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분석하는 작가가 된다는 것

금융문맹 직장인 자본주의 홀로서기 2

by 슈퍼노바

금융문맹 직장인 자본주의 홀로서기 1


누구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을 어떻게든 표현하려고 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귀인 된다. 자신을 잘 표현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그 본성을 충족시키는 것이므로 짧은 삶의 부질없는 인생에 있어 주는 의미가 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 '내가 하는 일' 일 것이다. 일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성숙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듯 내가 어떤 일을 하는가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비칠 나의 삶 대부분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나의 일자리는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리라.



20대, 30대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성공은 일 자체보다 어떤 회사에 다니느냐로 구분되는 듯하다. 그러므로 중소기업이냐, 대기업이냐, 공기업이냐 등의 기준으로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며 그것이 진정 자신을 표현하고 나타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러한 이유는 자본의 규모가 크거나 사회적 명성이 높은 회사일 수록 그 조직에 속한 개인도 그 집단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여러 혜택도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좋은 인맥을 형성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집단에 소속된 것만으로도 자신의 모든 가치가 평가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에 대한 문답으로 이어져야 한다. 보통 같은 조직 속에 속한 사람들끼리는 그 집단 안에서만 어떤 일을 얼마나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지를 서로 관찰하게 되고 평가, 판단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기업에 다닌다는 자신의 모습으로 어떤 존엄을 찾는다는 것은 평소 자신에게 별다른 의미를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보통 직장인들이 수년간 열심히 일하다 문득 자신의 정체감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될 때가 있는데 그 정체감이 자신이 생각해왔던 삶과 얼마나 비슷한지를 따져보고 그 괴리감이 크다면 좌절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현실적인 삶을 폄하하거나 부정하는 것도 두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조화를 왜곡시켜서라도 좋게 포장해두려고만 한다.


자신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일이란 것을 열심히 해왔고 그 일이라는 주체가 오롯이 나인 줄로만 착각한 건 아닐까? 그러나 기업이라는 자본주의를 위해 나를 표현해온다고 했던 일의 내용과 상황들도 계속적으로 바뀌어야 했고 그러한 나 자신의 정체감의 혼돈도 극복하며 살아야 했다. 결국 자신에 대한 표현도 이 자본주의의 굴레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회사를 다니며 그 조직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는 제한적이었다. 가끔은 매우 이상한 상황들을 마주하기도 하며 기업의 경영진들을 향해 쓴소리로 충고하고 싶은 충동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를 속으로 삭히며 화병에 도달할 지경까지 이른 경우도 있었다.


사실 회사의 모든 관행, 업무방식, 생각의 차이 등은 어떠한 연역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과 이건 정말 아니야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이해했다.


사실 "너그럽다'라는 형용사는 내가 편안한 마음 상태에서 남들에게 베풀어주는 인정이 아니라 내가 심히 괴롭고 힘들 때에도 그것을 참고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된다.


나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내가 내적으로 품고 있던 번민과 회한을 글로서 표현하고 남들과 공유하는 것 자체로 새로운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나의 정체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기업의 조직 문제에 대해 많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부서 간의 이기주의로 인해 극심한 갈등 고리로 상호 간의 신뢰가 무너지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나는 조직을 감싸기만 했더 그 팀장을 보며 그 팀장의 팀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고 이해관계된 다른 조직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이런 것들은 대개 합목적적인 것과 도의적이고 윤리적 것과의 상충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나는 이에 대해 나의 입장을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정체감에 대해 정의하고 자존감을 지켜야 했다. 나의 정체감을 말하기 앞서 '과연 내가 남들에 비해 무얼 잘할까?', '나의 삶은 앞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으로 시작했다. 사실 나는 기업경영 전반에 대한 전문가가 되고 싶었고 하나의 기업에서 인정을 받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관련 전문 자격증들을 취득했지만 자격증이 다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도움이었다. 그 '실질'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남들이 일반적으로 아는 범위를 넘어선 수준에서 이야기를 이끌고 갈 역량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최근 코로나 바이러 영향에 따른 기업 자체의 생태계뿐만 아니라 해외 정치, 경제 관련 산업 전반에 대해 논평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때론 이를 한 수 넘어서 지구온난화 문제와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 등의 리스크를 다루며 지구 상의 인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지식의 세계를 추구하며 자신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즉 자신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는 배움이 있다. 그 배움을 통해 남들로부터 존중을 받고 내 삶을 독립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자본을 취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일'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이처럼 작가라는 직업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내 삶의 방향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매일 어제보다 더욱 진정한 전문가가 되었다는 기분을 가지고 잠자리에 든다. 이러한 생각은 나날이 나의 발전을 부추긴다. 세상도 나의 변화를 인지한 듯 최근 들어 많은 기관으로부터의 강의나 심사 등을 제안받았다.


나는 내 삶의 의미를 조금씩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를 글 쓰는 사람, ‘작가'라고 하는 것은 나를 가장 잘 표현하고 나를 나 답게 만들어주는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어쨌든 글쓰기를 통해 나는 나의 뽀록의 역사를 청산할 수 있었다.


작가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남들이 보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던 사회 전반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