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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철 Mar 02. 2021

스팀잇(steemit)의 추억

미래인가 환상인가

요즘 가족 사이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공기가 바뀌었다. '마이닝시티'라는, 일종의 암호화폐 채굴 대행 사이트에 가입한 아버지(아버지의 암호화폐 지갑 관리는 일정 부분 내가 하고 있다.), 암호화폐 매매를 두고 아버지와 여동생이 서로 잔소리하는 장면... 내 주위를 살펴보면 적어도 과거보다는 암호화폐에 대한 시선이 더욱 긍정적으로 흐른 것은 분명하다. 그런 흐름 속에서 나는 잊고 있던 기억 하나를 떠올려냈다. 바로 '스팀잇'이다. 


스팀잇은 글을 쓰고, 그 글에 다른 이용자들이 '보팅'하며, 보팅을 많이 받은 만큼 가상화폐의 일종인 '스팀'으로 환급해주는 서비스이다.  2017년 중반부터 알음알음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들이 거둔 수익이 알려진 2018년 초, 스팀잇은 암호화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나도 그 물결을 타고 스팀잇에 뛰어든 사람 중 하나다.


스팀잇을 하고 있는 동안 생긴 것은 '루틴'이다. 주말과 휴일을 제외한 매일 짧게나마 글을 쓰는 생활을 했다. 가끔가다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막혀서 머리로 어떻게든 쥐어짜보기도 했지만, 어쨌든 평일에는 매일 글을 썼다. 스팀잇 본 사이트는 서식이 부족한 관계로 서브 사이트를 이용하여 글을 작성해보기도 하고, '타이포라(Typora)'라는 간편 필기 프로그램을 사용해본 것도 그때였다. 스팀잇을 한 6개월 동안은 내 글 인생에 있어서 이러저러한 시도를 해보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열정적이었다. 나의 모든 것을 스팀잇에 쏟아부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 글 실력으로 나의 벌이와 미래를 만든다는 생각이 나를 스팀잇 속으로 달리게 했다.


하지만, 스팀잇을 향한 내 열정은 한순간에 식어버렸다. 복선은 있었다. 우선 스팀잇 자체가 거의 암호화폐 정보 전용 커뮤니티가 되어버렸다는 문제였다. 보팅을 많이 받는 기사는 대부분이 암호화폐 정보와 관련된 글이었다. 다른 주제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져갔다. 나처럼 때로는 일상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내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넓고 얕은 타입의 글쟁이와 엇갈림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비밀번호 관리의 문제. 스팀잇 서비스에 가입할 때, 52자로 랜덤 생성된 비밀번호 4개를 알려준다. 4개의 비밀번호는 각각 포스팅 키, 액티브 키, 오너 키, 그리고 메모 키(이것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라고 하는데, 어떤 비밀번호를 입력했느냐에 따라서 스팀잇 서비스에 어디까지 접근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오너 키는 최고 등급의 비밀번호고, 포스팅 키는 글에 관한 서비스에 사용한다. 액티브 키는 스팀 달러 거래용. 보안을 위해서는 좋은 조치였지만, 관리가 문제였다. 52자의 비밀번호는 다른 곳에 백업을 하거나 손으로 써 놓는다고 해도 일일이 기억하고 입력하기 힘들다. 특히 오너 키에 문제가 생기면 스팀잇에 공든 탑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이런 불안한 복선에 결정타를 가한 사건은 어이없게도 집에 터진 전기 계통의 문제였다. 내 방 콘센트에 문제가 생겨 방 전체가 며칠 동안 정전되다시피 한 것이다. 전자기기를 사용하려면 큰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불안 속에서도 루틴으로 겨우겨우 유지하던 나의 스팀잇 생활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스팀잇의 이상은 간단했다. 글이라는 활자 콘텐츠의 더 간편한 수익화.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에 자신이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했다. 팟캐스트로 음성 콘텐츠의 더 쉬운 수익화가, 유튜브로 영상 콘텐츠의 더 쉬운 수익화가 실현된 지금이지만, 글이라는 활자 콘텐츠의 더 쉬운 수익화는 아직 요원해 보이는 일이다. 그것을 타개하고자 나타난 것이 스팀잇이다. 스팀잇은 글이라는 활자 콘텐츠에 자신을 건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미래를 보여주었다. 스팀잇에 몰두하는 동안, 나는 어쩌면 나의 미래를 미리 체험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본 미래는 너무 멀리 있는 이상일뿐이었을까? 나의 실력이 부족하여 미래에 닿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스팀잇은 단순한 환상에 지나지 않았을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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