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6부터 시작된 나의 격리의 역사
나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기억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돌이켜 보아도 그때만큼 힘든 나날은 없었다. 내 학창 시절은 놀림과 괴롭힘, 그리고 분노 발작으로 물들어 있는데, 그 모든 것의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기억들이 소환된다. 그리고 그 시절의 기억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외톨이의 책걸상'이다.
이 '외톨이의 책걸상'이 뭐냐 하면, 유난히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놀림과 괴롭힘을 당하는 나를 보다 못한 당시 담임선생님의 특단의 조치다. 그 당시에는 아이들끼리 조를 이루게 하여 서로 마주 보게 책상을 붙이고 같이 앉히는 것이 일반적인 교실의 모습이었는데, 나는 어떤 조에도 속하지 못하고 교실 앞문 바로 뒤쪽 벽에 책상을 붙이고 혼자서 수업을 받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이렇게 '외톨이의 책걸상'은 단순한 초등학교 때의 안 좋은 기억만으로 남을 줄 알았다.
나는 여전히 다른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고, 그에 반응하는 나의 분노 발작도 계속되었다. 중학교 때는 어영부영 넘어가기는 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나의 모습을 보다 못하여......
야자에서 빠질 것을 권하셨다.
나의 분노 발작이 면학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권유를 받아들였다. 이 격리는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작용했는데, 야자뿐만이 아니라 방학 보충수업도 면제 처분이 났기 때문이다. 그때 우연히 가정통신문을 읽은 적이 있는데, 학부모에게 전하는 말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하여튼, 야자 이탈은 '외톨이의 책걸상'이 아직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은 내가 스스로 격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선택한 격리는 대학 때도 이어졌다. 대학 때 어느 수업을 듣던 중의 일이다. 수업 준비물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수업에 들어가게 되어 유난히 초조한 상태였는데, 교수님의 호통에 심하게 놀라 소리를 지른 나는 강의실을 허겁지겁 나가려 하다가 문 옆 벽에 머리를 정통으로 박았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 모습을 보고 교수님도 놀라서는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며 학점은 B를 줄 테니 남은 수업은 나오지 않아도 좋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세 번째로 격리를 선택하고 경험하였다. 홀로 됨과 격리는 나에게는 이제 익숙하고 당연했다. 모두를 위해 나는 혼자 있는 것이 당연하다.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피해만 줄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몸과 지식 면에 있어서는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마음의 일부는 아직 초등학교 6학년, 그 교실 앞문 뒤쪽 벽에 붙은 '외톨이의 책걸상'에 앉아 머무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