 이것이 나의 고민이다. 쉽게 '정체'로 요약된다. 내 모든 것이 정체되어있다는 느낌, 내가 좋아하고 내가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도 자꾸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과는 멀어지고 있다는 모순. 정체와 모순에 대처하고,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방법. 이 시대와 내 안의 나는 이것을 나에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