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리 길고 쓰렸던 홍콩에서의 밤

-다시 오픈데이,면접을 위해 떠나다

by 셜리shirley


유럽투어를 돌아온 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동남아시아에서 열리는 오픈데이 즉, 승무원 면접을 보기 위해 떠나게 된다. 유럽에서 최종직전까지 올라가며 얻은 자신감과 감을 잃기전에 얼른 나는 합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싶었다.





처음으로 떠났던 말레이시아라는 나라는 너무나 무더웠다. 쿠칭이라는 시골에서 본 면접은 유럽에서 봤던 면접보다 훨씬 더 많은 지원자가 몰렸고 칼을 갈고 갔던 그곳에서 맛본 탈락은 너무나 허무했다.그리고 더 힘들었던 건, 함께 면접을 보면서 친해지게 된 무리 중 한명이 파이널 면접까지 올라가는 걸 지켜만 봐야 했던 것이었다.


탈락의 아픔을 잊으려 얼른 다음 면접지인 홍콩으로 떠났다. 급하게 결정하고 떠나온 홍콩이라 숙소 또한 너무 급하게 예약해야했다. 비싼 홍콩 물가 때문에 숙소는 너무나 터무니없이 비쌌고, 그중에 가장 저렴하면서도 괜찮아 보이는 숙소를 예약했다. 하지만 숙소 건물에 도착한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됬다는 걸 직감했다. 어둑하고 스산한 느낌의 건물, 엘리베이터조차 낡아서 멈추면 어쩌나 무서웠다. 홍콩영화에 으레 나오는 마약이나 장기밀매가 어디선가 이뤄질 거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호텔로 들어가자 프런트에 사람이 없었다. 자욱한 먼지가 쌓여있는 프론트 책상에는 열쇠와 예약 장부 같은 노트에 내 이름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내 열쇠를 가지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미줄이 쳐져 있고 언제 세탁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더러운 이불과 베게, 침대라고 하기엔 오래된 매트리스에 가까웠다. 조명 또한 너무나 침침했고 문을 잠구는 열쇠가 있는데도 보안이 의심될 수밖에 없는 허술한 시설. 잔뜩 겁을 먹었던 처음과 달리 문득 너무나 서러워 졌다. 내가 왜 이런곳까지 와서 고생을 사서 해야 하는지 너무나 억울했다. 내가 원해서 온 홍콩면접이었지만 이런 식의 열악한 시설을 견디면서까지 면접을 보고싶지는 않았다. 이런 생각들이 밀려오자 두려웠던 마음들까지 함께 나를 덮쳐와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으로 함께 온 동행인 동생에게 연락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자고있을지도 몰랐지만 지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친구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친구와 연락이 닿았고 호텔 시설이 너무 열악해서 도저히 여기서 잘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울먹였다. 그러자 동생은 흔쾌히 자기 호텔로 와서 자고 내일 같이 면접장에 가자고 했다. 구세주와 같은 동생의 제안에 나는 황급히 짐을 챙겼다. 밤 12시가 다 되가는 그 한밤중에 쿠알라룸푸르에서 홍콩까지 오느라 피곤했던 몸을 억지로 붙잡고 그 호텔을 뛰쳐나왔다. 짐을 가지고 화장기도 없이 미친여자처럼 택시를 잡으려고 돌아다니는 내 모습은 아마 주변사람들이 보기에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겨우 잡은 택시를 타고 동생이 있는 호텔 이름을 말하자 좀처럼 기사가 알아듣지를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택시기사는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나는 인터넷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손짓발짓을 하며 호텔을 설명해야했다.


겨우겨우 도착한 호텔, 너무나 호화로운 시설이었고 내가 몇 분 전 있었던 숙소와는 너무나 대비되어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숙소에 체크인하고 들어가 동생을 만나고 나자 이제야 겨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침대에 눕자 정신을 잃듯 잠이 들었다. 끔찍한 악몽과도 같았던 홍콩에서 그날의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 여느 오픈데이 면접때와 같이 일찍 일어났는데 어제부터 가렵던 눈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피곤함과 스트레스, 그리고 물이 맞지 않아 생긴 다래끼였다. 면접에서 첫인상이 중요하단 건 이미 너무나 몸으로 체득해서 알고 있는 사실인데 메이크업으로 제일 강조해야할 눈에 다래끼라니...

이런 일은 예상치 못했기에 당황스러웠고 시작부터 너무나 좋지 않아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일단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화장을 마치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그날은 처음으로 카타르 항공 오픈데이를 보는 날이었다.

그날 역시 많은 지원자가 몰렸고, 두명의 면접관이 나눠서 지원자들의 cv를 받았다. 스몰톡을 열심히 준비했고 면접관이 있는 방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지원자들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하며 계속 연습했다. 드디어 면접관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면접관에게 나 역시 웃으며 인사하며 스몰톡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 스몰톡은 누가 들어도 로봇이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조차도 느껴지는데 면접관은 오죽했을까. 늘 그렇듯 cv드롭은 3분도 안되는 시간에 모두 끝이 난다. 이 시간을 위해 나는 결국 한국에서 쿠알라룸푸르, 그리고 홍콩까지 총 10시간을 날아왔던 것이었는데. 내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결과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야 마음이 덜 아플 것 같았다.

또다시 탈락,

함께 면접을 보러간 동생은 cv드롭에 합격했다. 워낙 그루밍(화장, 헤어, 복장)에 뛰어난 친구였고 영어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구사하는걸 알고 있어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나만 붙어서 너무 미안하다는 동생에게 그러지 말라고, 네가 열심히 준비해서 얻은 결과니까 너무 잘한거라고, 앞으로 면접도 최선을 다해서 잘 됬음 좋겠다고 그렇게 행운을 빌어주었다.

물론 내 속마음은 너무나 쓰라렸다. 다래끼가 나서 퉁퉁 부은 눈보다도 아팠던 건 또다시 거절당한 마음이었다.

동생과 함께 홍콩 시내를 나가 구경하며 기분전환을 하려 애썼다. 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cv드롭에서 어떻게 하면 면접관의 마음에 들 수 있을지 동생과 진지한 상담을 했던 거 같다.

승무원 특성상 건강해 보이는 이미지여야 하는데 지금 언니는 너무나 말라서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한다고 일단 제대로 먹고 살부터 찌워야 한다고 했다. 사실 어제부터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해 기운이 없었다.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좀 좋아질 것 같아 시내의 식당에서 이것저것 시켜 배부르게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그날밤은 밤새 장염으로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괴로웠던 장염보다도 탈락으로 인한 상처받은 마음 때문에 꼬박 앓았던 것 같다.

한마디로 홍콩에서의 2박3일은 내게 최악의 면접일정이었다. 최악의 컨디션 난조를 겪어야 했고, 몸도 마음도 너덜더널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내 안에는 이상한 독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밟아도 밟아도 다시 피어나는 잡초같은 근성이 내안에 있다는 걸 발견했다. 결국 나는 이틀 뒤 열리는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오픈데이에 참가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홍콩에서 부산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도 충분히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가서 면접을 보겠다는 건 컨디션을 생각해도 무리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고 돌아가기엔 내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런 패배감만을 안고 돌아간다면 나는 돌아가서 승무원 준비를 영영 포기할 것만 같았다. 아무리 거절당하고 또 무너지더라도 나에겐 이 자존감만은 회복할 기회가 필요했다.

홍콩을 떠나는 비행기를 타며 나는 다짐했다. 다음 도시에서 또 탈락하더라도, 더한 좌절감이 몰려오더라도, 이날을 잊지 말자고.


홍콩시내 거리를 울며 혼자 헤매던 그 밤, 탈락으로 인해 쓰렸던 그 길었던 밤.

그럼에도 나를 다시 일으켰던 그 돌멩이같이 단단한 마음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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