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포스터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소설과 대사에서 보이는 사랑의 반어법
옥이는 영화에서 두 주인공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출처: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제목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서 영화 줄거리가 두 사람을 축으로 진행하는 것 같지만,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옥희의 역할을 무시 못한다. 옥희의 나래이션과 연기는 시종일관 극의 긴장과 재미를 유발한다.
두 사람을 연결하는 또 다른 코드는 '삶은 달걀'과 '꽃'이다. 옥희는 사랑방에 놀러 가면서 선생님이 삶은 계란을 좋아한다고 엄마에게 말해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고, 자신이 유치원에서 가져온 꽃을 사랑방 선생님이 갖다주라고 했다며 능청스럽게 엄마에게 전달한다.
60년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는 시대에 옥희가 본의 아니게 맡은 '사랑의 메신저' 역할은 두 사람의 감정을 이어주기에 충분했다.
옥이의 옷을 예쁘게 입혀주는 엄마 /출처: 영화의 한 장면
원작에서는 어머니는 딸이 사랑방 아저씨 방에 갈 때 딸을 불러세운다. "이리온. 이리 와서 머리 빗고, 머리를 곱게 땋고 가야지. 그렇게 되는대로 하고 가면 아저씨가 숭보시지." 딸을 사랑방에 보내는 엄마의 태도는 마치 자신이 사랑방에 가는 것과 같은 설레는 마음일까? 이런 장면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녹아 있다.
뒷동산에 갔다가 아저씨와 함께 내려오면서 옥희는 "난 아저씨가 우리 아빠면 좋겠다"고 말하자 아저씨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며 "그런 소리하면 못써"라고 말한다. 아저씨의 '사랑의 반어법'이다.
옥희가 벽장에서 잠이 들어 옥희가 없어진 줄 알고 집안이 난리가 났다. 벽장에서 잠든 옥희를 발견한 엄마는 옥희를 붙들고 "울지마라 옥희야. 엄마는 옥희 하나면 그뿐이다. 세상 모든 게 다 일이 없다 " 엄마는 옥희만 있으면 혼자 살아도 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욕구에 대한 강한 부정은 오히려 엄마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과 같이 보인다. 엄마가 말하는 '사랑의 반어법'이다.
옥이가 가져온 아이리스 꽃 /출처: 영화의 한 장면
사랑방 아저씨가 갖다주라고 전하는 아이리스 꽃을 보고 엄마는 옥희에게 "옥희야 그런 걸 받아 오면 안돼'라고 말하지만, 엄마는 그 꽃을 내다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남편의 사진을 치우고 그 자리에 놓는다. 꽃이 시들자, 엄마는 그 꽃을 자신의 찬송가 갈피에 끼워둔다.
이런 사랑의 반어법이 1960년대 사랑법이다. 직설화법으로 자신의 맘을 고백하는 지금의 세태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지만 살짝살짝 숨겨 나오는 마음의 고백이 오히려 순수하다. 우리의 부모, 할아버지들은 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사랑을 키웠다.
영화로 시대 읽기
영화의 배경 수원 화홍문
계란 장수와 성환댁이 부부가 되어 옥이네를 방문한다. /출처: 영화의 한 장면
수원에 있는 영화 촬영지 /사진: 한이수
수원화성의 화홍문 /출처: 영화의 한 장면
현재의 화홍문 /출처:나무위키
방화수류정으로 옥이와 사랑방 아저씨가 함께 나들이를 갔다. /출처: 영화의 한 장면
이 영화의 배경지는 놀랍게도 수원이다. 수원의 최고 자랑거리는 수원화성이다. 수원화성은 세계 유네스코에서 인정받은 문화재요, 수원의 관광 자원이다. 수원화성을 따라 걸으며 성곽 안팎을 감상하다 보면 이런 성곽을 만든 정조대왕과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수원화성이 많이도 훼손 되었다. 영화를 짝은 1961년은 전쟁의 여파로 수원화성이 아직 보수되기 전이라 성곽 이곳저곳이 파괴된 채로 남아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곳은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화홍문(華虹門)과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화홍문 아래로는 수원천이 흘러 밤에 이곳을 찾으면 환상적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방화수류정은 '꽃을 찾고 버들을 찾아 노닌다'는 뜻답게 수원화성의 여러 문들중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1794년(정조 18) 수원성곽을 축조할 때 세운 누각이다. 이곳에 사랑방 아저씨와 옥희가 놀러 간다. 옥희는 아저씨가 자신의 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한다.
수원화성의 여러 문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은, 과거 1원짜리 동전에도 등장했다. 지금도 수원에 가면 옥희의 집으로 촬영한 장소도 보존되어 있다.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의 납북, 그리고 탈출, 이후의 삶
영화 '연인과 독재자' 포스터 /출처: 한국영상데이터베이스
이 영화의 감독 신상옥과 주인공 최은희는 영화를 촬영할 당시, 부부였다. 영화가 시종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마도 감독과 배우 관계 이전에,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라서 호흡이 잘 맞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혼했고 삶은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갔다. 이혼은 신상옥이 여자배우 오수비와의 불륜 때문이다. 이혼 후에도 그들은 영화 일로 얽혀 있어서 다른 이혼한 사람들처럼 안 보고 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안양에 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영화계 후진을 양성했고, 한국의 첫 번째 기업형 영화사인 '신필름'을 만들어 많은 영화를 찍었다. 신필름에서는 〈로맨스빠빠〉,〈성춘향〉, 〈벙어리삼룡이〉, 〈빨간마후라〉 등과 작품을 비롯해서 공식적으로 15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었다.
문제는 1978년에 일어난 '최은희 납북 사건'이다. 김정일의 지시를 받은 북한 공작원들이 합작 작품을 의논하자며 최은희를 홍콩으로 불러 강제로 납북했다. 북한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월북 예술인들이 대거 숙청되어, 변변한 예술인들이 없어 영화 산업이 침체일로에 있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영화를 비롯한 예술 분야는 체제를 선동하는 선전의 방편인데 영화산업의 후퇴는 체체 선전의 적신호였다.
최은희의 납북을 눈치챈 중앙정보부를 통해 이 사실을 안 신상옥은 최은희를 찾으러 홍콩에 갔지만 신상옥도 북의 공작에 의해 강제 납북되었다. 시차가 다르게 북으로 간 두 사람은 5년이 지나서야 김정일의 주선으로 재회할 수 있었다. 이들은 북에서 비교적 환대를 받아, 차츰 북한 생활에 적응해 갔다. 영화에 관심이 많은 김정일은 신상옥에게 '신 필름 영화 촬영소'를 차려주고, 이들 부부에게 많은 영화를 만들도록 요구했다. 당시에 만든〈돌아오지 않는 밀사〉, 〈탈출기〉, 〈소금〉 등을 유럽 영화제에 출품했을 뿐만 아니라 〈춘향전〉, 〈불가사리〉 등도 김정일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상영되었다.
최은희는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에서 〈소금〉여우주연상을, 신상옥도 감독상을 받는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파티에 초대받은 두 사람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과 김정일의 아내 성혜림도 만난다. 김정남은 최은희를 보며 대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봤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북에서도 유명한 모양이다. 아마도 이 작품을 보며 두 사람을 납북하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북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북한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1986년 3월1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한 영화를 찍던 중, 오스트리아 주재 미국대사관에 기습 입장하는 데 성공해서 미국으로 망명한다. 8년 만에 탈출한 것이다. 이들은 남한으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2,000년이 되어서야 남한 땅을 밟는다. 2006년에 신상옥은 지병으로 사망하고 최은희는 2018년 노환으로 타계했다. 이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찍을 때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이 영화를 찍을 때 자신들이 북에 납북되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나라이기에 가능한 영화 같은 이야기다. 사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2016년 <연인과 독재자>라는 제목으로 개봉되기도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쇼팽
피아노를 치는 엄마(최은희) /출처:영화 한 장면
출처: 유튜브 로이
쇼팽의 곡들은 그 서정성으로 영화의 삽입곡으로 자주 등장한다. 2002년 개봉한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한 피아니스트가 대표적이다. 쇼팽의 팬이라면 잊을 수 없는 작품,나치에 의해 습격당한 바르샤바의 참혹한 전쟁의 잔해 속에서 숨어 지내던 폴란드 피아니스트 스틸만이 독일군 장교에게 들켜 인생의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연주한 곡도 바로 쇼팽의 〈발라드 1번 (ballade No.1 G-minor op.23)〉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이 영화에서도 쇼팽의 곡들은 주요 장면에서 여지 없이 등장한다. 영화 처음 부분에 <녹턴 8번(Nocturne Op.27 No.2)>이 옥희를 통해서 꽃을 선물 받을때는 너무 행복해서 〈녹턴 2번(ChopinNocturnes op.9 No.2)〉을, 어머니가 마음이 심난할 때는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사랑방 손님이 기차를 타고 떠날 때는 〈이별의 곡(Op 10, No 3)〉이 울린다.
김진규와 많은 영화에 출연했던 최은희는 김진규를 이렇게 기억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그는 고독하고 과묵한 사랑방 손님 역을 맡았다. 나는 그때 대청마루에 앉아 쇼팽의 야상곡을 치는 미망인 역을 했다. 정말 가슴이 뛰었고 연기 이상의 그 무엇이 우리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재인용)
이 영화는 사랑방 손님이 미술 교사로 등장해 옥희와 어머니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기도하고, 중요한 장면에는 여지 없이 아름다운 쇼팽의 녹턴이 연주된다. 신상옥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니 도쿄 미술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영화 감독 이전에 그는 화가요, 마음에 쇼팽의 음악이 넘실거리는 낭만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영화는 거장 신상옥과 최고의 배우 최은희였기에 최고의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아니 옥희역을 맡은 전영선의 연기도 한 몫했다.
출처: 유튜브 한국고전영화
주요장면
50초: 오픈 크레딧의 벽돌 담벼락
9분 40초: 옥희의 앙증스런 연기 "아저씨 찬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
17분: 수원화성의 옛 모습 (화홍문)
25분: 계란장수와 성환 댁의 수작 장면
45분: 남편의 사진과 옥희가 가져온 꽃을 교체하는 모습
46분: 한복을 입고 피아노 치는 최은희
56분: 찬송가 갈피에 마른 꽃잎을 보관하는 장면
1시간 20분: 방을 비우듯이 여사의 모든 것을 비울 수는 없습니다
1시간 33분: 선생님과 엄마의 포옹장면
[영화로 시대 읽기 ⑩] 영화의 촬영지? 감독과 배우의 납북 사건-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2 < 영화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