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나의 작품: 화가 홍일화 ①] 담배 한 대

by 데일리아트

작가는 작품으로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작가의 모든 것들이 작품에 담겨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품을 만드는 지난한 어려움과 배경이 되었던 스토리는 정작 가려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연재 '나의 인생, 나의 작품'은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에게 직접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코너입니다. 첫 순서는 프랑스와 우리나라를 오가며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는 국제적인 작가 홍일화입니다. 현재 홍일화 작가는 5월 15일부터 6월 15일 한 달간 프랑스 툴루즈에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전시가 되기를 기원하며 첫 연재를 시작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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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초입, 나는 생애 첫 전시를 열었다. 아직 세상에 내 이름 석 자를 꺼내놓기조차 어색했던 시절이었다. 그날 외할머니께서는 마치 오래 전부터 그것을 기다리셨다는 듯, 가장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전시장에 오셨다. 전시장 밖으로 나를 부르신 외할머니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보루를 꺼내 내 손에 쥐어 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일화야, 너도 이제 작가가 되었으니, 할머니 앞에서 담배 한 대 피워 봐라.”


나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어떻게 제가 할머니 앞에서 담배를 피워요. 전… 못해요.”


외할머니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작가란 자고로 세상의 틀을 깨는 사람이다. 할머니 앞에서 담배도 못 피우면서 무슨 작가를 한다고, 세상을 바꾼다고 하느냐. 그럴 거면 당장 그만둬라.”


그날 나는 외할머니 곁에서 고개를 돌리고 담배를 피웠다. 하늘을 향해 천천히 피어오르던 그날의 담배 연기는 나를 옭아매고 있던 필요 이상의 지나친 ‘예의’, ‘두려움’, ‘자격’이라는 이름의 안개들을 허물어트리는 불꽃이 되었다. 외할머니는 담배 한 대를 통해, 나에게 변화란 무엇인가를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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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언제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낯설음’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다. 익숙했던 붓끝이 멈추고, 손끝에 맺힌 감각이 어딘가 불편하게 흔들릴 때, 나는 그것을 ‘변화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받아들인다. 나는 늘 외할머니의 그날의 말을 품고 그림을 그린다.

"세상의 틀을 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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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그림을 잘 그리라’는 말보다 훨씬 무겁고 날카로운 주문이다. 작가란, 자기 안의 낡은 감정과 습관, 안전한 색과 선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넘어야 하는 사람이다.


변화는 생존이다. 정체된 아름다움은 스스로 죽음을 불러오기에, 화가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야만 한다. 시대는 변하고, 빛의 각도도 달라진다. 삶은 늘 이전과 같지 않다. 그러니 화가의 언어도, 그림도, 감각도 머무를 수 없다.


물론 하나의 스타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집념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나에게 작가란, 변화의 모범이어야 한다. 타인이 감히 넘지 못한 경계 앞에서 먼저 한 발을 내딛고, 그 안에 도사린 혼란과 마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변화는 대개 거창하게 오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작은 상처 하나에서 시작된다. 혹은 말없는 자연의 침묵에서, 지나간 기억의 틈에서, 익숙한 얼굴을 그릴 수 없을 만큼 뿌연 감정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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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끝내 그분의 초상화를 그리지 못했다. 붓을 들기만 하면, 눈물이 먼저 쏟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여성의 초상’에 대한 20년의 여정은 다른 수많은 할머니들의 얼굴을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 여정을 뒤로한 채, 또 다른 변화를 찾아 숲으로 들어갔다.


변화란 단순한 기법의 전환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진동이 외면의 세계로 번역되는 순간이다. 화폭 위에서 자아와 세계가 다시 만나는 자리, 의식이 이전과는 다른 리듬으로 깨어나는 때.


“나는 왜 이것을 그리고 있는가?”, “이 세계는 정말 내가 본 그대로의 진실인가?” 이 질문은 나를 수없이 흔들고 부수고 다시 태어나게 한다. 그리고 나는 매번, 조금 다른 나로서 그림 앞에 앉는다. 화가에게 변화란, 자신과 마주하는 가장 정직한 순간이며, 붓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생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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