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만 하면 다 될 거야"는 없다.
3개월 전인 2016년 1월이었다. 나는 서울에 있는 친척분이 하시는 일터에서 1주일가량 단기 알바를 하다 온 일이 있다. 웰팅기를 다루는 일이다. 나는 친적분의 일을 보조하는 정도의 일을 했지만, 적당히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경험은 보람이 있었다.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국제전자센터에도 갔고, 만나지 못했던 다른 친척도 만났다. 전주의 집에 틀어박혀있을 때 느껴보지 못한 것을 많이 느꼈다.
문제는 그 후였다. 짧은 서울생활에 중독이라도 되었는지 아니면 전주에 돌아와 다시 방에 틀어박힌 자신이 싫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가 권한 곳에 가기 싫었을 때 한 번, 서울 친척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울에 가고 싶다고, 그곳에서 일 배우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는 흐지부지 넘어갔다.
이윽고 '심원철 면접장 막말 파문' 이 터졌다. 아버지의 얼굴조차 보기 죄스러웠다. 나는 다시 친척분께 전화를 걸었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서 서울에서 지내고 싶다. 이렇게 말을 했다. 그때는 정말 서울에 가고 싶었다. 아버지께 편지를 쓰고 서울로 가려고 실제로 편지까지 품에 가지고 다녔다.
그런 생각을 품던 중, 여동생과 대화를 했다. 여동생은 내가 딱히 말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서울에 갈 생각을 품은 것을 알았다. 여동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나의 서울살이를 말렸다.
지금 오빠가 서울로 가려고 하는 것은 그분들께 민폐다. 아무런 대책 없이 서울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이냐?
서울에서 웰팅기 일을 배우면서 인생공부를 할 생각...... 이었다. 서울만 가면 어떻게든 다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무작정 가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전주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순간에 생각이 바뀌어갔다.
우리는 이런 식의 말을 평소 많이 듣는다.
좋은 고등학교 가기만 하면 다 될 거야.
좋은 대학 가기만 하면 다 될 거야.
좋은 직장 들어가기만 하면 다 될 거야.
우리는 인생의 문들을 조우할 때마다 저 문 앞에는 행복한 낙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안고 앞만 보고 달려와서 문을 연다. 하지만, 문 뒤의 상황도 문 앞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문 하나를 열고 문 앞의 세상이 문 뒤의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더욱 험한 길임을 알고 실망하면서도 저 앞에 있는 또 다른 문을 열면 다를 것이라고 소망하면서 그렇게 문 앞으로 가려고 한다. 이것을 무한히 반복한다. 나도 서울이라 불리는 문을 열면 낙원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소망하면서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문 뒤와 문 앞의 세계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서울이라는 문 앞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친척을 보고도 느끼지 못했는가?
그럼에도 문을 열어야 한다면, 열고자 한다면, 문 앞의 세계가 낙원일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 그리고 문 앞의 세계에서 닥쳐올 위기를 기꺼이 감수할 냉정함과 용기, 그리고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서울이라는 문을 열려고 할 때 가지고 있었던 것은 환상과 만용, 그리고 무대책이었다. 여동생의 말은 내 그런 마음들을 깨트렸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 가지 않기로 했다. 친척분께도 전화를 하여 나의 결정을 번복했다. 이른바 '결의의 상경 편지'는 며칠 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찢어 없애버렸다.
~하기만 하면 다 될 거야
이 말을 품고 문 앞으로 달려 나가려 하지 말자. 그 대신, 각오를 하자. 문 뒤에 있는 모든 것을 감수할 각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