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것이 흰 것이다.
학교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School)는 원래 그리스어 단어 스콜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와 그 외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특권층의 사람들만이 배울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는 고등학교까지는 의무 교육이 될 정도로 교육의 기회가 폭넓게 주어짐으로 더는 문맹자가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처럼 국가에서의 높은 교육열 기와 함께 개인 역시 그에 못지않게 높은 관심이 있다. 특히나 임신한 엄마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에게도 교육을 베풀기 위해 특별한 신경을 쓴다. 그 이유는 예전에 미처 몰랐던 태교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음악 지휘자는 자기가 연습하고 있던 여러 악보가 이상하게도 낯익어 보였으며, 특히 첼로 곡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전문 첼로 연주가인 어머니에게 그 작품명을 말하자,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임신하였을 때 바로 그 곡들을 연습하고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이와 비슷하게, 태아는 임신부가 습관적으로 TV 연속극을 시청할 때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한 의학지는 “태아의 연속극 중독”에 관해 이야기함으로 임산부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처럼 태교에 대한 엄마의 관심은 아기의 성장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온갖 정성을 기울인 아기가 예상대로 태어나면 이보다 경사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보고 엄마 아빠는 뛸 듯이 기뻐한다. 장차 태어날 아기를 위해 부모들은 옷가지며 장난감을 준비해 두고 이날만을 학수고대해 왔다. 개인의 아기에 관한 관심에 더해 특히나 요즘엔 임신한 임산부를 위한 사회적 배려가 각별하다. 지하철 공사에서는 지하철 내에서의 임산부 좌석을 특별히 지정하여 핑크빛 색칠까지 하여 임산부를 특별 대우한다. 이런 장면들은 태어날 아기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높은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부모들은 태어난 아기가 자신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바란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그러나 아이가 점차 자라면서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무슨 일인지 교육 아닌 교육들이 진행된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부모들의 욕심에 경쟁에 내몰리고 친구들을 경쟁자로 여기며 부모들이 갈라놓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편 가르기를 배운다.
이제부터 엉터리 교육이 아이들의 인성을 버리기 시작한다. 함께 노는 친구들의 집 아파트 평수가 몇 평이며 친구 아빠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지, 아버지 직업은 무엇인지 등등 비뚤어진 교육에 내몰리며 성장한다. 집안에서 올바른 교육을 해도 비뚤어지기 쉬운 환경인데 집안에서부터 잘못된 교육에 틀 잡히고 바깥 사회에서도 또다시 엉터리 교육을 해대니 어린 자녀가 올바로 성장하는 신기할 따름이다.
한때 아버지들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여 기러기 아빠를 마다치 않으며 엄마와 자녀를 먼 나라로 유학 보내고 혼자 쓸쓸히 보낸다. 사실 가족 구성원이 함께하지 못하며 아빠의 사랑과 훈육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자녀가 바르게 성장하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밖에 없다.
아빠는 아빠대로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고통 속에 지내고 엄마와 자식은 자식들도 생이별해서 긴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가정이 올바로 유지되기가 굉장히 어려운 지경에 놓이게 된다. 마치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가장 소중한 가정이 교육이란 핑계로 붕괴하는 전초전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가정과 학교에서는 자녀가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만을 위해서라면 어떤 편법도 마다치 않는 현실이 팽배하다. 오로지 결과만을 위해서 과정은 무시되는 사회 분위기이다.
사실 아이러니 하게도 천진난만하던 아기들이 교육을 받는다는 핑계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성이 더욱 나빠지는 것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차라리 교육을 받지 않음이 더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 본다. 우리의 첫 조상을 속였던 속임수의 대가인 사탄이 그 근본이다. 그는 그때 이후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왔다. 그의 정체에 관해서 성서는 이렇게 알려준다. 요한복음 8:44
"그는 시작할 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안에 굳게 서지 않았습니다. 진리가 그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짓을 말할 때에 자기 성향에 따라 말합니다. 그가 거짓말쟁이고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 이후 그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먹게 하여 옳고 그름을 잘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고린도후서 4:4 "그들 가운데서 이 세상 제도의 신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정신을 눈멀게 하여 하느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에 관한 영광스러운 좋은 소식의 빛이 비치지 못하게 해 왔습니다."
그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세상 제도의 신으로 군림하며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교묘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사회가 거짓으로 치달으며 멸망의 길로 가기를 바라고 있는 자이다. 그래서 진실보다는 거짓이 더 좋은 것처럼 포장하고 도덕보다는 탐욕이 더 중요한 것인 양 부추기고 있다. 그래서 세상엔 거짓과 탐욕이 넘쳐나고 가족 구성원 간에도 사회에도 국가 간에도 이러한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어떻게 문제가 바로 잡힐 수 있을까?
그러나 이렇게 비뚤어진 상태는 오래갈 수가 없고 비정상인 것이 정상인 것처럼 용인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비정상적인 것들을 바로 세우는 때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오래전에 이러한 때에 관해서 예언하였다. 디모데후서 4:3,4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참지 못하고 자기 욕망에 따라 자기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선생들을 곁에 끌어모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 돌았서 거짓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잘못된 도로 표지판임을 알게 되면 방향을 바꾸어야 하듯이 세상은 분명 잘못되었다. 세상은 비뚤어졌고 사탄의 속임수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조만간 거짓의 근원인 사탄을 제거할 때를 기다리며 참된 것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거짓의 원인이 제거되면 모든 교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성공에 대한 잘못된 정의가 바로 잡혀야만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모든 잘못된 교육목표, 방법이 혁신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다가올 미래에 인간의 비뚤어진 교육이 끝나고 하느님의 완전한 가르침이 이 땅에 베풀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 사회에는 참다운 교육이 베풀어질 것이다. 더는 사탄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최고의 교육 환경을 줄 것이다. 하느님의 왕국이 그 점을 실현할 것이다.
시편 25:8,9 "여호와께서는 선하고 올바르시다, 그분은 온유한 자들에게 자신의 길을 가르쳐 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