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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창영 Jul 28. 2018

이열치열 프로젝트(재백일기2)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덥다. 내 평생 가장 더운 여름인 것 같다. 이제껏 내가 기억하는 가장 더운 여름은 1984년 여름이었다. 그해 여름이 가장 더웠다고 느낀 이유는 7월 19일 군대에 입대한 까닭이다. 스물 한 살의 여름을 광주 오치동에 있는 훈련소에서 보냈다. 한 마디로 빨빨 기며 땀이란 땀은 다 쏟아낼 만큼 더웠다. 그 이후 여름을 덥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덥다는 생각이 들면 스물 한 살의 그 여름을 생각하며 ‘그때 비하면, 이건 더운 것도 아니야.’라고 생각을 하며 더위를 이겨내곤 했다.    


그런데 올 해 여름은 그때 보다 더 덥다는 생각이 들었다. 35도를 넘는 날이 연일 이어지며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오기가 발동하게 만들었다. 내 나이 55세. 더위에 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이열치열 프로젝트’를 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름은 거창하지만 한 마디로 더운 날씨에 지지 않겠다는 각오에 불과했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아 배가 불룩 나왔고 몸무게도 많이 불어있었다. 더구나 일을 가지지 않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있는 와중이라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또한, 아내에게서 아침, 저녁으로 운동의 필요성을 잔소리로 교육을 받고 있는 터라 무언가(나도 하면 잘 할 수 있다.)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몇 발자국만 떼어도 따가운 햇살 속에서 이열치열을 감행함으로 더위를 이겨볼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이열치열 프로젝트였다.    


먼저, 울산 태화강변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라 이름붙이기 민망할 만큼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했다. 첫날 한 4km 정도를 달렸다. 몸에 약간 무리가 되었지만 하면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두 번째 날도 첫 날과 같은 코스로 달렸다. 첫날보다는 달리기가 훨씬 쉬웠다. 하지만 종아리에 알이 배겨 통증이 왔다. 그 다음날 다시 뛰려고 하니 통증이 너무 심해 달릴 수가 없었다. 이열치열 프로젝트를 그만 둘까 하다가 이왕 시작한 것 계속하기로 마음 먹고 자전거 타기를 시도했다. 내 몸 상태에서는 조금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45km정도를 자전거로 달렸다. 전부터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자전거로 바닷가를 달리는 것이었다. ‘재백일기’란 제목으로 별도로 한 편의 글을 적었기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세 번째 날, 45km를 달리고난 후, 네 번째 날 아침엔 몸이 거의 탈진 수준이었지만 셋째 날 얻은 자신감으로 더 큰 목표를 세웠다. 그것은 울산 우리 집에서 경주 첨성대까지 자전거로 왕복하는 것이었다. 한증막 같은 날씨 속에 그냥 서있기만 해도 땀이 삐질삐질 났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자전거 폐달을 경주를 향해 밟았다. 한 가지 다행한 것은 울산에서 모화까지 자전거 도로가 개설되어 있었다는 것. 동천강을 끼고 자전거를 타는 것은 그나마 조금 쉽다고 느끼는 심적인 위안이 되었다. 모화를 지나자마자 마주친 국도,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지열은 숨을 헐떡이게 했고 해가 쏘아대는 빛의 화살은 모든 피부에 구멍을 만들어 땀을 쏟아 붓게 했다. 반바지를 입은 탓에 무릎은 화상을 입어 벌겋게 탔고 머리카락 사이엔 땀띠가 났다.    


우여곡절 끝에 4시간이 걸려 첨성대에 도착했다. 인증샷을 찍고 돌아올 때에는 괘릉 부근에 사는 장세련 작가 누님을 찾아갔다.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얻어 마시고 잠시 사는 이야기를 하며 쉬었다가 울산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땀이 범벅대고 온 근육이 경직이 되었는데도 더 힘이 나 폐달을 밟았다. 장 작가의 집에서 머문 30분을 제외하고는 울산으로 돌아오는데 2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갈 때보다 힘이 빠진 상황이었는데 시간은 오히려 덜 걸린 것이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경주 쪽이 울산보다 고도가 더 높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느낌상으로는 분명 경주로 갈 때보다 울산으로 돌아올 때 내리막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았다. 평소에 우리는 경주에 갈 때 ‘경주로 올라간다.’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그 말에는 고도가 높은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하는 근거가 불확실한 생각을 했다. 이렇게 해서 7시간에 걸친 경주행 자전거 여행을 마쳤다. (장세련 작가 누님은 이 글을 읽으면 아마도 자신이 타준 아이스 커피 덕택이라고 틀림없이 말할 것이다.)

   

다음 날, 다섯 번째로 어떤 프로젝트를 감행할까를 고민하는데, 무심코 아들에게 이열치열 프로젝트 동참을 권유했다. 그러자 아들은 오토바이로 가면 어디든 따라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부산 해운대였다. 아들과 나는 오토바이 여행을 자주 다니곤 했다. 오토바이 뒤에 아들을 태우고 다니곤 했지만, 아들의 몸무게가 100KG이 넘자 더 이상 함께 타고 오토바이 여행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100KG이 넘자 오토바이 뒷타이어가 터져버린 적이 두 번이나 있었다. 그 이후 함께 오토바이를 탈 수가 없었는데, 아들이 그 일이 있고난 후 충격을 받았는지 다이어트를 시작하여 성공을 하였다. 거의 20KG을 뺀 것이다. 그 기념으로 다시 한번 오토바이 여행을 하자고 전부터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이번에 이열치열 프로젝트에 아들이 동참함으로 해운대 행 오토바이 여행을 하게 되었다.    


아들을 뒤에 태우고 남창을 거쳐 해운대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만 계속 해운대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근처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한잔하고 아쿠아리움에 들러 물고기를 구경했다. 입장료가 성인은 한 명당 관람료가 29,000원이었는데, 다행히 평일 오전 11시 이전 입장객에게는 조조할인이 되어 15,000원에 구경할 수 있었다. 이런 정보를 사전에 알고 간다면 경비를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쿠아리움을 나서며 해운대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대학 후배인 주열에게 전화를 했다. 주열은 자신의 사무실 근처에 아시아 문화센터가 새로 생겼다고 구경할 것을 권했다. 입장료도 무료라고 했다. 그곳을 구경한 후 전화를 하면 자신이 점심을 사주겠다고 했다. 아쿠아리움과 그곳은 오토바이로 5분 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고 또한 울산으로 돌아가는 길목이라 기꺼이 그러겠다고 했다.    


아시아 문화센터는 베트남, 캄보디아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옷과 문화재 등이 전시된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입체 영상으로 본 앙크로와트 등의 석축 문화유산이었다. 과거의 문화유산과 현재의 기술의 결합으로, 화면으로 보았지만 실제로 현장에 있는 듯한 입체감을 느낄 수 있게 하였는데 아주 볼만했다. 그곳을 나와 주열 후배를 만나 냉면을 먹고 울산으로 돌아왔다. 이열치열 프로젝트 치고는 비교적 쉬운 것이었지만 아들과 함께 오토바이로 해운대를 갔고 그곳에서 잊지 못할 구경도 했으며 오랜 만에 후배를 만난 아주 좋은 추억이 된 여행이었다.    


여섯 번째 날은 다시 자전거를 탔다. 태화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강변도로를 달리기로 했다. 출발점에서 9KM 정도를 달리자 울산 12경 중에 하나인 선바위가 나타났고 그곳에서 자전거 도로는 끝이나 있었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 계속 가니 언양까지 가는 새로운 자전거 도로가 나왔다. 며칠 동안 근육이 단련이 되었는지 갈 때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달리다보니 반천 현대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곳 편의점에 들러 물을 사 마시며 목동 친구(축사에서 소를 키우는 김홍식)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자전거 여행하고 있는데, 지금 축사에 가면 있나?”

“이 더분데! 자전거 타고? 그래 있다. 온나.”    


그렇게 해서 삼동에 있는 친구 축사로 방향을 잡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자전거 도로를 벗어나 다시 아스팔트 위를 달렸다. 삼동 가는 길은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구간으로 자전거로 가기에는 쉽지 않는 구간이었다. 끙끙 대며 오르막을 오를 때는 힘이 들었지만 내려갈 때는 반대로 너무 시원했다. 몇 번의 고개를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친구 축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시원한 물을 얻어 마시고 조금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여 언양으로 향했다.(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친구 부인이 내가 온다는 말을 듣고 옥수수를 삶아가지고 오고 있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한 나는 친구 부인이 오기 전에 그곳을 떠나서 옥수수를 얻어먹지 못했다. 많이 아쉬웠다. 친구도 부인에게 한 소리 들었을 거다. 하하하.)


언양을 돌아 KTX역 주변 다리 밑에서 잠시 쉬었는데, 나처럼 자전거로 이열치열하는 몇 몇 사람들이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다리 밑에서 더위를 피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곤 하였는데, 확실히 개울가에 있는 다리 밑은 엄청 시원했다. 돌아오는 길은 엄청 힘이 들었다. 태화강변의 좋은 풍경에도 눈을 줄 수 없을 만큼 거의 탈진하다시피 했고 이를 악물고 폐달을 밟아 집에 도착했다. 이 이열치열 프로젝트도 거의 7시간이 걸렸으니 경주 첨성대 갔다 온 거리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이열치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간간히 고등학교 동기 밴드에 글과 사진을 올렸다. 그랬더니 한 인테리어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나한테 와서 일 좀 안할래?”


친구가 인테리어 일을 하는데 일당으로 일을 하라는 제안이었다. 어차피 이열치열인데 돈을 벌면서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좋다.”


이렇게 해서 친구 공사 현장에 가서 3일 동안 일을 했다. 35도가 넘는 날씨에 노동일을 한 것이다. 보통 현장에서 용역으로 일을 하면 10만원 남짓 돈을 주지만, 친구는 나에게 3일 일한 대가로 45만 원을 주었다. 이열치열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돈도 덤으로 생겼다. 백수인 나에게는 더 없이 고마운 일이었다.    

 

이로써 10일 동안의 이열치열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힘이 들었지만 아직 내 몸이 녹슬지 않음을 느꼈고 지금 비록 백수이지만 다시 일을 시작하면 어떤 일이라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회복했다. 덥다고 맥이 빠져 있기보다는 그 더위에 정면으로 부딪쳐 극복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위는 몸을 뜨겁게 한다. 그것은 곧 식은 내 열정을 다시 끓어오르게 만드는 상징으로 느껴졌다. 내 나이 55살.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는 나이이다. 하지만 아직 난 늙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리고 열정이 있다면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몸으로 정신으로 체험했다. 

이열치열 프로젝트를 마치며 난 나에게 말했다.    


“거봐 해내었잖아. 이것처럼 무엇이든 난 잘 할 수 있을 거다.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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