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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4. 2024

[同好同樂]① 북스그램 - 함께하는 독서의 힘을 믿는다

문화일반

새로운 기사코너 <동호동락>은 같은 기호를 가진 사람들(동호인)을 소개하고 그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 기사입니다. 다변화된 사회속에 수많은 모임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취향이 같은 동호회에 함께 모여 삶을 나누고, 공통의 관심사를 풀어가다 보면 척박한 사회 환경에서 버틸 힘을 얻습니다. 같은 관심사를 갖는다는 것만으로 동호회는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메마른 문화 환경 속 수많은 동호회에 박수를 보내며 첫 번째 동호회를 소개합니다. 첫 이야기는 인기칼럼 <스크린 밖의 악녀들>을 연재하고 있는 이수정 칼럼니스트가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토요일 오후 네 시. 한낮의 햇볕이 누그러질 시간이다. 주말을 즐기기 위해 모여든 젊은이들이 거리를 채운다. 곧 다가올 월요일을 위해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들도 있다. 서초구의 한 건물에 있는 대여 공간으로 몇몇 사람이 들어선다. 소중한 주말 오후를 책과 함께 보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다. 독서 동호회 ‘북스그램’의 회원들이다. “안녕하세요, 에린 님.”, “오랜만입니다. 하늘로 님.” 3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지닌 그들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여느 모임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른다. 교사, 주부, 엔지니어, 연극배우,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지닌 그들은 책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으로 뭉친 사이다. 오늘 토론할 책으로 선정된 작품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다. 한순간도 끊이지 않는 열띤 토론이 두 시간 동안 벌어진다. 

‘북스그램’은 소모임 앱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서 모임이다. 온라인에서 주로 활동하는 다른 모임과는 달리 일주일에 한 번 정모(정기 모임)를 겸한 독서 토론회를 연다. 현재 북스그램의 회원은 30명이다. 회원 전체가 토론에 참여하기란 불가능하기에, 미리 토론할 책을 공지에 올려 참여할 회원 예닐곱 명을 선정한다. 게시판에 올리기 무섭게 인원이 마감되는 경우가 많기에 회원들 사이에서 ‘클릭’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두 달 이상 정모에 참여하지 않으면 회원 자격이 박탈된다. 클릭 전쟁에서 패배한 일부 회원의 자격 박탈을 막기 위해 정모 참석권을 양보해 주는 훈훈한 광경도 연출된다. 



토론이 끝나면 뒤풀이 역시 빠질 수 없다. 오늘 진행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은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정체성에 관해 다룬 묵직한 소설이다. 먹먹해진 마음을 시원한 맥주로 다스릴 시간이다. 맥주잔을 부딪치면서도 대화의 소재는 오늘 읽은 책의 내용에서 떠나지 않는다. 새로 가입한 회원 캘빈(58세, 남)에게 많은 독서 모임 중 ‘북스그램’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다양한 분야의 ‘양서’를 함께 읽고 토론한다는 ‘북스그램’의 소개 글이 마음에 들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에게 있어 양서의 기준이란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이다.

혼자 책을 읽는 것과 ‘북스그램’을 통한 책 읽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회원들에게 질문했다. 기다렸다는 듯 답변이 쏟아져 나온다. 혼자 읽었을 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부분을 다른 회원의 관점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수많은 동호회가 해체되는 상황에서 6년에 가까운 오랜 시간 동안 ‘북스그램’이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모임에서 맡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서로 예의를 지켜서라고 회원들은 입을 모은다. 폴리(49세, 여)는 회원들 간에 너무 가깝거나 멀지 않은 적정거리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불가근 불가원‘이라는 인간관계의 중요 원칙은 ‘북스그램’에서도 통용된다. 



‘북스그램'을 한 마디의 캐치프레이즈로 정의하라는 기자의 말에 자리에는 웃음꽃이 핀다. “북스그램은 도장 깨기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도장 깨기’란 유명한 무술 도장(道場)을 찾아가 그곳의 강자들을 꺾는다는 의미의 신조어다. 책을 도장에, 독서를 강자를 꺾는 행위에 비유한 재미있는 표현이다. “북스그램은 설렘이다.” 독서가 설렘이 될 수 있는 활동이라니... 우리나라 성인 열 명 중 한 명이 책을 일 년에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발표가 무색해지는 답변이다. 에린(51세, 여)은 ‘북스그램’을 ‘겨울나기’라고 답했다. 일상의 답답하고 어려운 일들이 한겨울처럼 길고 무겁게 느껴질 때, 독서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는 뜻이라고.

다음은 '북스그램'을 만들고 이끌어 온 모임장 위드커피(본명 김대후, 52세, 데이터 분석가)와의 일문일답이다. 



- 기존 독서 클럽에 가입하는 대신 '북스그램'을 직접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독서 모임에 가입해서 활동했으나 나의 니즈(needs)에 부합되는 모임을 찾을 수 없었다. 운영 방식이 부적절해도 제어할 만한 자정 능력이 부족한 모임이 많았다. 사교 활동에만 치중하는 모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북스그램'의 지향점은 선명하고 한결같다. 독서 토론이라는 본질에 충실하고 밀도 있는 모임을 지향한다. 또한 북스그램은 비상업적 취미 모임으로 어떤 영리 활동도 하지 않는다.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 회원 모두가 책 선정에 참여한다. 다른 모임과는 달리 모임장의 간섭이 전혀 없는 민주적 모임이다. 



- 많은 독서 모임이 오프라인 만남 대신 줌(ZOOM)과 같은 앱을 이용한 비대면 방식을 활용한다.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직접 대면하는 것과 화상으로의 만남은 질적으로 다르다. 화상 만남에서는 회원들 간의 논쟁이나 티티카카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소통이 힘들고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없다. 모임에 대한 애정 역시 사람과의 만남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 6년 가까이 북스그램을 이끌며 힘들었던 일은 없었나?



역시 사람 간에 일어나는 일이 가장 힘들다. 회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다 보니 욕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규칙이 한번 어긋나면 모임이 느슨해지고, 진지하게 책을 읽자는 모임의 취지가 어긋난다. 모임의 규모를 늘릴 생각은 없다. 지금처럼 꾸준하고 성실하게 활동하는 회원들이 참여하기를 바랄 뿐이다. 

'북스그램' 모임장 김대후

독서 동호회 ‘북스그램’은 '소모임이'라는 앱을 통해 가입할 수 있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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