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께선 우리 엄마와 외삼촌 이렇게 남매만 두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늘 당당하게 말씀하신다.
"세상에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냐만, 길이는 다르다잖어. 그래, 너희 삼촌이 내겐 짧은 손가락이여."
처음엔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더라.'였고, 그다음은 기출 변형 형태로 '길이는 다 다르다.'가 추가됐다.
어릴 적에는 그게 무슨 말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내게 눈치라는 게 생긴 이후로 무슨 말뜻인지 아주 잘 이해하게 됐다.
어제, 병원에서 할머니와 만났다. 외할머니는 늘 그랬듯이 아픈 손가락 이야기를 하며, 아직 장가 안 간 외삼촌에 대한 걱정거리를 늘어놓으셨다. 미주알고주알 모두 늘어놓고 나면, 늘 엄마는 그 미주알고주알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신다. 그렇기에 그 말을 듣고만 있지 말라는 말씀도 드렸었다. 보기만 해도 속이 쓰리니, 듣고 있는 엄마는 어쩌겠냐는 마음이었다.
엄마에게 외할머니가 중요하듯, 내겐 엄마가 중요하니까.
그래도 엄마는 뭐가 괜찮은지, 맨날 "괜찮아~ 할머니가 뭐 하루 이틀이니."라며 넘기셨고, 어제도 그러려니 넘기실 줄 알았다마는 엄마가 팡 터지셨다.
"세상에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어? 그리고 길고 짧은 건 있단 소리도 그만 좀 해요. 엄지는 제일 짧아도, 엄지 없으면 손을 못 써. 중지는 제일 길어도 욕하는 거 말곤 어디에 쓰는데? 길건 짧건 다 소중한 거예요."
거기에 말을 덧붙이셨다.
길어야 할 게 짧아도 문제고, 짧아야 할 게 길어도 문제라고. 그 본연의 모습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이겠다.
하지만, 와다다 쏟아내는 말씀에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헤이즐넛 시럽을 넣은 커피잔을 떨어트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