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에세이 -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
탄산음료가 어울리던 계절은 벌써 지나버린 것 같은 밤이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만 들리는 야심한 밤.
나는 때늦은 탄산음료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요즘 더더욱 빠져버린 탄산음료.
바로 닥터페퍼다. 안다. 호불호 갈리는 음료의 끝판왕 중 하나.
아침햇살, 맥콜, 실론티 같은 음료들과 같이 도매급으로 묶이고, 탄산음료 중에서는 이질적으로도 느껴지는 음료. 그것이 바로 닥터페퍼이다.
오늘 내가 해볼 이야기는 바로 그 닥터페퍼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탄산음료란 무엇일까?
단연코 말하겠지만, 코카콜라일 것이다. 말해 무엇 할까.
2020년 유로모니터 조사에 따르면 단일 품목으로 20%의 점유율을 넘긴 음료는 오로지 코카콜라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5번 탄산음료를 소비할 때 한번은 코카콜라를 소비한다는 뜻이고, 다섯 명 중 한명은 코카콜라를 마시고 있다는 뜻이 되겠다.
물론 칠성사이다, 펩시콜라, 스프라이트 같은 경쟁상대가 있지만, 칠성사이다를 제하고는 두 자릿수 점유율 조차 넘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조차 탄산음료의 왕은 코카콜라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탄탄대로 만을 걸어갈 것만 같던 코카콜라는 작년 큰 부침이 있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외식소비가 줄어들자 자연스레 찾아온 소비의 둔화로 총 소비량과 매출이 감소한 것.
이렇게 탄산음료 시장 전체가 부침과 부진에 빠져있던 상황에 놀랍게도,
2021 브랜드 파이낸스 식음료 보고서에 따르면 코카콜라, 펩시, 스프라이트와 같은 유수의 탄산음료 브랜드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이 유일하게 20% 이상 브랜드 가치가 상승한, 내친김에 40%에 육박하는 상승세를 보인 브랜드가 있다.
바로 닥터페퍼이다.
왜일까?
왜 닥터페퍼만이 저런 엄청난 상승세를 보인 것인가?
그 이유가 참 재미있다.
바로 닥터페퍼의 충성 지지층,
즉, 닥터페퍼 마니아들이 장기적인 락다운을 우려하여 닥터페퍼를 사재기한 것. 브랜드의 강성 지지층이 다른 어떤 요인도 아닌 자신들의 의지로 브랜드 가치를 40% 나 올려버린 거대한 소비를 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비슷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님에도 이상하게 닥터페퍼에 끌렸던 이유는 뭘까?
그저 옅은 후추 향과, 강렬한 체리 향, 달콤한 맛과 은근한 탄산이 이룬 시너지에 끌렸던 걸까?
그럴 리가 없다. 당연하게도 결국에는 맛이겠지만, 음료에 끌리는 이유는 처음에는 브랜드 이미지와 그 인식에 강한 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의 경우에는 밈으로써 소비되는 닥터페퍼의 영향이 컸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영향이 큰데 그 친구는 항상 나에게 시도 때도 없이 말하던 것이다. 느끼한 목소리로 기묘한 자세를 하면서 ‘닥터페퍼’라고..
당시 닥터페퍼 하면 ‘그런 타이어 맛 음료수를 왜 먹냐?’ 라는 반응이 일반적이었으니. 친구들이 싫어하던 음료를 일부러 말하는 청개구리 심보가 터진 것이었을 거다. 어렴풋하게 특이한,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음료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닥터페퍼를 우리 학년에 대중화 시킨 것은 모르긴 몰라도 바로 그 놈이었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호불호 갈리는 음료수를 뽑으면 앞에서 말했던 아침햇살, 데자와 같은 음료와 함께 항상 뽑히는 걸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인식도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소위 말하는, 아는 사람만 알고, 즐기는 사람만 즐기는,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음료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음료, 음식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안다.
음료의 경우에는 닥터페퍼, 음식 같은 경우에는 삭힌 홍어로 예를 들 수 있겠다.
이들의 공통점은 위의 ‘아는 사람만 알고, 즐기는 사람만 즐기는,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뿐만 아니라 점유율, 즉 그것이 속한 전체 카테고리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코카콜라가 가격을 올린다면 그 외의 탄산음료 또한 차츰 가격을 올릴 것이고, 반대로 코카콜라가 할인 이벤트를 한다면 그를 따라잡기 위해 다른 음료들 또한 할인 이벤트를 할 것이다.
업계 1위, 그러니까 주류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그렇다.
예를 들어 제로 탄산음료 업계 1위인 펩시제로라임은 그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편의점에서 공격적으로 할인 행사를 연다. 그리고 그를 따라잡기 위해 다른 제로 음료들 또한 자주 1+1, 혹은 2+1 행사를 한다.
CU, 이마트24, 롯데마트 등에서 이루어지는 프로모션들이 그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삭힌 홍어는 어떤가? 만약 삭힌 홍어가 없어진다면 전라도 향토 음식의 큰 아픔일 것이고 마니아들에게는 거대한 재앙이겠지만 그걸로 그만이다. 삭힌 홍어가 사라진다고 김치찌개를 많이 먹지는 않지 않겠는가.
주류와 비주류는 그런 차이를 가진다.
영향력의 차이.
즉 향유하는 사람의 숫자가 그걸 가르는 것이다.
내가 닥터 페퍼에 끌렸던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어느 날 샌드위치 체인점 써브웨이에 간 날이었다. 10명 정도 되는 인원이 전부 코카콜라를 음료로 선택한 순간. 그 사람들이 공장에 있는 기성품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유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은 그런 느낌을 들게 만든다.
그 다음은 그냥 몸이 이끄는 대로, 닥터 페퍼를 골랐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닥터 페퍼만 먹는 사람이 되었다. 그저 비주류라는 것뿐으로, 향유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뿐으로 나는 물건을 선택한 것이다.
호불호가 갈리기로 유명하지만, 향유하는 사람이 적은 음료.
음료로서도 개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내게는 최적의 음료였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 한 가지.
호불호가 갈리는 음료, 특이한 음료라는 특징은 이들이 직접 만든 것인가? 물론 아니다.
처음에 닥터 페퍼는 “King of Beberages" 즉 음료의 왕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해 자신들을 홍보했다.
그러나 그것이 먹히지 않고 특이한 음료라는 인식이 퍼지자
"Out of Ordinary"(범상치 않다) 혹은
"Dr. pepper, what`s the worst that could happen?" (닥터 페퍼, 맛없어 봐야 얼마나 맛없겠어?)
같은 슬로건을 사용하며 특이한 음료라는 정체성을 확보했다.
이러한 슬로건은 2010년대 들어서 좀 더 극적인 효과를 보기 시작했는데, 바로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는 인터넷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닥터페퍼는 호불호 갈리는 음식으로 꼽히며 민트초코, 솔의 눈과 같이 밈으로써 소비된다. 이러한 움직임이 닥터페퍼의 이미지를 더 강화하고, 소비자들은 다시 재생산된 이미지를 소비해 닥터 페퍼의 브랜드 이미지는 굳어지게 된다.
코카콜라의 "Original Taste"(근본있는 맛)이라는 슬로건을 피해 자신의 특이함을 강조한 닥터 페퍼는 살아남았고, 그렇지 않은 당시의 음료들은 이제 존재조차 희미하게 되었다.
이렇게 그들은 코카콜라가 지배하는 탄산음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실제로 살아남은 다른 탄산음료들 또한 자신만의 이미지가 있다.
(예를 들어 마운틴듀는 게이머들이 마시는 음료, 웰치스는 가격 싼 음료라는 이미지가 그렇다)
그리고 이러한 마케팅과 결부된 실제 맛의 마니악함은 외려 충성 고객층을 확실하게 만든다.
엄청난 대중성을 지닌 코카콜라와는 반대로, 엄청난 호불호를 가진 닥터 페퍼는 그 호불호 덕택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매출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원조 틈새시장을 확실하게 공략한 닥터 페퍼.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
이라는 명언을 세삼 깨달은 밤이었다.
덴티스테 프레쉬크루 - Fresh Crew.
Season 1. 우리들의 프레쉬
*덴티스테 프레쉬크루는 콘텐츠로 소통하는 그룹 기와(주)의 첫번째 [뮤즈] 그룹입니다.
*실란트로(주) 의 자사 브랜드와 결이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며, 브랜드에 대한 20대의 시선을 콘텐츠로 풀어내는 그룹입니다.
*기와(주)는 실란트로(주)의 자회사로 크리에이티브를 담당하고 있는 콘텐츠 기반 회사입니다.
원작자: 프레쉬크루 1기 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