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는 생각
글쓰기는 생각을 눈으로 보는 작업이다.
하나의 생각은 머릿속의 독립된 하나의 공간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하면 신발장 앞에 놓인 정리되지 않은 헝클어진 여러 켤레의 신발과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신발장 안에 신발을 넣는 것과 같다. 생각의 현관은 깨끗해지며 필요할 때 신발장을 열고 눈으로 신발을 확인하고 필요한 신발을 꺼내어 신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런 비유를 하기도 한다. 생각은 머릿속에 실타래처럼 엉켜있다. 그래서 필요한 생각을 끄집어 내려고 하면 엉킨 실타래가 잘 풀려 나오기 만무하다. 글쓰기는 엉킨 실타래를 풀어놓는 행위와 같다 정리되어 돌돌 말아놓은 실타래에서 생각을 풀어내기는 아주 쉽다.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한 적이 있다. 자기 소개글을 적으라고 하면 글쓰기 연습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한 세 줄 정도 쓰고 “선생님 다 썼어요.”라고 말한다. 그 아이들은 생각이 머릿속에 엉겨있어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그럴 때 열 개 정도의 칸을 만들고 하나의 소재는 하나의 칸에 적어둔다.
가령 한 칸에는 엄마, 한 칸에는 아빠, 한 칸에는 형제, 한 칸에는 친구, 취미, 장래희망 등이다. 그러고는 하나의 칸에 있는 소재를 자세하게 표현하라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의 표현은 아주 풍부해진다. 하나의 생각이 하나의 칸으로 들어가 정리가 된 덕분이다.
이처럼 글쓰기를 하면 하나의 소재에 대한 생각이 하나의 방으로 들어가 여러 가지로 헝클어진 생각이 정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글쓰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그렇게 쓴 글은 생각이 활자화된 것이며, 그 활자를 눈으로 보면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를 선명하게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글을 쓰면 과거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 그러면서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 나에게 맞는 삶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성공할 때와 그렇지 못한 때가 있기 마련이다. 생각만으로는 그것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가 없다.
글을 씀으로 해서 시각화한다면 좋은 일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 나쁜 일은 왜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는지를 정리할 수 있다. 시각화 된 것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세부적인 사항을 깊이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된 원인을 알 수 있게 되며,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며,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과거의 실패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교훈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돈다는 말이 있다. 개인사도 마찬가지다. 살다보면 꼭 같지는 않을 지라도 비슷한 상황은 다시 겪게 된다. 그런 때, 글쓰기를 하며 배운 교훈은 삶을 보다 더 잘 살 수 있게 한다. 글을 쓰면서 정리되어진 삶과 그렇지 못한 삶에는 결과에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살다가 누구나 실수를 할 수가 있고 잘못된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그런 실수를 반복한다면 그것은 미련한 일이다. 또한, 과거의 어떠한 일이 성공한 사례라면 성공한 요인을 메모해두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보다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일상화되고 쌓이게 된다면 훨씬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되며,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교훈을 줄 수 있게 된다.
단지 글을 쓸 뿐인데 보다 알찬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지혜롭지 않은가? 적자생존이란 말이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요즈음은 적는 사람이 생존한다는 의미로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쓰이기도 한다.
2015년은 아직도 내 인생에 최악의 시기라고 기억에 남아있다. 하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최상의 상황을 향한 시작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최악이 어떻게 최상으로 향한 시작이 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글을 썼기에 가능했다. 2015년은 사업에 실패하고 알코올 중독의 극단까지 간 상태였다. 일은 일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엉망인 상태에 빠졌다. 물론 그렇게 된 것에는 그때까지 악화일로에 있던 삶이 바닥까지 떨어진 결과라고 하겠지만, 그것이 최악의 상황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된 것은 글을 썼기 때문에 가능했다.
글을 쓰면서 내 인생을 돌아보니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껏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요인이 활자화시켜두고 눈으로 보니,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구체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술을 좋아했다. 하지만 술이 내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남들이 다 마시는 술 난 좀 더 좋아할 뿐이라고 생각고 알코올 중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알코올 중독자는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술만 마시는 사람이었다. 또한, 술은 스트레스 해소하기에는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였고, 술은 남자들의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조미료라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글을 쓰면서 상황을 악화시킨 주된 요인이 술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처럼 술을 마시는 것은 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하니 의사가 알코올 중독이라는 처방을 내렸다. 나는 환자였다. 알코올 중독만이 아니라 술로 인해 혈압이 220까지 올라가는 고혈압 환자이기도 했다. 계속 술을 마시다가는 술로 인해 죽을 수도 있었다. 스트레스 해소라는 핑계로 마신 술이 모든 상황을 악화시켰고, 그런 상황이 지속되다보니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는 사업에 실패하고 막노동을 한 시기였다. 그 이전에는 일을 마치면 술집으로 가서 술을 마셨지만, 이때는 술집으로 가지 않고 카페로 가서 글을 썼다. 글을 쓰다 보니 상황을 악화시킨 원인이 술이라는 것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니 해결책도 나왔다. 당연 금주였다. 그때 술을 끊으면서 쓴 ‘탈주기’가 저서 <글쓰는 시간>에 소개되어 있다. 글을 쓰는 것이 최악의 상황을 최상의 상황으로 바뀌게 한 출발점을 만들어 주었다.
글을 씀으로써
"생각을 시각화할 수 있었고, 시각화하니 문제가 보였고, 문제를 보니 답을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