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동네 주택가를 걷다 우연히 처마 끝에 매달린 앵무새를 보았다. 넓은 세상을 마음껏 날아야 할 새는 좁디좁은 새장에 갇혀 밖을 내다볼 뿐 날갯짓을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멀리서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들에게 이성이 없기에 망정이지, 만약 이성이 있었다면 그 답답함을 며칠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은 그 무엇보다 자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인류의 역사는 곧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이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를 쟁취해 온 과정이다. 고대 그리스의 시민권을 시작으로 17~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이 확산되면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천부인권 개념이 등장했다.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은 의회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했고, 1776년 미국 독립 전쟁은 국가로부터 독립된 개인의 자유를 선포했다. 또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근대 시민 사회를 열었다. 이처럼 인류사는 자유를 향한 길고도 험난한 투쟁의 여정이었다.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다.
우리는 누구나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장수하길 원한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상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죽음을 당연한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죽음은 사실 인간에게 맞지 않는 옷과 같은 존재다. 인간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영역 중 하나가 바로 사후의 삶이며, 이에 대해 온갖 억측과 추측이 난무하지만 누구도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한다.
이치적으로 생각했을 때, 조각 작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작품을 만든 작가다. 작가는 재질은 물론 제작 의도와 과정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도 다른 누구보다 창조주에게 묻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정확한 답변을 얻는 방법이 될 것이다.
또 한가지는 '인간은 태어나면 죽는다'는 생각이다.
이는 사탄이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점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처음 창조하실 때 죽도록 만들지 않으셨다. 첫 조상의 범죄 이후 인간은 죽게 되었고, 이러한 현실이 대대로 이어지며 당연한 귀결처럼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이는 창조주의 본래 의도가 아니었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죽음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 대속(代贖)의 마련을 하셨다. 이 대속 마련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자들에게는 지상에서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상이 주어질 것이다.
철장에 갇힌 앵무새처럼 인간 역시 죄와 죽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자신이 구속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70~80년의 짧은 삶은 수고와 슬픔, 고통으로 점철된 불완전한 삶에 불과하다. 진정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구속으로부터 반드시 자유로워져야 한다.
우리는 죄와 죽음은 물론, 우리의 사고를 지배해 온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아야 한다. 새장 밖으로 나와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앵무새처럼, 우리도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를 통해 죽음이 들어왔으며, 이와 같이 모두가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퍼졌습니다." (로마서 5:12 신세계역 성경)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 8:32 신세계역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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