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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4. 2024

③ 열정에 대하여 - 니콜라 드 스탈

[미술로 생의 철학 질문하기]


니콜라 드 스탈 (Nicolas de Staël), 러시아 출생 프랑스 화가로 구상화를 전문으로 그렸지만, 이후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전향하게 된다. 작품세계가 정반대로 발전함과 동시에 엄청난 성공과 격변을 겪는다. 


 
[미술로 생의 철학 질문하기] 시리즈는 당대를 비롯하여 현재까지 미술계에 영향을 끼치며 회자되는 예술가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각 편마다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고통, 행복, 불완전함 등 삶의 본질에 가까운 개념을 예술로 엮어 질문한다.


결코 끌 수 없는 열정으로 삶을 살아라.

ㅡ 셰익스피어



Nicolas de Staël, Figure accoudée 1953


니콜라 드 스탈  Nicolas de Staël

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가지 단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열정, 두 번째는 다작, 세 번째는 비평이다. 

니콜라 드 스탈은 엄청난 열정을 가진 청년이었다. 특유의 성실한 성격으로 삶을 올곧게 살아왔으며, 화가가 되기 이전에도 여러 직업이 있었다. 생전 그의 직업이었던 (화가를 제외한) 조각가, 작가 등의 직업을 살펴보면, 그가 예술에 소질이 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 전쟁이 치러지던 곳에서의 궁핍한 생활 등 예술적 자아 실현이 이뤄지기에는 무리가 있는 환경 - 이상의 인생을 실현하고자 노력했으며, 실제로 그것을 실행에 옮길 정도의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를 유추해보면, 그가 얼마나 삶에 정열을 갖고 살았는지는 의심할 바가 없다.

또한 그는 엄청난 다작의 소유자다.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남긴 것은 햇수로 15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15년이라는 시간은 그가 별세하기 전 전체적인 생애를 고려했을 때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그러나 화가로서의 니콜라 드 스탈, 그는 이 기간 동안 무려 1959개가 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의 사후에 발간된 카탈로그집에 1059개의 미술 작품이 담겨 있었으며, 발견되지 않은 이전의 작품까지 포함한다면 이보다 더 많은 양의 작품을 그렸을 것으로 유추된다. - '니콜라 드 스탈' 사후 카탈로그집은 1968년 출간되었다.)

그가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고 작품 생활을 한 15년 동안, 그는 비평과 환호 그 중심에서 살았다. 그를 둘러싼 이 양극적인 반응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변화된 예술 세계에서 시작했다. 그의 직업이 여러 개였던 것과 같은 이치로, 그는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구상화를 그리고 추상화를 그렸지만, 그 안에서 나뉘는 수많은 그림 기법을 활용할 줄 알았다. 때문에 이러한 일관되지 못한 '예술가'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그를 자격 미달이라 욕했으며, 누구는 그를 천재라고 불렀다. 그는 이러한 대중의 평가 속에서 갉아먹히는 삶을 보냈다.
 

Nicolas de Staël, Paysage méditerranéen 1953


구상화와 추상화, 그 경계에 서 있는 화가 

그의 생애를 살펴보자. 앞서 말했듯 니콜라 드 스탈은 페테르부르크에서 출생한 러시아 출신 화가다. 

그는 시끄럽고 위협적인 전쟁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혁명 후 폴란드로 망명하였다. 이후 브뤼셀로 거처를 옮겨 그곳의 왕립미술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준 조르주 브라크(프랑스 화가, 입체파의 창시자)와 만남을 갖고 친분을 쌓았다. 

그는 '새로운 것'에 관심을 보였다. 보편적으로 단순화된 색채를 가졌던 자신의 그림에 구성을 추구하여 추상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가 미술에 관심을 가진 이후 2년간은 이러한 구상 형태에 관심을 보였으며, 새로운 시도에 많은 팬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전통성(그간 지켜져온 암묵적인 형태, 예술적 인정 범위)을 깨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호응을 받는 것과 별개로 그는 '영향'을 많이 받는 화가였다. 그의 작품 활동 초기에 그려진 그림, 아내 '기유의 초상'은 16세기의 그리스 출신 화가 '엘 그레코'의 화풍을 흉내내는 수준이었고, 그는 분명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가 당시 예술계에서 비평에 중심에 있던 이유와, 특유의 도전성을 보이는 이유는 일치할 것이다.

힘든 무명 시절을 버티게 해준 아내 기유는 '기유의 초상화'가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양실조로 사망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이후의 일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전시회를 가졌으며 전보다 더한 혹평과 호평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름을 알려도, 알리지 못해도 괴로운 나날이 이어진다. 
 

Nicolas de Staël, Le concert 1955

나에겐 작품을 완성할 힘이 없다

그는 논란의 중심에서 (구상화-추상화의 변화를 겪는 시기에) 임파스토(유화물감을 도구나 손가락을 이용해 두껍게 반죽처럼 칠하는 표현 기법, 두께나 형식이 정돈되지 않았기에 거친 느낌을 받는다.)  방식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그는 구상화를 잠시 벗어났다. 추상미술의 시작이자 비정형적 서정 구현의 시작이었다.

그는 15년 중 10년 가량의 기간을 위태로운 상태로 지냈지만, 남은 5년간은 '미술계의 스타' 같은 생활을 했다. 꾸준히 비난을 해오던 이들이 입을 다무는 잠잠한 때, 그의 일관적이지 않은 화풍보다 그의 잠재성과 진위성이 인정받던 시기였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는 그 시기가 오자 자살했다. 그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작품을 비평하던 인물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 인물과의 만남이 자살의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발화점일 수는 있어도 그 이상으로는 해석하기 어렵다. 그는 이미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죽기 직전에 급부상하였고, 그야말로 황금기였다. 이제야 지난 무명시절의 정열을 보상받기 시작할 무렵, 그야말로 평화와 자유의 도약이 그려질 그 시기에 니콜라 드 스탈은 자신의 화실 테라스 11층의 높이에서 투신하였다. 그의 나이 41세, 1955년도의 일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나에겐 작품을 완성할 힘이 없다." 이러한 그의 유언을 떠올려보면, 열정적으로 모든 삶을 그림을 향한 사랑과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채운 그의 지난 삶이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연주는 계속될 것이다. 그가 죽기 전 남긴 작품, '콘서트'. 새빨간 배경, 형태가 흐린 악기들, 악보로 보이는 종이뭉치들, 위태롭게 두 발로만 서 있는 피아노.  그럼에도 연주는 계속될 것이다. 그가 죽은 이후에도 작품은 살아서 숨쉬기 때문이다. 마치 끝을 모르는 그의 유작 '콘서트'의 풍경처럼. 
 

Nicolas de Staël, Nu bleu couché 1955



열정은 삶을 영위하는 수단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 자살을 앞둔 그를 타버린 잿더미에 비유하고 싶다. 

그는 강한 열정과 세상을 향한 애정을 가진 인물로 여러 번 인류애적인 내면을 내비췄지만, 그의 겸손과 학구열은 우울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우울은 신경증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닌 비평을 듣는 것으로 시작된 삶의 비관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그의 정신은 결코 병약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학습된 비관은 결국 그의 삶에 비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빠르게 타올라 천천히 식어가고, 결국에는 심지만을 남겨둔 채 사라진 그에게 '성냥불'보다 더 어울리는 수식어는 없을 것이다. 보편적으로 '유작'이란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 작품을 말한다. 그러나 그의 경우 사망하기 전 5년 간의 작품을 모두 유작으로 분류한다. 그의 정신 상태가 눈에 띄게 악화되었을 때 작품 역시 그러한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이러한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그의 작품은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버린 작품들이 많다.  그가 예술을 시작하였을 때 그린 구상화와, 작품 세계에 큰 이변을 겪고 추상화 역시 폭넓은 다양성을 보인다. 이렇듯 변화하는 작품의 농도를 살펴보면, 그가 갈수록 더 지쳐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마지막, 유작에 가까운 이 작품을 보라. 작품명은 '누워 있는 푸른 누드'. 그답지 않게 새빨간 배경을 사용했다. (그간의 니콜라 드 스탈은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빨간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주로 주황색을 사용하였으며, 이마저도 본인이 감명 깊은 자연 풍경을 보았을 때 사용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렇기에 이 그림에서 사용된 새빨간 색깔은 많은 의미를 선사한다.) 새빨간 배경에 누워있는 사람, 흰 천을 아래에 덮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 그림은 빙산의 일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작품의 오른쪽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바라본다면 더욱 이것을 사람으로 생각할 수 없다. 비스듬히 (어깨와 목 부분이 유독 불편해 보인다.) 기대어 누워 있는, 이 불편한 자세의 사람을 보면 어딘가 위태로운 느낌을 받는다. 지쳐 있는 이 사람은 과연 새빨간 저 풍경 너머 어디를 보고 누워 있는 것일까. 파란 그림자를 안고 있는 이 사람의 형태는 언제까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열정은 삶을 영위하는 데에 있어 큰 도움을 준다. 열정은 그 자체로 동기부여이자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삶의 변화를 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관심과 열정임이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삶을 바꾸고자 하는 욕구는 자신을 파괴할 뿐이다. 열정과 노력의 값을 낮추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끝없는 열정의 도달점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또한 과연 어디가 도달점일지를 생각해둘 필요가 있다. 


프랑스 앙티브, 니콜라 드 스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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