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풀

"남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by 자연처럼

어디서든 쉽게 마주치는 풀 한 포기가 있다.

바람이 불면 조용히 몸을 흔들며 작은 고개를 숙이는 풀, 바로 강아지풀이다.


이름 그대로 어린 강아지의 꼬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 어린 시절, 우리는 그 부드러운 꽃이삭을 꺾어 손등이나 볼에 문지르며 깔깔거리곤 했다. 친구들끼리 웃음을 나누던 그 순간, 강아지풀은 우리에게 자연이 준 작은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다. 먹을 수 있는 열매도 없고, 화려한 꽃도 없으니 그저 잡초라 불리기도 한다. “이 풀이 굳이 왜 존재할까?” — 그렇게 하찮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강아지풀은 하찮지 않다. 깊게 뿌리를 내려 흙을 단단히 붙들고, 가늘고 여린 몸으로 작은 곤충들의 피난처가 되어 준다. 참새들이 쉬어 가는 은신처가 되기도 한다. 그 존재는 작지만, 제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이 풀을 보고 있으면 사람의 모습이 겹쳐진다.

세상에는 눈에 띄는 재능과 매력을 가진 이들이 있다. 잘 배웠거나, 부유하거나, 외모가 빼어나 사람, 말을 잘하거나 호감이 가서 끌어당기는 이들.


그러나 그 반대의 이들도 있다. 특별한 재능이 보이지 않고, 외모나 형편이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 특히 장애를 가진 이라면, 우리는 무심히 스쳐 지나치기 쉽다.


그 무심함 속엔 편견이 숨어 있다. 편견은 바이러스와 같다. 그것에 물든 사람은 스스로 그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길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보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닫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을 보는 하느님의 눈은 다르다. 성경은 말한다. “그분은 한 사람에게서 모든 민족을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 사도행전 17:26 (신세계역) 하느님은 모든 인류를 한 가족으로 여기신다.


사도 베드로도 이렇게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하느님은 편파적이 아니시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신다.”— 사도행전 10:34-35 (신세계역)하느님께서는 나라나 민족에 따라 외모에 따라 그 사람이 가진 여건에 따라 편견을 갖고 계시지 않다.


하느님께는 누구 하나 하찮은 사람이 없다. 그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사람이 구원의 길에 들어서길 바라신다.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닮으려면, 사람을 볼 때 다른 점이 아니라 닮은 점,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 외모, 성격, 목소리, 지문, 홍채, 혈액형… 하느님은 그 모든 차이를 두고 우리를 각자의 개성을 지닌 특별한 존재로 만드셨다.


누구나 다른 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단지 그것이 아직 빛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의 무관심으로 발견하지 못했고 각자에게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강아지풀이 이름 없는 풀 가운데서도 제 몫을 하듯, 사람도 존재만으로 누구나 소중하다. 오늘 우리의 눈길이 스쳐 가는 그 한 사람, 그 안에도 하느님이 사랑하신 가치가 숨겨져 있다.


“겸손하게 남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십시오.” — 빌립보서 2:3 (신세계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